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안에서 벌어지던 전쟁의 지도를 완성했다.
나를 괴롭히던 것은 나약한 의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설계된 뇌의 오래된 시스템이었다.
고장 난 경보기처럼 울려대는 편도체와, 그 경보를 피해 쾌락을 찾아 폭주하는 도파민 시스템.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는 해결책을 찾아나설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내 뇌를 재배선하는 첫 훈련을 시작한다."
나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텅 빈 방, 혼자만의 자리에 앉았다.
뇌과학의 원리를 이해했다는 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이것은 더 이상 신비주의가 아닌, 명확한 목표를 가진 신경 훈련이다. 헬스 트레이너에게 운동법을 배우듯, 나는 내 뇌의 트레이닝을 시작하는 참이었다.
하지만 막상 눈을 감자, 어색함이 밀려왔다.
‘자세는 이게 맞나?’, ‘손은 어디에 둬야 하지?’, ‘숨은 코로 쉬어야 하나, 입으로 쉬어야 하나.’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론은 완벽했지만, 몸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삐걱거렸다.
나는 책에서 본 대로, 혹은 어디선가 들은 대로 호흡에 집중하려 애썼다. 들숨, 날숨. 코끝을 스치는 공기의 감각.
처음에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 잡념이 사라진 완전한 ‘무(無)’의 상태를 기대했다. 이 소란스러운 내면을 잠재우고, 한 번쯤은 온전한 평화를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것은 고요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수십 년간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낡은 창고의 문을 연 것과 같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고요가 아니라, 오랫동안 갇혀 있던 온갖 종류의 소음과 먼지였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 내 머릿속 생각의 홍수
나는 정적 속에서 오히려 생각이 뿜어져 나오는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고요해지려 할수록 내면은 더욱 시끄러워지는 역설과 마주했다.
그것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의 방문과 같았다.
어제 있었던 사소한 말다툼에 대한 후회, 내일 처리해야 할 업무에 대한 걱정, 10년 전의 잊고 있던 부끄러운 기억,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 내 의식의 공간을 점령했다.
명상을 통해 이 생각들을 잠재우고 싶었는데, 오히려 나는 생각의 홍수 한가운데에 고립되었다.
‘이래서야 명상이 무슨 소용인가. 나는 역시 안 되는 건가.’
처음에는 이 생각들을 ‘없애야 할 문제’로 규정했다.
나는 떠오르는 생각 하나하나를 붙잡아 그것을 분석하고 해결하려 애썼다. "애써 하나씩 잡아내서 풀어내는" 시도였다. ‘이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고, 저 걱정은 저렇게 대비하면 되겠지.’ 마치 어지러운 방을 치우듯, 생각들을 정리정돈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첫 번째 함정이었다. 생각을 해결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또 다른 ‘생각’이었다.
하나의 생각을 정리하면, 그 정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생각이 파생되었다. 나는 생각의 흐름을 멈추려다, 오히려 더 거센 생각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명상론적 집착’이다. 생각을 없애려는 행위 자체가, 내가 가장 벗어나고 싶었던 ‘생각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길을 잃었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10분: 고요함이라는 고문
생각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자,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더 거대하고 끈질긴 벽과 마주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지루함’이라는 이름의 고문이었다.
생각의 홍수가 잦아들자, 텅 빈 공간을 견디지 못한 내면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상태를 행복하고 풍요롭게 느끼고 싶은데, 정작 내 안에서는 이를 지루하고 재미없음으로 느끼며 몸을 배배 꼬게 만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온몸이 근질거리고 좀이 쑤셨다.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 의미 없는 영상이라도 보며 이 시간을 채우고 싶은 갈망이 나를 덮쳤다. 이 무의미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탐구했던 이론이 현실의 경험과 연결되었다.
‘이것도 도파민 기반 시스템의 요구 신호겠지. 게임이든 음악이든 소통이든 뭐라도 몰입하거나 차라리 잠을 자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랬다. 이것은 단순히 나의 인내심 부족 문제가 아니었다. 평생을 강렬한 자극에 길들여져 온 나의 뇌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고요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자극 결핍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의 뇌는 이 지루함을 ‘고통’으로 인식하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라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거대한 벽 사이에 낀 기분이었다. 한쪽에는 ‘생각의 홍수’라는 소음의 벽이, 다른 한쪽에는 ‘지루함’이라는 침묵의 벽이 버티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싸움의 포기: '흩뿌려두고 돌아오기'라는 첫 번째 기술
생각과의 싸움에서도 졌고, 지루함과의 싸움에서도 졌다.
나는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졌다.
더 이상 무언가를 바로잡으려는 의지조차 남지 않은 그 순간, 역설적인 깨달음이 찾아왔다.
‘본질은 사고방식이 아니라 사고구조이니까. 애써 솎아서 소화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알아차린 채 호흡하는 게 본질이었으니까.’
나는 모든 싸움을 포기하기로 했다. 떠오르는 생각도, 밀려오는 지루함도, 더는 적으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좋은 생각, 나쁜 감정 따위는 없다. 떠오르고 잦아들게 두되,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들이 내 의식의 공간을 자유롭게 지나가도록 "다 흩뿌려지게 두고 호흡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기술’이자, 이 모든 혼돈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열쇠였다. 나는 이 기술을 '흩뿌려두고 돌아오기'라고 이름 붙였다. 방법은 놀랍도록 간단했다.
1단계 (알아차리기):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그저 알아차린다. ‘아, 과거에 대한 후회가 떠올랐구나.’, ‘지루함이라는 감각이 몸을 감싸는구나.’ 하고 판단 없이,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인지한다.
2단계 (흩뿌려두기): 그 생각이나 감정을 붙잡지 않는다. 그것을 분석하려 하지도, 없애려 하지도, 억지로 다른 생각으로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마치 하늘의 구름처럼, 강물의 나뭇잎처럼, 그저 나타났다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3단계 (돌아오기):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나의 주의를 단 하나의 ‘닻’으로 되돌린다. 그것은 바로 ‘호흡’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의 감각, 배가 부풀어 오르고 꺼지는 움직임. 그 어떤 판단도 필요 없는, 지금 이 순간의 순수한 물리적 감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을 반복했다. 수십 번, 수백 번 생각이 나를 데려가려 할 때마다, 나는 그저 알아차리고, 내버려 두고, 호흡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처음으로, 나는 생각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대신, 그 파도가 치는 모습을 해변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tv화면 속의 장면처럼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생각과 감정과 충동은 나라는 땅에서 잡초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그곳에 물과 양분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이내 시들었다.
나는 그들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재촉하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진짜 그들이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빈 땅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는
기쁨이 아니 찾아올 수 없었다.
이것이 성장통이었구나: 나의 첫 번째 통과의례
한동안 ‘흩뿌려두고 돌아오기’ 훈련을 반복하며, 나는 내가 겪었던 그 모든 혼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명상 초기의 그 지독했던 생각의 홍수와 끔찍한 지루함은, 내가 명상에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뇌 회로의 구조적 리셋을 시도하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며, "‘존재 구조’를 바꾸는 명상의 문턱에 와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겪은 모든 어려움은, 낡고 익숙한 시스템이 새로운 변화에 저항하며 일으키는 일종의 ‘성장통’이었다.
수십 년간 굳어있던 뇌의 회로가 새로운 방식으로 움직이려 할 때, 소음과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무질서함 그 자체를 견디는 것’이야말로 진짜 훈련의 시작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명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로운 상태’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소란스러운 상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나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그 치열했던 첫 수련의 경험은 나에게 실패가 아닌, 가장 값진 ‘통과의례’가 되었다. 나는 이제 이 성장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변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이 첫 번째 기술을 바탕으로, 내 안의 시스템을 길들이는 더 깊은 원리들을 탐구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