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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43)

북경선언 5

by 맥도강 Mar 22. 2025

지구촌 전체가 이 흥미로운 뉴스에 미주왈 고주왈하고 있었을 때 중국지도부의 내부분위기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시 주석의 충복으로 통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왕 서기가 자신의 집무실을 들어서자마자 구둣발로 책상을 걷어찼다.

주석실의 긴급 호출을 받고 시 주석으로부터 특별한 지시를 하달받은 후 방금 돌아온 길이다.

왕 서기는 중국공산당 내에서도 단 일곱 명뿐인 중앙상무위원회의 위원이면서 시 주석의 정치적 행동대장을 자임하고 있어 그 위세는 가히 나는 새도 떨어뜨릴 지경이다.

‘빌어먹을 한국대통령을 어떻게 처리한다?’

잔머리를 굴리던 왕 서기가 무엇이 생각났던지 사회과학원의 허밍친 원장에게 전화했다.

“허 원장! 동북공정은 당신네들 소관이니 오늘 한국대통령이 터트린 폭탄은 당신이 책임지고 수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

“그렇챦아도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허 원장의 깔끔한 업무처리 솜씨야 내 익히 알고 있소만 이번 사안은 보다 더 신중히 처리해야 할 것이오!

감히 우리 중국을 상대로 경거망동한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되 그 불똥이 당국으로 튀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할 것이오!

아마 한국대통령은 지금쯤 선양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 같은데 주석께서 격노하신 관계로 북경에서의 이후 일정들이 전면 취소된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오,

그곳에서 남은 방중기간을 하릴없이 관광이나 하다가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중국을 상대로 객기를 부리다간 어떤 대접을 받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잔 말이요!”


언제나처럼 하늘색 청나라 전통복장을 단정히 차려입은 허 원장이 뒷짐을 진채 원장집무실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며 고민에 빠졌다.

왕 서기의 특별한 지시는 동북공정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한국대통령을 응징은 하되 외교적 파장을 고려하여 일처리를 정교하게 하라는 맞춤형 주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궂은일이라면 길림성의 왕징이 제격일 테지만 매사에 거친 일처리가 마음에 걸려서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지난여름에도 불쑥 북경으로 날아와서는 감히 자신의 집무실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패악 질을 하던 통에 아랫사람들 볼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동북공정의 과업 대부분이 동북 3 성지역의 실무현장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장백산천지회만 한 하부 실행단체를 찾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무례한 언행과 시도 때도 없는 인사 청탁이 심히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적당히 왕 회장을 컨트롤하면서 관계를 지속해 왔던 속사정이었다.


백두산의 서문방향으로 중국식 호텔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화려한 청나라풍의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한 호텔이 숲 속에 가린 채 우뚝 솟아있다.

위풍도 당당하게 일필휘지로 새겨진 호텔의 이름은 장백호텔이다.

호텔의 맨 위층인 9층 전체를 일단의 삼합회 패거리들이 사용하고 있었고 금빛 바탕에 짙붉은 색으로 쓰인 현판에는 ‘장백산천지회’라고 쓰여 있다.

그중에서도 복도의 가장 왼쪽 끝에 위치한 드넓은 방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장백산천지회의 우두머리인 왕 회장의 사무실이다.


방금 북경의 허 원장으로부터 모종의 지시를 받은 왕 회장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시거 연기를 무지막지하게 뿜어 됐다.

비범하지 않은 거구의 풍모에 언제나처럼 모자부터 구두까지 올 백색으로 치장한 왕 회장의 오른손에는 잠시도 시거가 떠나지 않는다.

매서운 눈빛이 인상적인 행동대장 훠치산이 그의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검색 중이다.

북경대학에서 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하던 윤 비서관의 사진을 찾아내 왕 회장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회장님 보십시오! 이십 년 전의 윤 팀장 바로 그 작자가 틀림없습니다,

한국정부의 통일정책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답니다!”

“그래 맞아 또 그 작자였어!

그때 덤퍼트럭으로 완전히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불사조가 되어서 다시 돌아왔구먼,

이 작자가 한국대통령과 함께 있다면 대통령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이 친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이 틀림없을 거야,

허 원장의 당부가 동북공정에 맞서면 어떻게 되는지를 한국대통령이 알아먹도록 해주라는 거야,

톡톡히 망신은 주되 외교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북경이 곤란해진다나 어쩐다나,

적당한 선에서 손을 좀 봐주라는데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 젠장!”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능수능한하게 꼼지락거리던 훠치산이 또 뭔가를 찾아낸 모양이다.

“회장님! 윤 팀장 이 친구의 부인이 옛날에 우리가 죽인 배 교수의 딸 배은하 같습니다”

훠치산이 보여주는 사진을 흥미롭게 들여다본 왕 회장이 그의 큰 손바닥으로 힘껏 손뼉을 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때 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시거에서 재가 떨어져 온 사방으로 날렸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요즘은 이 스마트폰이 도깨비방망이군,

뭐든지 다 알아낼 수가 있으니 말이야,

좋았어! 한국대통령에게 경고하는 본보기로 배은하가 적당하겠군,

서울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 외교문제와도 관련이 없을 테고, 오랜만에 피 맛을 한번 보자고!

우리가 보내는 경고의 표시는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겠지!”


피 맛을 한번 보자는 왕 회장의 말에 그동안 움츠려 들었던 훠치산의 세포들이 순식간에 생기를 되찾았다.

깍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서울에 있는 아이들에게 연락해서 가급적 빨리 조치하라 지시하겠습니다!”

다시 시거를 입에 문 왕 회장이 시거연기를 천장으로 쏘아 올린 후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왕이면 오늘 자정 안으로 조치하는 것이 좋겠어,

그래야 오늘 일에 대한 응징의 표시가 될 테니까”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를 설립하여 재중 동포사회에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던 배 교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세력도 이들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교통사고를 위장하여 윤 비서관을 죽이려 한 세력도 바로 이들이었다.

'장백산천지회' 이들은 동북 3성 지역에서 공안은 물론이고 당정군에 걸쳐서 그들의 마수가 뻗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서울 속의 연변이라는 대림동 일대에서 활약하는 건달패들도 이들 조직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 회장이 이끌고 있는 이 단체는 보통의 삼합회 건달 세력들과는 질적으로 그 차원이 달랐다.

만주족의 후예로서 청나라의 발원지인 장백산을 지키는 것이 이들의 신념이라면 현재 북한과 반반씩 공유하고 있는 장백산의 천지를 온전히 되찾는 것이 이들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였다.

따라서 장백산을 백두산이라고 부르면서 신령이 깃든 영산으로 받들어 모시는 우리 동포들을 핍박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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