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폭죽놀이 6
오전 열한 시,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교황과 함께 정 위원장이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면서 입장했다.
백악관의 상황실에서도 전면에 부착된 대형 TV모니터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악관의 참모들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뉴프레지만큼은 달랐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기가 그의 얼굴 표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대체 교황이 언제부터 독재자의 후원자가 되었지?
저 늙은 교황은 중증 치매에 걸린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교황이란 작자가 어떻게 사탄의 무리와 한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뉴프레지의 빙정거리는 듯한 말을 튼볼이 곧바로 받아서 맞장구를 쳤다.
“이 모두가 한국정부의 농간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들이 기획한 정교한 각본에 의해서 세상 사람들이 놀아나고 있어요,
수소폭탄으로 일본을 위협한 독재자가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세상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백악관의 이런 푸념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지금 능라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감동적인 장면에 푹 빠져들었다.
교황의 기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들이 사라지게 해 달라는 간청으로 일관했다.
CNN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들이 정조준하는 카메라의 방향은 정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인사들이 두 손을 모은 채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능라도에 운집한 이십만의 인원이 함께 기도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종교생활을 하지 않던 북한사람들이 갑자기 독실한 가톨릭신자라도 된 것처럼 교황의 기도에 동참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갈망하는지를 모든 지구촌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백악관 상황실의 분위기는 몹시도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자칫 미국이 악당으로, 북한이 그 반대편에 선 선량한 피해자로 비칠 수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자 뉴프레지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봐요 튼볼 보좌관!
저 교황 영감탱이가 대체 언제 떠나지?
차라리 저 미친 영감이 떠난 뒤로 폭죽놀이를 연기하는 것은 어떨까?”
팔짱을 한 채 뒤쪽의 벽에 기대어 서있던 튼볼 보좌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문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의 농간에 꼬리를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미군단독으로 수행하는 전쟁은 자칫 베트남전에서처럼 수렁에 빠질 수가 있어요,
교활한 시 주석이 또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요”
이때 뉴프레지의 옆 자리에서 내내 TV 모니터만 응시하던 국방부장관이 이번에는 작심을 하고서 말문을 열었다.
“어쩌면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와 맞서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이미 그렇게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도 있습니다,
자칫 3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어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실익도 발생하지 않는 이 전쟁은 이제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백악관의 참모들조차도 온통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서자 뉴프레지가 짜증이 났던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면서 워룸 안의 참모들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거친 목소리로 질책했다.
“이런 겁쟁이들! 초강대국 미국이 고작 북한 따위 하나를 어쩌지를 못해서 쩔쩔맨다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야!
국방부 장관! 당신은 나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마음대로 씹어먹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B‒2 폭격기 편대가 평양상공을 한 바퀴 순회만 하고 빠져나왔다는 것이 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국방부장관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로 앉은자리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평양에는 미국시민을 비롯하여 수많은 세계인들이 교황과 함께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폭격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드디어 뉴프레지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감히 미합중국 대통령의 명령을 씹어 먹은 자가 또박또박 말대꾸는 잘하는구먼!
국방부장관! 내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 결정하시오!
오늘 크리스마스가 끝나기 전까지 폭죽놀이를 시작할 수 있겠소? 없겠소?
자신이 없으면 당신은 아웃이니까 분명히 말하시오!”
흥분하면서 다그치는 뉴프레지와는 달리 정작 이번에도 국방부장관은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단호하게 밝혔다.
“그렇다면 난 이 시간부로 당신의 국방장관이 아닙니다!
세계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당신은 지금 이성이 아닌 감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국민들이 부여한 미합중국 대통령의 권한을 당신의 사적인 감정을 위해서 행사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이 말에 충격받은 뉴프레지 대통령이 워룸 상황실의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자 그제야 백악관 참모들의 표정이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주류 언론에서도 백악관에 남아있는 유일한 어른으로 지목했을 만큼 국방부장관의 판단력은 늘 신중했다.
그 덕분에 뉴프레지가 백악관의 워룸을 나간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SNS X로 경질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보수매파의 상징과도 같았던 튼볼 국가안보 보좌관이 특유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미국의 진짜 군인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았군!’
2029년의 긴박했던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상황도 크리스마스가 지난 이후로는 확실히 호전되었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국방부장관을 해임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했지만 그것으로 성탄절 폭죽놀이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초강대국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경제적인 압박으로 북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다시 옥죄기 시작했다.
다시금 몰려오는 이 위기상황을 남과 북은 코리아연방이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대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