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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기있는쫄보 Mar 15. 2021

특급 쫄보

늘 아쉬운 브라질

리우에 도착했다. 내 배낭은 잘 나오려나, 치안이 안 좋다던데 누가 뺏어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수화물이 나오는 구멍만 노려봤다. 가방은 잘 나왔고,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우버를 불렀다. 11시가 다 돼가는 이 시간에 버스를 탈 용기도 없었고, 호객을 하는 택시기사를 믿을 수도 없었다.


우버를 타고, 구글맵을 켰다. 우버 맵과 구글 맵을 번갈아가면서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밖을 눈을 땡그랗게 뜨고 보면서 호텔로 향했다. 누가 보면 불신에 가득 찬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남미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첫 시작이 브라질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일 일수도. 다행히도 우버 기사는 사기꾼도 아니었고, 짐을 호텔 로비까지 내려주는 아주 친절한 기사였다. 스페인어만 공부했지 포어는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곤 고작 Thank you 였다.


일단 첫 숙소는 호스텔도 에어비앤비도 아닌 호텔이었다. 일단 안전빵(?)으로 조금이라도 안심하면서 5일을 지낼 수 있도록 저렴하지만 그래도 마음 놓고 투숙할 수 있는 이비스 호텔로 예약했다. 배낭여행 초짜인 나에겐 당시 브라질은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너무 컸나 보다.


몸살 때문에 얼른 눕고 싶었다. 로비에서 체킨을 하고, 물을 사서 올라간 객실은 장애인 객실이었다. 사실 모든 호텔에는 장애인 객실이 있는데 정말 만실이 아니고서야 일반 손님들에게 배정을 하지 않는 객실이고, 배정을 한다면 체크인 전 무조건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배워왔던 나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준 이 객실을 그대로 이용해야 하나 고민했다.


다른 객실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침대 높이가 낮고, 화장실 구조가 다르다. 휠체어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문턱은 없앴으며, 화장실 안에 손잡이가 있을 뿐 별다를 게 없는 객실이지만 정말 만실이라서 나에게 준 걸까, 동양인이라서 준 걸까 라는 생각에 프론트에 내려가서 물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나는 정말 너무 힘들다. 배도 아프다. 심지어 더운 브라질에 왔음에도 으슬으슬 춥고 몸도 무겁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자자. 물어보더라도 내일 묻자.


약을 먹고 자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갈이하는 것도 잊고 그냥 마셨다. 그리고 이 날 새벽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힘들었다. 식은땀을 쫙 뺐더니 조금 더운 것 같아서 에어컨을 틀면 너무 추웠다. 아니 도대체 이게 뭐람!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난 나의 일정은 여지없이 화장실에서 시작되었다. 그래도 공식적으로 여행자로서의 첫 번째 날인데 밖은 나가야지! 싶어 슬슬 준비를 했다. 아! 브라질에 가면 꼭 사야 한다는 하바이아나스 쪼리! 오늘의 목표는 쪼리다. 쪼리를 사기 위해 환전소를 찾으러 다녔다. 쫄보인 나는 길거리에서 휴대폰을 쳐다보지도 못해 구글맵이 필요할 때마다 어디 숨어서 보곤 했다(이게 더 눈에 띄겠다, 으휴). 그리고 핸드폰은 힙색도, 주머니도 아닌 바지 안 허리춤에 껴서 티셔츠로 가렸다. 웃기는 뽕짝이다. 아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환전소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실 있긴 했는데 여기가 환전소라고,,? 사기당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나는 코파카바나 해변 앞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로 향했다. 지금 이렇게 회상을 해보니 왜 이렇게 이들을 믿지 못했나, 이들도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나도 참 웃기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쪼리를 사고 나서야 리우를 조금씩 둘러봤다. 별로였다. 날씨는 좋았지만 경계심을 풀 수 없었다. 모든 건물들의 일층 문과 창문은 쇠창살로 닫혀 있었고, 사람들은 그 쇠창살 사이로 얘기를 나누었다. 길에는 쓰레기가 많았고, 쓰레기를 뒤적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만 보는 듯한 시선도 신경 쓰였다. 나름 캐나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브라질 친구들도 사귀었었다. 그리고 일하면서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을 더 많이 상대했어서 외국인에 대한 불편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리우에서는 뭔가 달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람의 편견이란 참 무섭다. 나는 종종 여행하면서 만난 동행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만약 브라질이 첫 번째 여행지가 아닌 마지막 여행지였더라면 그 누구보다 더 재밌게 놀았을 거라고. 만약 콜롬비아가 마지막 여행지가 아닌 첫 번째 여행지라면 살사를 배우지도, 출국날짜를 연장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브라질에 있을 땐 쇠창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의심스러웠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 아닌 걱정 때문에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무섭게 느껴졌었다. 사실 여행을 다니다가 가끔 브라질에서 강도를 당하고, 갱들한테 맞았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아주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마주친 사람들도 나처럼 그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이번 글 속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섭다는 얘기만 하는 특급 쫄보에 편견쟁이다. 이렇게 나의 첫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보같이 허비해버렸다.


배도 아팠다(이놈의 배는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난리다). 결국 나는 커피 한잔, 빵 하나 사 먹지도 못한 채 겨우 쪼리 하나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족들한테 전화를 했다. 물만 마셔도, 아니 아무것도 먹지도 못했는데 배가 아파 죽겠다고 징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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