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 반드시 진다: 내 감정은 왜 나의 적이 되었나

by 김종환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나태하고, 충동적이며, 감정적이고 파괴적이며, 불안해하고 집착하며 조급한 사람. 이것이 내가 내린 스스로에 대한 진단이었다.


그 진단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 서서히 확정되어 왔다. 자꾸 사람을 잃었고, 기회를 놓쳤으며, 귀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허무하게 떠나보냈다. 성급한 선택과 후회의 반복, 그 끝에는 늘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자책만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싸웠다. 내 안의 문제점들이라 여기던 모든 것들과 싸웠다.

의지로 나태함을 억누르고, 이성으로 충동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 싸움의 결과는 늘 패배였다.


나의 ‘적’들은 잠시 물러서는 듯 보이다가도, 이내 더 교묘하고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와 나를 무너뜨렸다. 마치 내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싸움을 걸어오는 것과 같았다.


‘의지, 열정, 결심, 다짐.’ 이 단어들은 얼마나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는가. 나는 수백 번 결심하고 다짐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 변화에 매번 진심이었다. 하지만 나의 진심과 달리, 그것들은 단 한 번도 나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첫 번째 결론에 도달했다.


이 싸움은 이길 수 없다. 감정과 충동에 맞서 싸우려 들면, 반드시 진다.


나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나의 결심이 무른 탓도 아니었다.


전략 자체가 처음부터 완전히 잘못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 감정과 충동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왜 그것들은 나의 의지를 비웃으며 번번이 승리했을까. 어쩌면 이것은 내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그저 내가 아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의 ‘현상’ 혹은 ‘시스템’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를 움직여 온 보이지 않는 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 탐구의 과정에서 나는 ‘도파민 시스템(dopamine system)’이라는 개념을 만났다.



‘좋음’이라는 감정의 재정의


우리는 무엇을 할 때 ‘좋다’고 느끼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재미있는 게임을 할 때,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 나는 이런 ‘좋은 감정’을 좇는 것이 삶의 당연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좋음’의 본질을 파고들자, 예상치 못한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알고 있던 대부분의 ‘좋음’은, 사실 뇌의 도파민 시스템이 만들어낸 일종의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리고 그 시뮬레이션은 대부분 일시적이고, 편향되어 있으며, 반사적이고 왜곡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의 밑바닥에는, ‘지금은 좋은 날이 아니다’라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깔려있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좋음’이라는 신기루를 좇다가 셀 수 없이 많이 넘어졌다.



실망과 좌절의 엔진, 보상예측오류(RPE)


도파민 시스템의 핵심적인 작동 방식 중 하나는 ‘보상예측오류(Reward Prediction Error, RPE)’다. 이것은 우리 뇌에 장착된 ‘기대치 계산기’와 같다.


기대보다 좋을 때 (+오류): 자판기 커피에서 생각보다 훨씬 향긋한 맛이 날 때, 우리 뇌는 "오! 생각보다 좋은데!"하며 도파민을 분비한다. 그리고 이 행동을 반복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기대보다 나쁠 때 (-오류): 커피가 상상보다 훨씬 맛이 없을 때, 뇌는 "이게 아니잖아"하며 실망의 신호를 보낸다.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실망과 좌절은 바로 이 ‘기대 이하의 결과’에서 비롯된다.


기대와 같을 때 (오류 없음): 늘 마시던 평범한 맛의 커피가 나올 때, 뇌는 별다른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결국 이 시스템은 ‘예상치 못한 보상’에 가장 강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충동과 중독적 행동의 뿌리였다.



지루함의 정체: 자극을 갈망하는 뇌의 비명


이 시스템의 또 다른 얼굴은 ‘지루함’이라는 고통으로 나타난다. 명상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요한 상태를 견디지 못했다. 온몸을 배배 꼬게 만드는 극심한 지루함이 나를 덮쳤다.


이것 또한 도파민 시스템이 보내는 ‘자극 결핍 신호’였다. 자극에 익숙해진 뇌가, 고요함을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해석하고, 게임이든 음악이든 뭐라도 해서 이 상태를 벗어나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 도파민 시스템이 설계한 거대한 운동장 안에서 평생을 달려온 셈이었다. 한쪽에서는 ‘더 큰 쾌락’이라는 당근을 향해, 다른 한쪽에서는 ‘지루함’이라는 채찍을 피해 쉴 새 없이 달려야 했다. 나의 많은 충동적 행동은, 이 보상 회로에 내 의식이 ‘납치’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 강력한 도파민 엔진을 계속해서 작동시키는, 더 깊은 곳의 경보 시스템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도파민 엔진은 왜 이토록 지치지도 않고 작동하는 걸까? 무엇이 우리를 끊임없이 쾌락을 찾아 헤매고, 지루함을 피해 도망치게 만드는가? 그 답은 우리 뇌의 더 깊고 원초적인 영역에 있었다. 바로 ‘편도체(amygdala)’라는 이름의 오래된 파수꾼이다.



내 안의 파수꾼, 편도체


편도체는 성벽 위를 지키는 늙은 파수꾼과 같다. 그의 유일한 임무는 외부의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생존’을 위해 즉각적인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 수십만 년 동안 인류의 조상들은 이 파수꾼 덕분에 포식자를 피하고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의 반응은 빠르고, 거칠며, 본능적이다. 그는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직 ‘위협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뿐이다.


문제는, 야생에서 생존을 위해 설계된 이 파수꾼이 2025년의 현대 사회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고장 난 경보기와 ‘거짓 경보’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늙은 파수꾼은 상사의 질책, 타인과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사회적, 심리적 스트레스마저도 과거의 포식자처럼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우리의 뇌는 실제 위험이 없는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비상 경보를 울려대는 ‘고장 난 소화전’ 같은 상태가 된다.


나는 이것을 ‘거짓 경보(False Alarm)’라고 이름 붙였다.


내가 겪었던 만성적인 불안과 과민 반응의 진짜 정체는, 바로 이 편도체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거짓 경보였다.



파수꾼의 가장 큰 두려움


탐구를 계속하며 나는 가장 역설적인 진실과 마주했다. 이 파수꾼, 편도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폭력도, 빈곤도, 열등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정적과 고요’ 그 자체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파수꾼의 유일한 임무가 외부의 ‘소리’와 ‘움직임’ 속에서 위험 신호를 찾는 것인데 , 아무 소리도, 아무 움직임도 없는 상태는 그에게 가장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신호다. 그는 고요를 ‘더 큰 위험이 숨어있다는 증거’ 혹은 ‘죽음의 그림자’로 해석한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침묵을 불편해하고, 모든 시간을 소음과 자극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다.


이제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내 안의 시스템은 이렇게 작동하고 있었다.


거짓 경보: 편도체(파수꾼)가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고요’를 깨고 생존의 위협이라며 요란한 거짓 경보를 울린다 (불안, 공포).


엔진 작동: 도파민 시스템(엔진)은 이 고통스러운 경보와 끔찍한 고요에서 벗어나기 위해, 즉각적인 쾌락이나 자극을 찾아 폭주하기 시작한다 (충동, 중독적 행동).


내면의 전쟁: 이 과정이 반복되며,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스템에 휘둘리는 자신을 보며 자책하고 싸우기를 반복한다 (감정 소모, 자존감 하락).


이것이 내가 겪어온 문제의 해부도였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는 해결책을 찾아가볼 차례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내가 쓰는 단어들의 의미를 같이 탐색해보고, 어떻게 그들을 다루고,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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