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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Jun 18. 2024

15.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동양북스

"의학은 종교를 대체했어요. 특히 서구 문명국가에선 그렇죠."


- 배드 닥터: 메스를 든 사기꾼 3화에서


최근 의학 관련 에세이를 찾아 읽고 있다. 모태 천주교 신자이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를 무서워하는 겁쟁이여서 일 수도 있고, 이제는 노령의 부모를 걱정하는 한 아들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인간은 점점 죽음이라는 단어를 삶에서 떼어내고 있다. 죽음을 우리의 시선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고 죽음을 삶이라는 선에서 최대한 뒤로 밀어내려고 한다.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100세 시대라는 말처럼 내가 100살까지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익히 생각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70세만 되어도 힘이 부족하고 주체적인 행동을 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 상태에서 30년이라는 세월을 더 살아야 한다고? 정말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같은 세상이 빨리 와야 하지 않을까?(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2038년, 안드로이드 로봇이 보편화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인터렉티브 무비, 어드밴처 게임이다.)


 분명 기술은 발전하고 시대는 진보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죽음이 두렵다. 하얀 장판에 콜라를 흘리는 실수처럼 죽음은 인간의 손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개념, 가치, 현상, 다양한 단어로 치환될 수 있는-무언가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의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이 죽음을 밀어낼 수 있다. 올바른 식사, 적당한 운동, 규칙적인 생활, 그러니까 자기 관리를 하기만 해도 예기치 못한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피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특히 갓난아기들은 어떨까. 그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세상 모든 것들과 직면하게 된다. 선악, 미추, 호오, 그러니까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부터 추하고 악한 것들까지 전부. 악에게서 그들을 구해낼 수 있는 이는 소아과 의료팀뿐이다. 오늘 가져온 책은 의학이 종교를 대체한 세상에서 일순간 신의 대리인 아닌 대리인으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문학을 전공했다가 간호사로 전향한 형님의 말씀, "남자 간호사는 병원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병원에는 특히 힘을 써야 하는 순간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화난 내원자, 내원자의 가족을 막는 역할이다." 왜소한 체형의 그가 어떻게 그들을 막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내원자의 가족, 특히 소아과의 임산부와 가족들에게 의사가 일순간 신, 혹은 악마로 보일 것이다. 신에게 기도해도 태아가 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소아과 의사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종횡무진하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에. 반대로 만약 아기가 살지 못한다면 분주해 보이는 그들의 행동 속 부족했던 부분이 눈에 밟혀 그들의 잘못으로 죽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기에.


 저자는 오랜 소아과 경력에도 죽음 앞에 익숙함은 없다는 듯 감정을 덤덤히 풀어낸다. 두 아이의 어머니, 소아과의 헤드, 그리고 새롭게 피어난 첫 불씨가 꺼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의사. 의학 에세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려움을 저자는 가볍고 담백하게 써 내려가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독자들은 아마 소아과의 모습이 아닌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 읽었던 의학 에세이에서는 온도계의 극단 그 언저리에 있는 감정들을 풀어내고는 했다. 열정에서 냉정, 냉정에서 열정, 의욕으로 뜨겁게 타오르던 시작에서 결국 재만 남게 되면서도 환자들을 생각하는 이와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죽음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온도계의 중간보다 조금 위, 37.5도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자신의 아이들,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 그렇기에 이번 에세이는 오히려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냄새가 나서 다른 글들에 비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때 사실 배드 닥터라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13년 한국에 기도가 없는 채로 태어나 식도에 튜브를 꽂아 생활하는 혜나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현대 과학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영역에 있었고, 앞으로 남은 생도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전설적인 의사와 연결이 되었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그녀는 자기의 삶을 되찾았다는 감동적인 이야기, 과연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을까?


 이로부터 3년 후 파울로 마키아리니의 수술 방식과 그의 행적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플라스틱 튜브로 기관을 대체 및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가짜이며 8명의 환자 중 7명이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수술은 동물을 통한 사전 실험 데이터가 전무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대다수의 환자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보면 알 것이다. 혜나도 결국 2달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수술대 위에 올라간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이는 신이 아닌 바로 앞에 있는 의사뿐이다. 저자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병원의 아기는 자신의 아이라고 이야기하며 하나하나를 모두 소중히 여긴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이 다큐멘터리와 혜나의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혜나 또한 이제 32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고, 만약 파올로 마키아리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는 있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05132327260410

https://v.daum.net/v/20160328030616603

-위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뉴스기사 첨부-


본 도서는 동양북스 서평단 활동 신청을 통해 지원받은 도서다. 이 도서를 읽고 관심이 생긴 이라면 위의 다큐멘터리도 한 번 보면 좋겠다. 최근 의사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국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치적, 개인적 견해와는 별개로, 나는 다른 것들을 떠나 본연의 자리에서 전문가로 역할을 지키는 모두를 응원할 따름이다.


 나 또한 부끄럽지만 한 때 비행단의 특정 분야 관련 최종 담당자 역할을 해왔던 입장에서 본 도서에서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화되고, 또 위의 다큐멘터리에서 전문가로의 모습은커녕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일련의 행태를 보면서 분노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의학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모든 실험이 동물을 통해, 그리고 점점 사람과 가까운 신체 구조와 유전자를 지닌 동물을 지나 사람에게 실험이 시도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위 다큐멘터리의 말도 안 되는 행태에 더욱 분노했을지도 모르겠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제 다큐멘터리 시청까지 끝났으니 계속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체호프 희곡선"은 리디를 통해 버스 이동 시간마다 전자책으로 읽어 다 읽었지만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악인의 서사", "초예술 토머슨", "신사 숙녀의 자기방어술", 거기에 최근에 받은 "레어 리더십"까지. 아, 거기에 다음 독서모임 도서도 읽어야 한다. 이번 달은 진짜 책만 읽다가 남은 시간을 보낼 거 같은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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