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즈 두 이과수
새벽같이 일어나 씻고 미리 싸 둔 배낭과 서브 가방을 앞뒤로 메고 우버를 탔다. 드디어 이과수에 간다.
남미에 오면 꼭 보고 싶은 것 5가지, 나의 남미 버킷리스트
1. 이과수(포즈 두 이과수, 푸에르토 이과수)
2. 토레스 델 파이네
3. 피츠로이
4. 우유니
5. 마추픽추
소소하게 다섯 가지였다. 드디어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보러 간다. 설렜다.
남미는 남미다. 폭포 보러 가는데 비행기를 타야 했다. 물론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20~24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 가격으로 차라리 3시간도 안 걸리고, 조금 돈을 보태서 편하게 비행기를 타는 방법이 더 낫다.
오전 7시 15분 비행이기도 하고 남미의 시간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일찍 갔다. 그런데 너무 일찍 갔나 보다. 체킨을 하고 수화물로 가방을 보내니 배가 너무 고팠다. 두리번두리번거리니 새벽부터 문을 연 써브웨이가 보여 바로 사 먹었다. 헤알이 얼마 없어서 카드로 계산했는데 카드 복제당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과 그래도 나는 배가 너무 고프고 지금 안 먹으면 저녁때까지 아무것도 못 먹을 것 같은데 라는 걱정을 동시에 했지만 배고픔이 이겼다. 일단 먹고 보자.
맛있게 먹고 비행기에 올라타 바로 기절했다. 눈을 뜨니 도착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세상 모든 햇빛을 나 혼자 받는 기분이었다. 기분은 좋았다.
공항이 작아서 활주로에서 내렸다. 사실 나는 활주로에 내려서 공항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 날만큼은 뭘 해도 기분이 좋았다.
공항에서 나와 이과수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신기한 게 버스 안에 개찰구(?) 같은 게 있는데 여기 통과하는 게 어찌나 힘이 들던지. 앞에는 오랑우탄만 한 서브 배낭, 뒤에는 코알라만 한 메인 배낭. 쉽게 들어가질 리가 없다. 안 그래도 동양인이 나뿐인데 저렇게 눈에 띄는 가방을 메고 개찰구에 껴서 낑낑대니 모든 눈들이 다 나를 향할 수밖에. 그래도 친절한 브라질 사람들은 낑낑거리는 나를 보고서는 도와주고, 가방도 의자에 내려놓으라며 자리를 선뜻 내준다. 아침 시간이라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 날 아브리가다를 엄청 열심히 말하고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과수 앞에 도착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사람들인데 나는 열심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내렸다.
그런데 이 곳이 관광지인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한산했다. 아침 일찍 와서 그런 건지 오늘은 평일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드디어 이과수에 도착을 했다. 텐션이 계속 올랐다.
기다릴 필요도 없이 티켓부스에서 입장권을 사고 사물함에 가방이란 가방은 모두 집어던지고 나왔다. 입구 쪽에 자원봉사자처럼 보이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다.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안하게 물어볼 수 있다. 심지어 영어도 다들 하실 줄 알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눈이 마주치는 분들마다 오셔서 필요한 거 있냐고 물으시던 분들. 정말 친절하셨다.
드디어 입장했다. 폭포가 넓어서 그런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다. 남미는 이동의 대륙이다. 2층 버스를 타야 해서 괜히 분위기 좀 타보겠다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햇살이 너무 강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버스에서 내리니 저 멀리 폭포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점점 더 설렜다. 거 참,,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여기저기 놀러 가도 설레거나 두근거린 적은 없었는데 이 날은 무슨 유명 연예인을 보는 것 마냥 괜히 설레었다.
버스에 내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서 보니 울창한 숲 사이로 폭포들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뭔가 영화 세트장에 온 기분이랄까. 날씨와 자연이 주는 선물 같았다. 한 발짝 걷고 사진 찍고, 한 발짝 걷고 사진 찍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산책로도 정말 잘 되어 있었다. 역시 브라질이다. 데크를 걷다 보면 모여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사진 스폿이라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코아티에게 반한 사람들. 코아티는 너구리처럼 생긴 동물인데 이과수의 랜드마크다. 이과수의 실질적 터줏대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영악한 코아티들은 사람들이 먹는 간식들이 맛있는 음식인 줄 알아서 뺏어 갈 때가 많다. 종종 사람들이 귀엽다며 일부러 음식을 주기도 하는데 얘네들 발톱에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만지지 마시오/먹이를 주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걸려있지만 꼭 한 번씩 쓰다듬고 먹이를 주는 사람은 항상 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이과수 풍경을 넋 놓고 구경하느라 바빴다.
괜히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라는 말이 생긴 게 아니다. 360도 파노라마로 보이는 풍경은 파란 하늘과 울창한 나무 숲들과 폭포, 이 세 가지의 조화는 백점 만점에 백점이었다. 정신없이 구경하면서 걸어오니 드디어 메인 폭포가 코앞에 있었다.
멀찍이서 사람들을 보니 미어캣 같았다. 다들 한 곳을 목을 내밀고 응시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곧 나의 모습도 저들과 같아지겠지.
가까이 갈수록 폭포 소리는 커졌고, 곧 미스트를 내 얼굴에 뿌리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물방울이 흩뿌려졌다. 몇몇 사람들은 우비까지 입고 왔는데 나는 그냥 폭포수를 맞고 싶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무지개도 곳곳에 보였고, 쌍무지개까지 볼 수 있었다. 신난 마음에 셀카를 몇십 장을 찍었는데 좁은 데크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폭포보다 사람들이 배경이 되어 버렸다.
한참을 폭포 미스트를 맞고 사람들 틈에서 벗어났다.
한참을 쳐다봐도 질리지 않았던 이과수. 뭔가 SF영화에나 나올 법 한 풍경은 질리기는커녕 계속 바라만 보고 싶었다. 여기저기 작고 큰 폭포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 듣는 재미가 가득했던 포즈 두 이과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던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 날 일정은 이과수 폭포 일정뿐이라 여유를 만끽했다.
슬슬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아침에 공항에서 먹은 서브웨이가 다였던 하루. 들어왔던 입구 쪽으로 다시 나와 안 떨어지는 발걸음으로 내 짐덩이들이 있는 사물함으로 향했다. 겨우 겨우 나왔던 포즈 두 이과수. 정말 언젠간 꼭 다시 한번 오고 싶은 포즈 두 이과수.
평화롭게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에서 내렸는데 도대체 나는 왜 길치가 되어 버린 것인가. 숙소를 코앞에 두고 한참을 헤매다 들어갔다. 드디어 시작이다. 호텔이 아닌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괜히 이것도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설레면서도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 짐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이상한 사람들이랑 한 방을 쓰면 어떡하지, 코 고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내가 처음이었다. 괜히 뭔가가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배가 너무 고프고 배에서 천둥, 지진 소리가 났지만 먼저 짐을 정비했다. 왠지 내일 아침에 움직이면 혹시라도 늦잠을 잘 수도 있는 사람들을 깨울까 봐, 저녁에 짐을 정비하면 일찍 자는 사람들을 방해할까 봐 라는 소심한 마음에 미리 내일 입을 옷을 꺼냈고, 세탁해야 할 옷을 담을 런더리 백도 따로 꺼내 두었다. 짐 싸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이동하기 전엔 늘 온 짐을 다 꺼냈다가 다시 차곡차곡 넣어뒀던 처음. 아직은 많은 것이 낯설다.
이제는 진짜 밥 좀 먹어야겠다. 블로그로 아무리 찾아봐도 별 소득이 없어 구글맵으로 식당을 찾아봤더니 가장 만만한 햄버거 가게가 나왔다. 거리도 가까워서 바로 향했던 햄버거 집.
정말 꿀맛이었다. 햄버거가 이렇게 맛있을 일이람. 배도 두둑이 채웠겠다, 조금 산책을 해볼까 하고 가게를 나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간이다. 해도 적당히 비추고, 적당히 거리도 한산한 시간. 괜히 걷고 있으면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이유 없이 기분 좋아지는 시간.
한쪽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부랑자가 나를 쳐다보길래 식겁을 하고 바로 숙소로 돌아오긴 했지만 어찌 됐든 오늘은 완벽한 나의 날이었다.
첫 버킷리스트를 이룬 날이기도 했고, 배낭 두 개를 앞뒤로 메고 길을 헤매기도 했고, 호스텔 도미토리에 첫 입성하기도 한 날이기도 했다. 이제야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내일은 드디어 두 번째 나라, 아르헨티나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또 설렌다. 매일매일이 설레니 너무 행복하다. 이런 기분으로 다들 여행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