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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이즈프리 Oct 27. 2024

안정적인 삶이 좋아서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쓰는 일기와 같은 느낌으로 작성된 글이기에 반말 형태로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보통 프리랜서의 단점을 꼽으라고 하면 대다수가 불안정한 수입을 일 순위로 꼽는다.


나 역시 현재 프리랜서로의 삶을 살고 있는 입장에서, 몇 십만 원의 수입을 벌었을 때도 있고 직장인 월급의 2-3배를 벌 때도 있었다.


근데 왜 안정적인 삶을 위해 프리랜서를 선택했냐고?

K-직장인의 삶을 8년 정도 살아보니,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그 어떤 삶보다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 가장 큰 계기는 역시나 코로나였다. 

사람들이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취업난에 허덕이는 재앙과 같은 위기는 IMF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취업난은 항상 있었고, 취업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자연재해?와 같은 위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올 줄은..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항공사, 여행, 면세점, 관광업 분야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면세 업무를 3-4년 동안 했던 지인이 권고사직 제안을 받고 퇴직금과 위로금을 받으며 퇴사했다. 대기업이었기에 많은 위로금을 받기는 했다만, 다시는 관광,여행업계로 가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다. 당시에는 직종을 바꾸기 위해 부트캠프에서 교육을 수료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제주도로 여행을 갔더니 젊은 여성분들이 단체로 숙소에 놀러 온 것을 봤다. 어쩌다 보니 얘기를 몇 마디 나누게 됐는데, 알고 보니 현재 직업은 승무원이고 당분간 비행 일정이 없을 거라며 회사 측으로부터 반강제 휴가를 권고당한 상황이라고 했다. 제주 여행이 끝나고는 어떻게 되는 거냐 물었더니,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안타까움을 느꼈던 사례는, 관광 업계에서 임원진으로 근무했었던 분의 퇴사였다.


당시 나는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 들어가 작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대표님의 아는 지인분이 당분간 사무실을 같이 쓸 것이라며 나이가 지긋한 한 분을 나에게 소개해주셨다.

그분은 매일같이 노트북을 들고 나왔고, 비슷한 시간대에 출퇴근을 반복하는 9-6의 삶을 살았다. 나중에 넌지시 물어보니 이번 코로나로 인해 권고사직을 받았는데, 하루종일 집에 있기가 눈치가 보여, 그냥 밖을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분은 약 1년여 동안 우리 사무실에 출근했고, 1년이 지나서야 강원도에 있는 공기업으로 입사를 했다.

당시의 안타까움. 그리고 속으로 응원을 하면서도 함부로 무슨 말을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었던 난감함이 아직까지도 생각이 난다.


코로나 때를 계기로 나의 생각은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직장인의 삶이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2) 경영 악화도 있더라

코로나는 정말 자연재해와 같은 일이라, 살아생전 한 번에 올까 말까 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회사의 경영 악화라는 또 다른 재앙이 올 것이라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입사 당시 150명이었던 직원 수가 50명으로 1/3토막이 났고,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이 퇴사와 부서 이동, 업무 이동을 겪었다.


믿고 따르던 팀장님이 타의 반 자의 반에 의해 퇴사를 했고, 회사는 계속해서 신사업을 찾아다니며 수시로 담당자의 업무를 변경했다. (재정 상태가 악화되었으니 이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타 팀, 우리 팀, 동기, 상사까지.. 계속해서 사라져 가는 직원들을 보며 '언젠가 내 차례도 오겠구나'라는 불안감과 불안정함이 매일같이 찾아왔다.


신사업을 시작했다가 완전히 접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계속되었고, 내가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에 애정이 쉽게 생겨나지 않았다.


약 1년 동안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3) 빌런도 많고.. 퇴사도 많더라..

사실 코로나, 재정악화가 아니더라도 직장에서의 나의 포지션은 항상 불안정했다.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을 했었지만, 나는 매번 회사를 다니며 신사업을 담당할 것을 권유받았다.

주로 해당 브랜드를 담당했던 사람이 퇴사를 했을 때였는데,

그때마다 '네가 일도 잘하고 적응도 빨리 하니까~'라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변명?을 들으며

매번 신사업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업무는 과중되었고, 나의 업무 스케줄 역시 언제 바뀌게 될지를 예측할 수가 없게 되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바로 빌런의 등장이었는데, 어딜 가나 있을 수밖에 없는 빌런 역할을 하는 직원들 때문에

항상 직장에서의 포지션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소위 낙하산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갑자기 우리 부서의 팀장을 맡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느 날은 우리 팀과 매우 밀접하게 협업을 해야 하는 타 팀의 담당자가 잠수를 하며 퇴사를 하는 일들도 있었다.




나는 나의 브랜드를 담당해 애정을 갖고, 이 브랜드를 더 잘 되게 하기 위해 올인을 할 자신이 있는데..

나 스스로도 계속 성장을 함과 동시에, 좋은 성과를 달성하고 싶은 욕심 또한 있는데..


그놈의 코로나가, 경영 악화가, 예상치 못한 빌런들이..와 같은 수십 가지의 변수가

매일 같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직장인이 말고 직업인이 돼라.



이러한 일들을 겪고 나니 '직장인이 되지 말고 직업인이 되어라'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오히려 내가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막아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나만의 경쟁력을 갖춘 안정적인 직업인이 되기 위해서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래서 지금 프리랜서의 삶이 안정적이냐고?

다음 화에서는 '더 안정적으로 프리랜서를 하기 위해서 설계한 나만의 업무 방식'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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