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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Feb 13. 2024

존재의 의미를 묻는 너에게 1

『미스 럼피우스 - 바버러 쿠니, 시공주니어, 1996』

매월 말, 우리 반에서는 조촐한 생일 파티가 열린다.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축하 편지를 쓰고, 작은 과자로 만든 생일 케이크 앞에서 다같이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준다.

겸연쩍은 듯 기분좋은 얼굴로 생일을 축하받는 아이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큰 기쁨이다.

부모님께 드릴 작은 미역 봉지와 선물 하나, 친구들의 축하 편지 묶음을 주며 나 역시 활짝 웃으며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파티가 끝날 무렵, 교실 뒤쪽에서 한 아이가 중얼중얼 장난스레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어차피 죽을 꺼, 왜 태어났니? ” 

‘기쁜 마음으로 생일을 축하해주는 자리에서 이게 웬 장난이람?’ 

노래를 부른 아이는 별다른 의도없이 장난을 친 게 분명했지만, 살짝 화가 났다. 

가볍게 아이를 나무라다가 문득, ‘그런데, 정말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존재의 이유에 대해 사실,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다. 그것을 생각해보기 전에 이미 나는 태어났고, 성장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별 생각없이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고, 긴 세월동안 교사로서, 엄마로서의 일상을 살았다.

사춘기 시절이나 대학생일 때는 나름 진지한 고민을 했던 것도 같지만, 어느 순간 일상에 치여 존재의 의미 따윈 까맣게 잊고 살았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순간 순간마다 내 의식과 행동의 이유나 목적은 있었어도,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한 자각이나 소명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듯 하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형벌’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들을 속인 시지프에게 내려진 가혹한 형벌은 거대한 바위를 높은 바위산 위로 밀어올리는 것이었다. 온 힘을 다해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계곡으로 떨어지고, 매번 처음부터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영원히 계속해야만 하는 벌!

아무런 보람도 희망도 없는 무의미한 일임을 알면서도, 시지프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신들에게 반항했다.

카뮈에 의하면, 인간의 삶은 본래부터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참다운 의미가 생긴다고 한다. 인간의 실존적 삶은 매 순간순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함으로서 진정한 자기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자 자신이 가진 의미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

나의 실존적 삶은 무엇일까? 내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한다면,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지금 내가 선택한 내 삶의 의미는 배움과 성장, 그리고 나눔이다. 

나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는 삶, 내가 가진 역량과 잠재력을 발휘해서 꾸준히 성장하는 삶을 꿈꾼다. 내가 조금씩 조금씩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사려깊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있다는 만족감이 나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 또한, 내가 꿈꾸는 최고의 행복이기도 하다.     

『미스 럼피우스』는 바바라 쿠니의 그림책으로 밝고 아름다운 풍경과 잔잔하면서도 우아한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다. 어린 앨리스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머나먼 세상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른이 되어 아주 먼 곳에 가 보고, 할머니가 되면 바닷가에 와서 살 거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다.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구나.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

어른이 된 앨리스는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일을 하고, 머나먼 세상을 여행하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바닷가 마을에 정착한 앨리스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한 끝에 마을 곳곳에 루핀 씨앗을 뿌린다. 이듬해 온 마을은 아름다운 루핀꽃이 가득해지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한다.     

<미스 럼피우스>의 삶은 내가 꿈꾸는 삶이다. 삶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걷는 걸음마다 작은 꽃씨를 뿌릴 것이다. 내가 배운 삶의 지혜와 성장의 기록이 담긴 나의 씨앗. 

삶의 곳곳에서 내가 뿌린 많은 꽃씨들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내 힘으로 이 넓은 세상을 온통 꽃밭으로 물들게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나의 꽃씨가 누군가에겐 위안의 꽃밭이 되어 준다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어떤 이를 잠시 미소 짓게 하는 한 송이 꽃으로만 피어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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