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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n 01. 2024

품위유지 논쟁

매년 실시하는 종합건강진단이지만 올해도 무사히 넘어갔다는 사실위안을 얻는다.

갈수록 노화가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연식에 비해서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으니 이만하면 만족하는 편이다.


한눈에도 품위가 느껴지는 젊잖은 중년의 교수가 여러 장의 판독사진을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니 내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말투며 표정이며 환자를 대하는 열정이며 그 사람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는 품격은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차지하는 위상 덕분에 가중되는 듯하다.  

 

이렇듯 사람의 품위를 할 때 그 직업군의 사회적인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내부 구성원들의 적절한 희소성을 전제로 그 이미지의 경중이 결정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IMF가 오던 해인 1997년도에 배출된 공인중개사로서 당시에는 제법 품위를 유지하면서 직업활동을 할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

문제는 이후 넘쳐나던 실업자 구제책의 일환으로 너무 많은 자격증이 남발되면서 품위와는 거리가 먼 직업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때는 콧대가 드높기로는 양대산맥을 형성하던 직업군이 바로 변호사들이다.

그러나 ‘로스쿨 도입 이후 11년간 지방변호사 수 2배 늘었다’는 기사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요사이의 팍팍해진 사정을 짐작할 수 있겠다.

서울시는 변호사자격자 채용 때 기존의 6급에서 7급으로 하향조정할 계획이라 하고, 이미 대기업에서는 과장에서 대리직급으로 낮추어 채용하는 현실이다.

법률시장의 한정된 파이를 두배로 늘어난 사람들이 갈라먹으려니 심지어는 하잖게 여기던 공인중개사들의 업무영역까지도 넘보다가 체면을 크게 구겼을 정도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그 희소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능력집단으로는 의사라는 직업군뿐이다.

‘연봉 4억 2천만 원에 아파트와 휴양지의 별장까지 제공하겠다는데도 단양군 보건의료원에서 응급실 의사를 못 구하고 있다’라는 뉴스를 보고 있자면 가히 그들의 위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직업군의 숫자가 정해져야겠지만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그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

여론조사의 데이터로 나타난 국민다수의 의견은 의사수의 부족현상에 동의하고 있지만 정작 의사단체의 생각은 오히려 지금도 공급과잉이라는 지적이다.


저마다의 직업군마다 시장이 요구하는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부족하기를 바라는 은 인지상정이지만 음과는 달리 현실의 상황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변호사직업군마저 무너진 마당에 감히 어떤 직업군이 정부의 귄한인 공급 숫자를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쪽수로야 우리 공인중개사들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변변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특히나 저출산의 영향으로 청소년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는 현실에서는 모든 직업군이 느끼는 공동의 위기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도 나 홀로 독야청청 품위유지에 성공한 의사 직업군으로서는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처해있는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

오히려 노령인구의 증가에 힘입어 의료시장의 수요에 대응하는 신규인력의 증원 압박이 더욱 거세진 상황이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의사직업군 역시도 지속적인 품위 유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한정된 파이에 접근할 수 있는 절대적인 숫자가 늘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소위 '의대생 증원 제로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의료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대하여 국민일반이 느끼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하염없이 독불장군식의 단체권 행사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도 임계점에 와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품위를 유지하면서 직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었던 우리 사회의 마지막 로망직종이 드디어 기로에 선 상황이라고나 할까?


어느덧 우리 나이가 '아'하면 '어'처럼 말귀를 무진장 잘 알아듣는다는 공자가 말한 이순(耳順)이 되었다.

쉽게 말하면 인생살이에 있도통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인데 단체로 인생을 달관했을법한 초딩 친구들이 모처럼만에 자리를 같이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내리 6년을 한 반으로 지낸 탓에 평소에도 허물없이 지내지만 백세에 입적하신 친구의 모친상에서 만났으니 허물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친구들 가운데 유일하게 대기업부장까지 승진하여 출세가도를 달렸건만 조만간 정년퇴직을 앞둔 친구 녀석이 묘한 질문을 하는 거다.

요사이의 핫이슈를 주제로 무료한 시간을 때워보려는 의도였지만 고놈의 질문이 참으로 묘했다.

“너거들 의대생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단체의 논리가 뭔지 혹시 아는 사람 있나?”


처음에는 '짜식이 대기업 부장이라고 촌놈 무시하는 거가!'라는 투로 빙그레 웃었지만 '어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선뜻 답변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대여섯 명의 다른 친구들도 계속 미소만 보일뿐 자신 있게 답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 이것 뭐지!'


벌써 몇 달째 뉴스의 도입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우리 사회의 핫이슈가 아니던가!

하다못해 자식 며느리 사위 중에서도 의사가운 걸치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쪽 눈치를 볼 입장들은 아니었지만 이런 상식적인 질문 하나에도 우린 모두 꿀 먹은 벙어리신세였다.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단체로 휴학계와 사직서를 제출하면서까지 내어 걸은 결사항전의 명분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이순(耳順)에 이른 인생달관자들의  수치였다.


몇 시간을 죽치고 앉은 죽마고우들의 담소에서조차 논쟁감이 되지 않았던 것은 실제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아는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또 다른 사정도 있었다.

명색이 공자님 말씀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일진대 이순의 경지에 이른 자들은 '아'하면 '어'로 알아듣는 텔레파시대화법에 익숙한 자들이다.

굳이 매주왈고주왈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모두는 빙그레 미소 짓는 염화미소(拈華微笑)에 동참함으로써 답변에 대신했다.

 

다음 날 아침, 어제의 궁금증을 떠올리며 ‘의대생증원의 반대이유’를 키워드로 입력했더니 대표적인 세 가지가 화면에 떴다.

◆ 의료재정의 붕괴 가능성

◆ 의료교육의 부실화

◆ 정부 일방통행 추진의 반감

   

만약 어제 누군가 이 세 가지의 반대 명분을 디테일하게 설명했다면 눈알을 부라렸주변 친구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 하면 어로 알아들어야지, 억지로 가져다 붙인 사족을 가지고 뭔 말들이 그렇게 많은 거야,  

사족이 본질은 아니잖아!'


단체로 이순의 경지에 도달한 우리 친구들은 지금 부모의 심정으로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공든 탑이 무너지게 생겼는데 누군들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끓어오르는 분노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에 비난보다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의 상실감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편이다.


인생 전체를 걸다시피 치열하게 노력하여 전문의가 되고자 했을 때는 그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그들은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오직 의대생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공부했고, 그들이 꿈꾼 세상이 있었다.

소독냄새 자욱한 병원에서 오직 전문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쪽잠을 자면서 십 년의 황금기를 버텼을 전공의들이 꿈꾼 세상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 그 꿈을 펼쳐보지도 않았다.

그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신기루처럼 꿈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니 그들이 받은 충격은 가히 상상이상이었다.

의대생들은 휴학계를, 전공의들은 사직원을 제출함으로써 그들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를 던진 상태다.


그러나 이순의 경지에 이른 우리 친구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장담하건대 정계에 진출할 한두 명을 제외하면 백이면 백 대부분의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다시 가운을 입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군이 차지하는 위상은 가히 충분히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자격증 소유자가 잠시잠깐 정계로 외유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법조시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라고나 할까?


치밀어 오른 분노로 인하여 지금의 심정 같아선 절대로 그럴 일 없다고 큰소리치겠지만 솔직히 자문해 보라!

일평생을 다른 직업군의 일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있는지를.

공무원이나 하면서 살아가겠다고!

6년 차에 접어든 공무원의 실수령액이 고작 25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사업이나 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빚더미에 앉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영업자의 현실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전문의를 포기하고 그냥 일반의로 개업하여 살아가겠다고!

동네 외진 자리에서 내과부터 외과까지 전천후 만능 일반의사로서 살아가는 미자격자의 설움을 감당할 수 있다고?


가령 의대생증원 정책으로 의료보험관리공단의 재정이 붕괴하고 의료교육의 수준이 후진국 수준으로 부실해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의과대에 진학하려는 꿈을 가진 아이들이 사라지겠는가?

정작 재학생들과 전공의들은 휴학계와 사직원을 수리해 달라고 목소리를 드높이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라!

눈치만 보던 수험생들과 명문대의 반수생들 심지어는 직장인들까지 가세하여 의대생증원을 인생반전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역설적인 현실이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르고 보면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능력이 생기는 법이다.

쾌도난마 식으로 그들의 상실감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오늘날의 변호사 꼴 나기 싫다는 항변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국이 기묘하여 마치 외통수에 걸려든 느낌이다.

의대생증원을 밀어붙이는 정부로서도 사실은 이제 퇴로가 없지만 이번만큼은 국민들도 입술을 깨어문 듯 하니 말이다.


누구보다도 어렵게 공부하여 취득한 의사직업군일진대 그에 걸맞은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주장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도서울이 아닌 단지 지방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응급실의 불이 꺼져버린 보건의료원을 바라보는 촌부의 품위는 어쩐다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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