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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익숙한 건축의 이유-블랙피쉬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by 카레맛곰돌이

내가 집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작년, 내 퇴직금을 털어 가족이 머물 수 있을 작은 빌라로 이사 갈 때였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건축 인테리어 일을 하셨다. 그는 가진 경험을 십분 발휘하며 줄자로 쓱 집을 그려가기 시작했고, 수학 공식처럼 집이 종이 위에 세워졌다. 집은 법칙처럼 만들어진다. 그날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말이다. 모든 가구의 사이즈, 그 이전 화장실 타일의 개수, 집 거실 내벽 사이의 거리, 모든 게 공식처럼 짜여있으니 우리는 그 크기에 따라 맞춰나갈 뿐이라고.


공공건축가는 도시의 문화를 만든다. 우리가 빌리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으레 생각하는 서양의 마을은 어째서 길 하나를 두고 집을 마주 보게끔 지어놓고 이웃이라는 개념을 중시하는지,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째서 작은 복도에서조차 맞은 편 이웃의 현관문이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사소한 차이를 붙잡고 우리에게 걸맞는 도시를,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을 도시로 제시하는 사람들이 공공건축가다.


저자는 공공건축가로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 인물이다.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었고, 공공건축의 미래에 대해 과거부터 꾸준히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던 에디터기도 했다. 그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올곧게 자신의 건축 철학을 펼치고 있다. 공공건축이란 시민들이 사용할 장소를 저렴하게 건설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편안하게, 기분 좋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라고. 이 생각의 기틀은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책에서 자신이 5년간 머문 영국을 예시로 세우며 생각을 전개해간다.


영국은 99%의 직장인이 대중교통으로 통근을 한다. 한국은 80%의 직장인이 대중교통으로 통근을 한다. 이 19%의 차이에는 ‘환승저항’이라 불리는 대중교통 환승 과정에서 생기는 심적, 육체적 부담감이 기인한다. 영국에 비해 한국은 다른 노선, 다른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움직이는 거리가 굉장히 길고 불편하다는 의미다. 당장 5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이 가능한 영등포구청역에서 내려 홍대로 가기 위해 2호선 환승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5호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고, 긴 복도를 걸어 지나가고, 다시 계단을 오르고, 긴 역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야 5호선 플랫폼에서 2호선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거리는 발이 빠른 성인 남성도 5분은 족히 더 걸리는 거리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아침마다 이 루트를 오간다고 생각하면, 아마 한숨부터 나오는 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결국 19%는 이런 디테일의 차이가 만든다.


지하철과 버스, 대중교통에서 규모를 넓혀 이제 도시를 보자. 나는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지방에 있는 학교로 진학해서, 옛 애인이 지방에 살아서, 친구들이 전국에 퍼져 살아서, 다양한 이유로 많은 도시에 들렀고 많은 도시의 형태를 봐왔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기이하다 느낀 도시는 진주의 혁신도시였다. 혁신도시에는 LH주택공사 본사부터 공군 교육사령부, 롯데몰과 같은 다양한 기업, 공공기관들이 위치해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평일이면 업무를 위해 이곳에 모이지만 주말이 되면 각자 머물던 장소로 사라진다. LH주택공사에서 일하는 이들도, 교육사령부에서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이들이 원래 적이 있는 서울로 떠나고 도시는 공실이 된다. 그래서 평일까지만 해도 활기가 돌던 도시는 주말이 되며 스산함을 뿜어낸다. 과연 이런 도시가 한두 곳일까.


기획도시라고 불리는 도시들은 자로 잰 듯 주거시설, 상업시설, 사무시설, 지도 위에 이름을 붙이며 형태를 이뤄가지만 완성된 형상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공간을 나눠 배치했기에 특정 시간대마다 특정 공간에 사람이 몰리면서 특정 장소는 반대로 외면당한다. 그래서 도시의 일부는 언제나 빛을 잃은 상태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도시가 아니라 숨만 붙어 있는 도시, 필라멘트가 일부 끊어진 전구와 같은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과연 이게 건축가들이 제시할 수 있는 도시의 미래인가. 적어도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시의 미관을 위해 용도에 따라 건축물을 배치하면 인구가 밀집되면서 교통의 불편만 야기할 뿐 도시가 살아 숨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범위를 넓혔다가 다시금 좁혀 현재로 돌아오면, 최근 서울에서 가장 뜨겁게 다뤄지는 대중교통 주제를 빼놓을 수 없다. 템스강의 “리버버스”를 모티브 삼아 구축 중인 “한강버스”에 대한 이야기다. 앞으로 두 달 후면 운행될 “한강버스” 또한 위에서 이야기한 ‘환승저항’에 대한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템스강변과 달리 한강에 배를 타러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에서 내려 10분 가량을 걸어야 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부두에서 15분을 걸어야 한다. 거기에 한강을 지나는 많은 직장인을 수용할만한 선박이 준비되는지도 문제다. 지하철을 억지로 타면 위험하기는 해도 선로 밖으로 밀려나지 않지만, 배는 억지로 타면 강 아래로 밀려나게 될 테니까. 과연 이번 정책은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저자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한 공공건축가 성토의 장이 열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않으면, 생각할 뿐이다.


이 글도 A4 1페이지를 목표로 작성한 서평, 막상 적어보니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글이 범람한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획도시에 대한 언급, 한강버스와 환승저항, 도시의 기획 편의성, 혁신도시의 형태, 여기에서 내가 들렀던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지만 길을 걸으며 구상하다보니 오히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과해지지 않았나 경계하게 되었다.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에도 많이 다뤘다. 비록 건축가는 아니지만 나 스스로가 도시는 어떤 형상을 하면 좋겠다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었고, 기왕이면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과 버스, 그 사이를 한참이나 걸으며 힘을 빼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아마 이번 글에 그런 포인트가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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