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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Feb 13. 2024

그해, 겨울

<눈사람 아저씨, 레이먼드 브리그스 (지은이) | 마루벌>


“겨울”을 생각하면, 하얗게 어리는 입김 너머 밝게 웃는 아이의 미소가 떠오른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12월의 어느 날, 전철로 먼길을 출퇴근하던 나는 폭설에 길이 막혀 1교시가 끝나갈 즈음에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학교에 연락하기도 어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헐레벌떡 학교까지 정신없이 달려갔다. 

숨을 턱턱 몰아쉬며 마침내 다다른 언덕 위 학교 앞, 학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너무나도 고요했다.


텅 빈 운동장과 수업 중인 교실들이 묘하게 낯설었던 순간,

 “선생님!” 

누군가 반갑게 나를 불렀다. 우리 반 아이 **이었다. 내가 오지 않는 게 걱정되었던 아이가, 교문 앞에서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추운데 왜 여기 나와 있어?” 

“선생님이 언제 오나 기다렸지요.” 


빨갛게 상기된 얼굴, 뽀얀 입김을 뿜으며 반갑게 웃는 아이의 손을 잡고 교실로 가던 날, 차가워진 아이의 손이 몹시도 따뜻했었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커다랗게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지냈던 그 시간들! 

레이먼드 브릭스의 “눈사람 아저씨” 는 눈사람 아저씨와 소년의 이야기가 참 따뜻하게 느껴진 그림책이다. 

딸이 아주 어릴 때, 이 그림책과 함께 보았던 애니메이션은 환상적인 장면과 음악으로 우리 모녀를 사로잡았었다. 눈사람 아저씨와 함께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모습,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련하고 따뜻하다.


눈사람 아저씨와 하늘을 날아 북극 나라에 갈 수 있다면, 산타클로스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다음날 햇빛에 자취를 감춘 눈사람 아저씨를 보며 잠시 슬펐을 테지만, 그보다 오래오래 행복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눈사람 아저씨를 생각하며 작은 희망 하나를 마음에 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 하루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수많은 애환들이 우리를 스치고 관통한다. 그러는 사이 크고 작은 추억들도 함께 쌓여간다. 그리고 그 추억은 슬픔을 견디는 힘이 된다.

혹독한 현실의 위기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어쩌면 그러한 추억일 것이다.


일 년을 마감하며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들이기도 했다.한 장 한 장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쳐다보며 미소 짓는 지금, 이 기쁨들이 모여 희망이 되고, 그것은 내일을 살게 한다.

머지않아 우리들의 희망은 커다란 꿈과 열망이 되어 하늘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넓은 운동장 위에서 눈사람 아저씨와 함께,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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