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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in Jul 30. 2021

나는 동물

사람은 동물. 너도 동물. 응 너 말이야.

'보수'는 단어를 따지고 '진보'는 문맥을 따진다.

오랜 시간 나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였다.

왜? 젊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진 게 없으니까.

 

보수는 예쁜 단어다. 가진 것을 보전하며 지킨다는 뜻.

진보는 힘찬 단어다.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지는 것을 추구한다는 뜻.




가진 것이 없는 젊은 날.

나의 현실을 타개, 세상을 변혁하겠다는 꿈을 갖는 건 인간 본성의 연장선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피 땀 흘려 일궈낸 많은 것들을 소중히 지키겠다는 마음도 역시 본능이라 본다.



14살, 중학교 1학년 도덕 첫 시간이었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문장을,

무려 ‘도덕’이라는 심오하디 심오한 이름의 가진 그 미스테리하던 수업에서 마주한 그날,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생각하는’이 아닌 ‘동물이다’에 꽂혀 몇 날을 괴로워했다.  



나는 ‘동물’이구나.

나는 ‘생각’을 할 뿐 ‘동물’이구나.

내가 ‘동물’이라 ‘동물’이라고 배웠을 뿐인데 나는 왜 이 문장에 이렇게 마음이 아릴까?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우습게도 이 문장은 오랜 시간 내 마음 어딘가 저변에 가라앉아, 데굴데굴-. 심해를 굴러 다니다,

다양한 종류의 삶의 고단함을 마주하는 어떠한 순간 가벼이 수면위에 올라 심심한 위로를 건네주곤 했다.


괜찮아. 너 ‘동물’이라 그래.

괜찮아. 그 ‘사람‘, ‘동물’이라 그래.  



‘동물’. ‘動物’

움직이는, 흔들리는/ 물건, 그리고 만물.  


그러니

‘사람’:  생각하는/흔들리는, 만물



흔들려도 돼.

너 생각하며 움직이고/바뀌고 있잖아.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은 마치 자식처럼.

오랜 시간 나를 고민하게 하고 속을 썩게 만들었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어 어느새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나는 ‘생각’하는 ‘동물’

고로 인간.

고로 사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나에겐 부끄러운 기억이 많다.

게다가, 눈은 하늘 천정 어디쯤 달려,

스스로를 용서하는데 무척이나 인색하다.



오랜 시간 나를 미워했다.

왜 더 멋있지 못하느냐-.

너 정녕 이것 밖에 안되느냐-.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다.

근데 이제 그만 하려구.

나 그냥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랬어.

멍청했어서 미안해.  



근데 나 동물이야.

나 움직여. 나 변해.

아니 사실 아직, 다 안 변해서 그래.

부족해서 미안해.

꼭 사람이 될 게.

매사에 생각 많이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시간을 더 줘.



정치가 삶의 이유였던 어떠한 시절을 지나,

나는 이제 진보도 보수도 아닌 어떠한 제삼의 진영에 놓여 졌다.

이유는 뭐.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내가 믿었던 사람들이 많이도 개새끼로 판명 나서.  

아.. 사람 속 모르는 구나.

무엇보다 나 헛똑똑이. 응. 사람보는 눈 없구나.

아..!

숱하게 이걸 반복 하고 나니 이리 됐다.



그러고 깨달은 것은,

나는 진보를, 진보 진영을, 진보 진영의 사람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진보라는 가치에 매력을 느낀 것 뿐이 었다는 것.

그냥 그 ‘개념’이 대표하는 그 ‘결’이 내 취향일 뿐이었다는 것.



그러고 다시 보니 ‘보수’라는 말도 그렇게 이쁘더라.

가진 것을 지키는 건.

상상이상으로 몹시도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것이라는 걸 이젠 조금 이해해서.

뭐- 아직도 가진건 없지만.



사람은 변한다.

동물이니까.

헌데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것 같다.


위로를 한다.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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