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개, 큰 선생님 그리고 라이벌
우리 가족은 현수를 큰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9살쯤의 기억인가-. 나와 두 살 반 차이나는 현수가 초등학교 입학 준비를 해야 할 무렵의 어느 겨울, 안방에서 엄마와 아빠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힘이 없고 작았을 때 일 수록 집안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를 더욱 예민히 감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초식동물처럼. 물을 마시러 가는 척 주방으로 발길을 옮기며 안방의 동태를 살피던 나는 방안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현수를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로 보내야 하는지 아니면 특별반이 있는 우리 학교와 한참이나 떨어진 다른 학교로 보내야 하는지 엄마아빠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논의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차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안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아마 두가지 점에서 화가 치솟았던 것 같다. – 니들이 뭔데 감히 내 동생을 장애인 취급하냐는 것 하나와 도대체 나를 뭘로 보길래 놀림따위에 주눅이 될 인물로 취급하냐는 것-, 분노에 사로잡힌 나는 손의 컵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바락바락지르며 그들의 조용한 토론을 한순간에 깨 부셨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아빠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싸움의 제1원칙: 싸움은 나보다 강한 상대에게만 걸 것. 이건 깨어지지 말아야 할 철칙이니까.
나의 성질머리는 아빠에게서 왔다. 작년에 미국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아빠가 떠나는 내 귀에 ‘너네 엄마같은 남자 만나, 너나 나같은 남자 만나지 말고, 착하고 차분한 남자, 니 얘기 다 들어주는 남자 만나, 안 그러면 개판나’라고 한 것은 그냥 하는 농담이 아니라 나의 창조자의30년 간 나를 관찰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출해낸 그의 진심인 것이다. 놀랍도록 닮은 우리는 정말 평생을 피터지게 대립하고 목청을 높이고 처절히 상처받고 어색하게 사과하며 아프게 서로를 이해해 왔다.
내 삶의 초반 20여년은 아빠와의 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도 난 아빠와 집안의 평화를 다 박살내는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도 난 밤새 이불 속에 숨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분이 풀리지 않아 숨죽여 꺼이꺼이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엄마가 조용히 먹을 것을 방안에 놓아줬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전쟁은 아빠의 승리로 끝이 났을 것이다. 결국 현수는 나의 학교에서 한참 떨어진 다른 학교의 특별반에 입학하게 되었으니까.
그해 어느 봄, 엄마가 현수와 함께 나의 학교에 마중 나온 것을 학교의 몇 아이들이 보았나 보다. 다음날 ‘니 동생 장애인이야?’라며 못된 남자아이들 몇이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기다렸던 순간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희미한 설렘이 느껴졌던 것 같다. 마침내 응어리진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니까-. 아마 ‘내가 아빠는 못 이겨도 니 새끼들은 이길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두가 나를 주목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며 기다리다, 타이밍 좋게 제일 힘이 셌던 아이, 제일 우두머리였던 아이의 목을 조르며 미친년처럼 달려들었다. 죽일 듯 패 줬다. 그 아이 어딘가를 온 힘 다해 이로 물어뜯은 기억이 난다. 모두의 시선을 의식하며-.
아빠가 학교로 찾아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남자아이의 부모님께 아빠가 치료를 몇 번이고 더 하고도 남을 돈을 현찰로 줬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와 함께 돌아오는 길. 아빠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부심이 가득 찬 눈으로 운전하며 ‘넌 내 새끼야. 진짜 내 새끼야. 넌 내 첫 작품이야’를 수없이 읊조리던 그 옆모습이 기억난다. 집에 가기 전 밥을 먹으러 들른 식당에서 아빠는 나에게 자신이 소싯적 얼마나 싸움을 잘 했는지 왕년의 영웅담을 한껏 늘어 놓으며 나에게 몸소 터득한 그 수만가지의 싸움기술을 끝도 없이 가르쳐주었다. 세상 가장 따뜻한 눈으로 그 시절의 그 소년으로 돌아간 듯 환히 웃으며-.
언젠가 아빠에게 ‘현수는 도대체 왜 아파야만 했을까’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빠는 오랜 시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와 이미 생각이 다 정리된 사람처럼 자신의 답을 들려주었다. 현수가 없었으면 자신은 정말 교만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다 놓치고 있으면서 놓치는 줄도 모르는-, 그러니 현수가 아픈 것은 현수에게는 안쓰러운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복이라고, 인생의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시는 아주 고마우신 분이니 큰 선생님으로 잘 모시자고 아빠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현수를 큰 선생님으로 모신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가장 소중한 것들은 전부 현수가 가르쳐 주었다. 지금의 내가 내 모습을 갖추게 된 모든 계기의 근원에는 늘 현수가 있었다.
현수- 내 전부. 내 큰 선생님.
아빠- 내 반절. 내 최대의 라이벌.
가장 소중한 걸 가르쳐 준 그대들에게,
사랑을 담아-.
PS. 그날 이후 내 별명은 미친개가 되었지만 학교에 놀러오는 현수는 모두가 따뜻하게 반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