백전노장의 검은 아직 날카롭다.
날이 추워졌다. 이런 환절기에 감기가 들다니. 주말 하루이틀 약 좀 먹으면 떨어질 줄 알았더니 조금 좋아진 듯하다가 검도 한 번 다녀오고 그 기운이 심해져 컨디션이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결국 깨면 밥 먹고 약 먹고, 깨면 밥 먹고 약 먹고 시간을 보내다 e북 리더기를 꺼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책이 『연필로 쓰기』. 생각해 보면 e북 리더기를 사고 가장 먼저 리디에서 e북으로 샀던 책이 이 책이었는데 아직까지 다 읽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이래놓고 그의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되나.
김훈 작가에 대해서는 여러 추억이 있다. 딱 작년 이맘때쯤 같은데. 전역 전 12월에 휴가를 나와서는 또 감기에 걸려서 골골대고 있을 때. 그때 읽은 책도 김훈 작가의 책이었다, 『칼의 노래』. 왜 그 책을 다시 읽고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던 시기였고 그중 하나가 아버지의 책장을 언제나 지키던 『칼의 노래』였던 거 같다.
김훈 작가의 책은 아플 때 먹는 약인가? 지금도 이 글을 한참이나 콜록거리며 쓰고 있다. 음, 막상 콜록거리며 쓰고 있다고 하니 약은 아닌 거 같다. 그보다는 쓰러져도 일어날 수 밖에 없게 되는, 전염되는 무사의 투혼인가.
『연필로 쓰기』는 19년에 나온 김훈 작가의 산문집이다. 애초에 소설가 김훈 이전에 에세이스트 김훈이 존재했고, 소설가 김훈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자전거 사랑꾼 김훈의 이야기는 좋아했던 독자들도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가끔씩 나타나는 소설가의 산문집마냥 엄청 놀라운 글은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의 글에는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한국 전쟁 시기에 포대에 담겨 대피했고,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로 죽은 동기가 있는 나이, 그는 벌써 일흔을 넘겼다. 이제 지울 수 없는 기운이 쫓아다닌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의 산문집에는 죽음의 기운이 늘 도사리고 있다. 자연, 삶,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는 하지만 자신이 홀홀거리는 할아버지라는 점도 언제나 꼬리처럼 따라 나온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이런 백전노장의 자세로 글을 풀어내고 있음에도 문장에는 언제나 힘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달관한 듯 글을 쓰는 나보다도 훨씬 더. 나는 그런 그의 글을 사랑했다. 힘있게 써내려가는 문장, 강한 삐침으로 마무리된 붓글씨와 같은 문장, 단어 하나하나가 단단하게 휘둘러지는 문장.
솟구칠 때 고래는 머리로 아침햇살을 들이받았고, 잠길 때 고래 꼬리가 바다를 때려 물보라가 일었다. 솟구치고 또 잠기면서 고래떼는 달려오고 또 달려갔다.
- 연필로 쓰기 중 일부 발췌
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을까. 나는 고래라는 동물이 힘과 생동감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꼬리로 파도를 내려치고 또 가르며 물살을 만드는 고래, 하늘 끝에 닿을 듯 뛰어오르곤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고래, 그러고보니 예전 창덕궁 근처 카페에 들렀을 때 고래 엽서를 사고 싶어하는 나를 보고 카페 주인이 '고래는 왜 좋아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고래만큼 생동감 넘치는 동물을 보지 못해서, 내가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치 작가가 대신 해준 것처럼. 그의 글에서 생동감을 느꼈다. 힘을 느꼈다.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떠들면 끝이 없으니 한 이야기로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작가는 냉면을 먹으며 먼 이북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냉면 면을 길게 늘어놓으며 먼 이북부터 한국의 남단 끝까지, 부산까지 면을 길게 늘어 놓는다. 늘어 놓은 면을 넓게 돌리며 이제는 청와대로, 그리고는 평양의 집무실로 잇는다. 거기서 한강 둔치 어딘가, 김훈에게 잇고 축을 넘어 백석 시인과 고구려까지 면은 이어진다.
그는 하나의 단어로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문장가다. 책이 쓰여졌던 시절이 한참 북한과 분위기가 좋았던 시절이라 그럴까, 아니면 그가 초대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을 봐온 사람이라 그럴까. 이번 산문집에서 그의 시선은 집 앞 마당부터 이북까지 꽤나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온함, 어리숙함, 낯선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이미 그런 감각을 느낄 경력의 작가도 아니지만 시선이 퍽 담담하고 익숙해서, 마치 예전부터 이런 꿈같은 이야기를 늘 풀어내는 사람의 말처럼 덤덤히 이야기를 듣게 된다. 현실을 소설처럼, 소설을 현실처럼 쓴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이 나온 후로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백전노장의 검무를 잠시 엿봤다. 좋은 문장이 무엇인가. 아직 모르지만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을 아는가? 나는 김훈이라 답할 것이다.
김훈 작가의 글에는 요즘에는 느끼기 힘든 정취와 멋이 있다. 단문, 단문, 토막으로 조리된 문장에는 특유의 육향이 진하게 배어 있고, 이 것들이 담긴 문단을 맛보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작가 특유의 피니쉬를 느끼게 된다.
내가 그를 처음 안 계기는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법한 『칼의 노래』, 『현의 노래』와 같은 소설보다도 '몽당연필을 든 무사'라는 별명의 계기가 된 그 인터뷰 때문이었다. 그게 05년도 인터뷰였으니 벌써 20년인가.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게 삶의 전부라는 그의 이야기에 어린 나는 왜 감동했는지. 당시에는 대다수가 노트에 글을 쓰는 시대였음에도 말이다.
연필로 쓰기, 내가 그 인내와 고통을 맛보게 된 때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5년이었다. 군에 입대한 나는 문명이라는 것으로부터 단절되었고 핸드폰이 없던 시기의 저계급 병사들이 으레 그렇듯 병사 권력의 상징이었던 사지방에서 눈을 돌린 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게 바로 연필로 쓰기였다.
이후로 또 10년, 더 이상 연필로 노트에 글을 쓰지는 않는다. 당시 썼던 공군 병사 수첩. 동기, 후배들에게 받아 쓴 것까지 총 7권 정도 분량의 소설과 수필은 진급, 전속, 전역을 이어가는 와중에 소실되었고, 결국 데이터로만 남아 블로그에 지금은 숨겨놓은 비밀 글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를 알게 된 후로 20년, 사이 좋아했던 것들도 많았고 개중에 관심이 떨어진 것들도 많았는데 아직까지도 좋아한다는 걸 보면 예사 사랑이 아님을 스스로도 느끼고는 한다. 아니, 사랑이라기보다는 20년 전에는 그 별명 자체가 좋았고, 10년 전에는 삶의 방식이 좋았고, 지금은 그의 글을 존경하고 있으니 늘 다른 방향으로 사랑하고 있는 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