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명상을 시작한다.

솔직히 명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인 적 없었다.

by 김종환

그렇게 나이들지도, 또 젊지도 않은 나이.

나름대로 삶에서 큰 실패를 겪고 깊은 상실감에 빠졌던 시기가 여럿 있었다.


수많은 도전들은 실패했었고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왔으며

이렇다할 성취도 해본 적 없었다.


끝없는 자책과 후회가 반복되었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의 부족함’에서 찾으려 했다.

나는 줄곧 이 고통의 본질을 파악하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탐구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과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되찾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상황.

더이상 늦어선 안된다는 판단.


나는 이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모든 방법론에 대한 탐구와 한계


나는 나태하고, 충동적이며, 감정적이고 파괴적이며 불안해하며 집착하고 조급하다.

사춘기를 지난 지 꽤 되어가며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결론이 천천히 지어져왔다.


자꾸 사람을 잃어버렸다. 자꾸 기회를 놓쳤다. 자꾸 귀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잃어버렸다.

자꾸 성급하게 선택하고 자꾸 후회했다.


나는 이런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의지로 버티거나, 문제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는 식이었다.

정신과도 가봤다. 병동에 입원도 했었고 심리상담도 오래 받았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다소 일시적이거나 그 때 그 때의 증상을 가라앉히는 피상적인 해결책에 그쳤다.

아무리 살펴봐도 문제의 근원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에겐 추상적인 위로가 아닌, 내가 가진 문제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이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무언가를 하려면 A부터 Z까지 전부 이해해야만 움직이는 사람이다.

헷갈리거나 명쾌하게 깨닫지 못한 상태에선 행동이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 상황에 대한 답을 구하면 늘 비유적인 표현만 돌아올 뿐, 와닿는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놈의 의지, 열정, 결심, 다짐.

수 백번을 되살리고 되짚고 글로 쓰고 어디 잘 보이게 붙여놓고 전시하고 되뇌어도 이녀석들은 나를 바꾸지 못했다.

의지가 약해서?

천성이 타고나서?

결심을 덜 해서?

다짐을 안해서?


난 매번 변화에 진심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러나 저것들은 나를 제대로 변화시킨 적이 없었다.



명상, 과학의 영역에서 다시 만나다


처음에는(한 10년전에는) 명상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저 눈을 감고 잠깐 차분히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어떻게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의심했다.


나는 명상을 티벳이나 불교같은데서 하는 열반과 달관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행. 즉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아 억지로 차분해지는, 순간의 흥분이나 격정을 내려앉히는 진정제 정도라고 여겼다.


그래서 명상 좋다는 얘기 듣고 몇번 하는 척만 해봤지, 명상이 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후 마음챙김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근데 사실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 뭘 챙기긴 챙겨. 어감이 입에 안붙는다. 내가 성격이 그러해서 그런가.


그렇게 10년을 허비하고, 나는 참 많이 망가졌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아직 여기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최근에 꽤나 큰 좌절을 겪었다.

더이상은 이런 좌절과 실패를 겪어가며 삶을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가 바뀌어야 하지?

나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것이 의지, 의욕, 열정, 결심, 다짐따위가 아니라면?


내가 나라는 기계장치의 '작동방식, 즉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전환점은 명상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찾아왔다. 나의 감정적 고통, 충동적 반응이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니라, 뇌의 특정 회로, 예를 들어 편도체(amygdala) 같은 부분이 특정 방식으로 작동하는 '생물학적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던 끝없는 잡념의 정체가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 불리는 뇌의 기본 활동 상태와 관련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명상은 신비주의나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뇌의 신경망을 의식적인 훈련을 통해 재배선(rewire)하는, 지극히 과학적인 '신경 훈련'이었다. 헬스장 가서 근육 만들고, 트랙 올라서서 러닝 하는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 내 안의 문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해결책 또한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것이어야 했다.



명상이어야만 했던 이유


나의 반복적인 문제 패턴은 '뇌의 오래된 자동 반응 회로' 때문이었다.(나는 이 녀석을 편도체-생존-방어 시스템이라고 이름붙였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유전자에 깊게 각인하고 오랜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시켜온 뇌의 원초적 작동방식. 사람들과 어울리면 무리 지어 다니던 본능이 만족하고, 음식을 먹으면 굶주림을 피하려는 본능이 만족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현대 사회에서는 그 쓸모를 대부분 잃고 왜곡되고 뒤틀렸다. 그것은 마치 사소한 연기에도 시끄럽게 울려대는 '고장 난 소화전 경보'와 같았다.


나에게는 그것이 나태함, 충동, 감정조절장애, 열등감 등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이 생존-방어 시스템은 내가 의지로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 앞에서 약속이나 다짐 같은 외부적 수단은 힘을 잃기 쉬웠다.


충동은 아주 영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쓴 각서는 한 순간에 글자 몇 자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가 되었고,

스스로와의 다짐은 순간의 충동이 쌓여 흐려지기 마련이었다.


소결론이 나왔다.

이 충동과 감정에 맞서 싸우려 들면 무조건 진다.


뇌리깊게 박혀있는 본능을 어느순간 부여된 동기와 불타오르는 의지로 꺾어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일한 해결책은, 감정과 충동이 발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뇌의 반응 자체를 훈련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뇌의 가소성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엄청난 축복이다. 뇌의 회로는 바뀔 수 있다. 나는 저항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내 안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훈련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마치며: 새로운 출발선에서


이 글은 길고 긴 탐구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명상을 실천하며 겪는 변화와 통찰의 과정을 꾸준히 기록해 나갈 것이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우게 된 것들을 담담하게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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