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기있는쫄보 Jul 14. 2021

오후 6시 냄새

부에노스 아이레스 매력에 어떻게 안 빠질 수가 있을까

아침 8시면 매니저님이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서 아침식사들 하세요~라고 해주신다. 덕분에 늦게 일어나는 일도 없었고, 맛있는 한식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매니저님의 음식 솜씨는 너무 좋다. 지구 반대편에서 어떻게 이런 한식을 요리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물론 내가 음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맛은 일품이다. 부에노에서는 늘 늦게 잤다. 수다가 끊이지 않아서인지 늘 늦게 자서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맛있는 아침 먹으려고 항상 오전 8시에 일어나서 눈곱만 떼고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룸메이트들과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오늘 오후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한 명은 2일 후인가 떠나고, 한 명은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그리고 아직 어떻게 어디로 움직일지 계획이 없던 만렙 여행자였다. 부에노에 있는 동안 날씨가 너무 좋았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플로리다 거리 근처에 스테이크 맛집이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플리마켓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히피들이 손수 팔찌, 귀걸이 같은 장신구들도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퀄리티도 꽤나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던 파란 하늘과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도 적지도 않았던 거리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하는 건가 싶다. 별건 없지만 이유 없이 좋은 도시.

우리가 갔던 스테이크 집은 꽤나 인기가 있는 곳이긴 했나 보다. 테이블 만석이라 15분 정도 기다렸고, 우리는 비좁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아르헨티나가면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게 소고기라고들 하는데 아직 고기의 ㄱ 자도 영접하지 못했던 아르헨티나 3일 차 여행자인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일단 고르고 보자!


드디어 받아본 스테이크. 스테이크 굵기는 감탄을 나오게 했고,,, 스테이크를 썰때마다 또 다른 감탄을 했고,, 씹을 땐 감동을 했다.

아르헨티나 소고기 최고!! 심지어 가격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저렴하다. 그래, 어떻게 소고기를 안 먹을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맛이었다.


식사만 하고 끝나면 한국인이 아니지.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까지 완벽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긴 아쉬워서 나는 세계여행자 B군과 함께 엘 아테네오 서점으로 향했다. 그렇다 할 계획 없이 왔지만 이 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유명했어서 알고 있었다. 원래는 오페라 극장이었는데 서점으로 탈바꿈하고, 무대는 카페로 개조했다고 한다.

들어가서 본 엘 아테네오 서점은 정말 화려했다.

이 동네 사람은 책살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오다니,,

로컬 사람들에겐 아름다운 서점이겠지만  같은 여행자들에겐 눈을 반짝이며 여기저기 둘러보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 관광지다.

알 수 없는 스페인어 책을 아무리 펼쳐봐도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친구들이랑 배부르게 먹고 집에 가기 전에 잠시 소화도 시킬 겸 가는 곳이 서점이었는데 오늘도 배부르게 먹고 서점 가서 시간을 보내니 괜히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민박에 있는 사람들과 새벽까지 와인과 함께하는 수다 타임을 가졌다. 물론 나는 쥬스와 음료로 대신했지만. 처음보는 사람들과 하는 대화는 낯설고, 새롭기도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하루 얘기하고 평생 안 볼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대화거리가 많다고,,? 놀라기도 했는데 그래도 즐거웠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인가. 처음 겪어보는 낯선 즐거움이었다.


지난 밤 늦게까지 함께 수다 떨었던 세계 여행자 B군과 부모님과 함께 여행 온 S군과 함께 계획 없이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오늘도 날씨가 무척이나 좋다.

S군은 부모님과 여행 와서 힘들 때도 있다며 속풀이를 했는데 귀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 혼자 다니는 것도 힘든데 부모님과 함께 하면 이것저것 챙길게 많다 보니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부러운 마음이 더 컸다.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부모님도 많이 생각났다. 여하튼 오늘은 부모님과 함께 안다녀서 왠지 신나보이는 S군과 B군과 함께 부에노에 온 지 3일 만에 랜드마크인 오벨리스코를 보러 갔다.

역시나 랜드마크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 사진에 욕심이 없던 우리는 그냥 오벨리스코만 잘 나오게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나중에 한국와서 다시 사진을 보는데 이왕 찍을 거 제대로 찍을걸 하고 조금 후회하기는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맥도널드가서 콘을 하나 사들고 그저 걸었다.

우리는 걷다 보니 플로리다 거리 쪽으로 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몇몇 가게문들이 닫혀있었다. 따로 그렇다 할 계획이 없던 우리는 조금 방황하다가 영화를 보자! 해서 영화관을 들렀는데 영화 시간들이 모두 애매했다.

그래서 일단 오락실에서 놀고 정하자! 해서 우리는 오락실로 향했다. 한국에서도 하지 않았던 오락실 게임들을 정말 열심히 했다.

스크린 볼링도 해보고, 농구공도 던져보고, 지구 반대 편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원래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노는 것 마냥 즐거웠다.

드라마인지 무엇인지 모를 촬영 현장 구경하기

한참을 놀고 우리는 여인의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매니저님이 이곳이 부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경찰도 많이 돌아다니고, 불안함 없이 정말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부촌이긴 부촌이었다. 다들 여유롭게 햇살을 만끽하며 조깅을 하고 있고, 강 옆으로 쭉 나열되어 있는 펍,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음료를 즐기고 있었다. 몸에 여유를 바르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우린 펍으로 들어가 맥주와 커피를 시켰다. 좋았다.

리우에 있을 때는 무언가를 꼭 해야해!라는 생각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었다면, 부에노에서는 시간이 흐르는 대로 편안하게 지냈던 것 같다.

우리는 다시 다른 영화관들을 찾아 볼만한 영화가 없는지 확인했다. 운이 좋게도 그 유명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에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었다. 바로 티켓을 구매하고 들어갔다.

영화관에 들어가면서도 신기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오락실에 놀고, 햇살을 만끽하면서 펍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음료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내가 생각했던 여행이랑 달랐지만 이렇게 보내는 하루가 너무 행복하고 소중했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가려고 보니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제 중천에 떠있던 해가 조금씩 지려고 했다. 그냥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시간이 너무 좋았다. 노을이 지는 바로 직전의 시간. 그냥 그 시간대에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편해지고, 있던 걱정도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 나에겐 그런 시간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늘 오후 6시 냄새나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때가 제일 좋다.

여행을 가기 전 호텔에서 일할 때에도 통유리로 되어 있는 건물이라 야간근무를 하면 해 뜨는 게 보이고, 오후 근무를 하면 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바쁘다가도 이 시간때쯤이 되면 그래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시간이었다.

너무 행복했다. 이 행복함을 어떻게 표한하지, 어떻게 분출하지! 했는데 그냥 조용히 만끽했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나는 아직도 이때 찍은 사진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평온해질 수가 없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날. 그래서 더욱이 부에노는 나에겐 특별한 도시가 됐고, 늘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부에노는 내 최애 도시라고 하고 다녔다. 남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100% 재방문할 도시 중 하나가 부에노스 아이레스고 무조건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 1달 살아보고 싶은 도시다.

행복했던 시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민 버거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온종일 함께 했던 사람들과 다시 새벽 수다를 떨고 마무리되었다.

참, 신기하다. 연고도 없던 사람들과 지구 반대편에 와서 한 식탁에서 아침밥을 함께 먹고, 밤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것마저 부족해서 새벽잠까지 반납하며 수다를 떨고. 이게 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거겠지.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로 오는 버스에서 눈물 콧물 쏟았던 때가 생각난다. 브라질에서는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물갈이 때문에 몸도 안 좋았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에 와서 처음으로 동행이라는 게 생겼고, 매일을 함께 했다. 데이 오프 때 쉬는 것처럼 날이 좋아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고,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여느 때처럼 스타벅스를 갔고, 영화가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고, 그냥 펍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고, 웃음이 나서 웃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6시 냄새도 맡았고 집에 들어가면서 예쁜 노을을 봤다. 그냥 일상을 보냈다. 근데 이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이 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건 동행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이들이 없었다면 이 날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부에노가 내 인생 여행지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 5개월 동안 거짓말 안 하고 늘 느꼈던 것은 나는 인복이 많다는 것이다. 아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굳이 굳이 여행했던 나날들을 기억하고, 이렇게 쉬는 날 시간을 내면서 브런치 글을 남겼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땅고의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