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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건강관리 (4)

정화는 만보 걷기부터 시작해 병 줍기까지, 돈과 건강의 실속을 찾았다.

by 양단우

"오늘은 어디 가세요?"

"비밀이야."


아침 일찍 정화는 현관문을 열었다. 행선지는 비밀이란다. 그래도 다단계까지 손을 대다가 그만두었던 정화이니만큼 또 다른 함정에 빠져든 것은 아니겠지, 싶어 정화의 외출을 애써 막지 않았다. 정화는 요즘따라 부쩍 아침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지만, 특별히 뭔가를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러다 한 번은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정화에게 물었다.


"아침마다 어디를 나가시는 거예요?"

"응, 새로 다운로드한 어플에서 만보를 채워야지 돈을 준대."

"또 뭘 받으셨어요?"

"이번에는 엄한 게 아니라 진짜 정직한 거야."


휴대전화를 내 코 앞으로 내민 정화의 표정은 아주 솔직해 보였다. 휴대전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토스' 앱의 한 카테고리 안에 만보기 게임이 들어있었다. 정화는 이어서, 만보를 채우기만 하면 몇 십원이고 돈을 주니 열심히 걸어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건강도 챙겨야 하는데 이왕이면 돈도 버는 게 좋지 않겠냐면서. 정화는 앱을 다운로드한 이후에 매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를 꾸준히 걸었다고 했다. 듣고 보니 집에서 약 30분 떨어져 있는 공원까지도 걸어간다고 했다.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가뜩이나 무릎도 안 좋은 상황인데 지나치게 많은 운동량은 몸을 상하게 할 거라고 말하자, 정화는 "내 페이스대로!"라며 피식 웃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벽 일찍 나간 정화의 빈자리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화가 만보 걷기를 멈추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어플에서 더 이상 만보 기능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공지했기 때문이었다. 건강도 챙기고 실속도 챙길 겸,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외출을 즐기던 정화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정화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쓸쓸하게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정화가 운동을 하는 것은 좋았지만, 비가 내릴 때만큼은 미끄럼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몹시 마음에 쓰였는데, 마침 만보기 서비스가 중단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상황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안방에는 자그마한 화장실이 딸려 있다. 그래서 거실과 이어지는 화장실을, 다른 가족 구성원이 사용할 땐 부득이하게 안방의 화장실을 사용하곤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안방 화장실을 쓰려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진풍경이 벌어졌다. 화장실 입구부터 변기 주변까지 아주 빼곡하게 빈 소주병들이 그득하게 놓여 있었다. 깜짝 놀란 나머지 정화를 불러 이게 대체 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정화는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지나갈 수 있도록 소주병들을 한 구석으로 치워 나갔다.


"아침에 만보기를 쓰면서 걷는 대신에 새로운 취미로 하는 거야."

"이게 뭐예요, 맙소사!"


나는 기가 막힌 나머지 이마를 팍 때렸다. 정화는 이게 다 돈이라면서 걷기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빈 병을 줍는 거라고 말했다. 정화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처음'으로 시작해 '진로'를 찾은 정화의 취미는 신선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이고, 못 살아! 나는 이렇게 무거운 병들을 짊어지면 정화의 건강에 영향이 갈 거라고 했다. 정화는 손을 저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 안에서만 주워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정화의 새로운 운동 루틴에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렸다.


이어서 정화는 병을 주우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자기보다 더 젊은 사람들이 새벽에 부지런히 나와서 N잡으로 병을 줍는 것도 보고,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이 유모차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는 것도 보고, 깔끔한 병 주머니들을 내려놓는 젊은이들을 보기도 했다고. 그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건 이른 시간부터 거리를 쓸고 있는 청소부를 만났을 때였다고 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젊어 보이는 청소부가 거리를 청소하며 사람들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고. 그런 자극을 받으니 더욱 부지런을 내며 병을 줍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정화의 말을 들으니 뭔가 가슴이 뭉클한 것 같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기도 하면서, 뭐라고 얘기하기엔 참으로 미묘한 느낌이 올라왔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입을 뗐다.


"어머니, 저희가 드리는 생활비가 많이 적은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건 진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무리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좋아요. 그렇지만 꼭 병 만이어야 해요. 폐지나 캔, 재활용품 등 다른 것까지 모아서 넘치게 들고 다니시면 안 돼요."

정화의 다독임에 나는 시름을 조금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무릎보호대를 차고 있는 정화를 바라보면 걱정을 완전히 벗어낼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정화는 아직까지 그 취미 겸 운동을 놓지 않고 있다. 안방 화장실에는 정화가 쌓아 올린 병들이 한가득이다. 소액 벌이라도 이루어가면서 걷기 운동을 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떠오른다. 내가 때때로 걱정할 때마다 정화는 빈 병을 모으며 일궈낸 통장 잔액을 보여주곤 한다. 벌써 십만 원 단위의 금액을 모은 정화를 보면서 나는 벌이도, 운동도 참 별나다는 생각을 했다. 정화는 연신 싱글벙글하면서 남은 빈 병의 개수를 헤아렸다.


얼마 전에는 정화가 한 턱을 쏜다면서 짜장면을 시켜 주었다. 이게 웬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정화가 그간 빈 병을 팔면서 모은 돈으로 식사를 사는 것이라 했다. 정화의 노고가 들어간 이 짜장면을, 감히 먹어도 되나 싶었는데 정화는 연신 "맛있지?"라면서 빙긋 웃었다. 나는 정화의 말에 저도 모를 웃음이 튀어나왔다. 유독 짜장면이 달게 느껴졌다.


돈과 실속을 찾은 정화. 그녀의 못 말리는 행보에 나는 몇 번을 걱정하고 또 웃었는지 모른다. 말괄량이 소녀 같은 우리 시어머니가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오늘은 또 빈 병을 얼마나 가져오셨는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안방 화장실부터 살펴봐야겠다. 정화의 땀방울이 빈 병의 끄트머리에서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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