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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건강관리 (2)

정화는 끝내 그것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by 양단우 Feb 06. 2025

정화가 무릎 시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동안은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정화는 답답해 죽으려고 하면서도 잘 펴지지도, 굽혀지지도 않는 무릎과 다리 때문에 매우 힘들어했다. 오죽하면 다리를 잘라내고 싶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그런 정화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워낙 독립적인 성향의 정화였기에 부축을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원했다. 정화가 이전보다 조금 더 집안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면서부터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고통을 이겨내려 했다. 몸이 아프다 보니 정화의 밝은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찌푸린 눈썹과 지친 표정만 남았다.


우리 부부는 정화가 안쓰러웠지만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무너진 정화의 건강을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정화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도 점점 못하게 되었다. 아픈 사람 앞에서 계속 떠들어대는 건 신경질만 돋울 뿐이었다. 정화는 살살 움직이며 베란다의 화분들에 물을 주기도 하고, 냉장고의 재료를 꺼내 요리를 하기도 했다. 퇴근 후에 돌아와 보면 그새 정화가 만든 요리들이 식탁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화가 정말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할 일이 전혀 없어 TV만 보고 누워있는 것보다야 조금씩 움직이는 게 낫겠지 싶었다. 정화의 음식을 먹으면서 평소보다 더욱 감탄을 하며 크나큰 리액션을 했다. 정화는 아픈 몸 때문에 입맛도 쓰다면서, 간이 맞냐고 계속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엄지를 올렸다.


많은 날이 지나고 마침내 정화가 외출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한시름을 덜었다. 정화는 단순히 외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아 근무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무릎이 성치 않을 텐데 할 수 있겠냐는 나의 걱정 섞인 물음에 정화는 씩씩하게 이런 어려움을 잘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답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생활이 적응되자 정화가 아주 괜찮아졌다는 걸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요즘 내가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지 않니?”


어느 날 정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정화의 엉뚱한 질문에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만 같아 왜요,라고 물었다. 정화는 까르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이걸 먹고서 다리 아픈 게 나았다.”


정화는 어디선가 원기둥 모양의 통을 가지고 와서 내게 건네주었다. 난생처음 보는 제품이었다. 정화는 잔뜩 흥분한 어조로, 이걸 물에 타먹으면 아프던 게 싹 사라진다고 말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빨간색 분말이 시큼한 향을 내고 있었다. 통의 제조스티커를 확인하니 가관이었다. 이건 비타민도 아니고 의약품도 아닌, 단순한 건강보조식품이었다. 그리고 이런 분말 제품을 물에 타 먹는다고 해서 정화의 건강이 회복될 리가 없었다. 무슨 과일들의 추출물들이 잔뜩 쓰여있는 제조스티커를 보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이 식품의 이름을 검색했다. 쿠팡에도 안 나오고 검색 포털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화에게 말했다.


“이건 약도 아니잖아요. 이걸 먹는다고 해서 아픈 게 낫지 않아요.”

“아니야, 내가 어디서 추천받아서 물에 몇 스푼씩 타다 먹으니까 아픈 게 많이 가라앉았어.”

“어디서 사신 거예요?”

“응, ㅇㅇ이한테.”

“이거 설마… 쿠팡에도 안 팔고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그 ㅇㅇ분한테서만 살 수 있는 건가요? “

“ㅇㅇ이가 주변에 팔고 다니는데 그 앞으로 가입했어. 요즘은 교육을 가면 밥도 공짜로 줘.”

“아이고 못 살아!”


정화의 건강을 회복시켰다는 그 분말의 정체는 바로 다단계 식품이었다. 보통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이 다단계에 잘 빠진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내 가족이 다단계에 들어와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화는 이 분말을 단단히 신뢰하고 있었다. 나는 다단계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따져가면서 차라리 병원에서 제대로 진료를 받고 소염진통제를 드시라고 권유했다. 그랬더니 정화는 이미 그 다단계에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었고 그런지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마를 짚고 쓰러질 뻔했다. 눈앞이 아찔했다. 다단계라니! ㅇㅇ이가 누구냐고, 당장 따져야겠다고 화를 내며 정화의 핸드폰을 뒤졌다. 정화가 말리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도 잘 못 고치던 걸 이제야 조금 나아졌는데, 이것까지 못 먹으면 내가 어떻게 사니….”

병원을 가는 정화와 함께 찍은 셀카. 정화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간헐적으로 진료를 받는다.병원을 가는 정화와 함께 찍은 셀카. 정화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간헐적으로 진료를 받는다.

나는 정화의 슬픈 눈망울을 보면서 착잡해했다. 그리고선 다단계 교육을 받으러 버스로 한 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오가는 정화에게 다단계에 그만 빠져들라고 일러두었다. 정화는 자신이 사업할 재목은 아니기에 다단계 사업을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무릎의 건강에는 좋으니 소비자로만 남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 약속을 깨지 말라고 해두고 정화의 외출을 조심스레 살폈다. 정화는 아예 식탁 위에 분말과 또 다른 분말 세트를 올려놓았다. 대놓고 다단계 제품의 장점을 홍보하기도 했다. 어디가 아프거나 불치병에 걸렸던 사람이 이 제품으로 인해 완치가 되었다는, 종교적 고백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나는 여기에 대응하며 다단계 업체의 피라미드 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분말 덩어리에 몇십 혹은 백만 원 단위의 돈을 붓는다고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정화가 배가 아프다면서 병원에 가게 되었다. 의사는 신 것을 너무 많이 먹어서 위염에 걸렸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먹었냐는 의사의 말에 정화는 분말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의사는 성분이 나쁜 건 아닌데 이렇게 과일 성분을 과하게 먹으면 위에 무리가 간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정화는 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다단계 식품을 조금 줄여서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정화는 약을 먹으면서도 분말을 말을 음료수를 함께 마셨다. 나는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어르신을 억지로 못 나가게 하거나 막을 수는 없었다. 정화는 나한테 사업은 안 할 테니 걱정은 말라면서 교육을 가는 것도 밥을 먹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한 번은 나 혹은 남편까지 끌어들여 다단계에 가입시키려 했기에 내 속이 부글부글 타올랐다. 이제는 이 제품을 검색했을 때 정보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다단계 회원들이 올린 정보였다. 구매 링크와 이어지는 그 정보글들을 보니 더욱 화가 나서, 정화에게 이런 글들이 어떻게 의약품의 효능을 이길 수 있겠냐면서 따져 물었다. 정화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는 착한 다단계도 있다는, 교육받은 곳에서 세뇌되어 온 말을 하기도 했다.


정화가 다단계에 점점 빠져들게 되면서 나와의 갈등이 깊어지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누가 어떤 식품이 좋다고 말해주면, 그 친구를 따라 같이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정화가 이런 식으로 꾐에 빠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화가 답답했지만 억지로 말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다리를 낫게 해 줄 묘안이 없어 분통이 터졌다.


얼마 뒤, 정화는 다단계에 스스로 발을 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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