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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기있는쫄보 Mar 10. 2021

Fire Alarm

진짜면 문 두들겼겠지 뭐

집 나오면 개고생이다 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Janeiro)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어디든 거쳐서 가야 한다. 선택지는 많았고, 그중 나는 미국 댈러스에서 레이오버를 해야 했다. 공항에서 시간을 때울까 하다가 그냥 공항 근처의 호텔로 숙소를 잡았다. 퇴사를 했으니 호텔 할인도 못 받고,, 어차피 1박 하는 거 저렴한 곳으로 가자 해서 간 Clarion Inn&Suites. Inn이라는 단어를 보니 호텔보단 음,, 민박? 여인숙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민박 혹은 여인숙 치고는 수퍼킹베드와 널찍한 욕실이 있는 곳이었고, 수납공간도 매우 넓었다.

Clarion Inn&Suites in Dallas, USA

직업병이라 그런지 나는 호텔을 가면 이것저것 탐색을 해보는 게 당연한 습관이 되어 버렸다. 시트는 깔끔하고, 머리카락은 없는지. 콘솔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았는지. 슬리퍼, 가운, 물 등등 어메니티는 제대로 셋업이 됐는지. 욕실은 깨끗하고 배수는 잘 되는지. 하지만 머리카락 한 올이 발견되고, 슬리퍼가 없고, 물이 없어도 나는 프론트로 전화를 한다던가, 내려가서 화를 내진 않는다. 다들 바빴고, 깜빡 했겠지.. 다 정리했는데 마지막 정리하면서 본인 머리에서 머리카락 하나가 빠졌겠지..!!라고 생각하고 머리카락 한 올 정도는 손으로 떼어내는 편이고, 어메니티는 전화로 하나만 줄 수 없겠니 라고 요청하는 편이다. 정말 더러우면 조용히 객실을 바꿔달라고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다.


여튼 개고생이라는 말을 써놓고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찌뿌둥해서 아무것도 없는 숙소 근처를 산책을 하고 내 얼굴보다 큰 피자를 사 먹었다.

숙소 앞

내 위장은 매우 솔직한 편이다. 피자랑 음료 하나 먹었다고 바로 물갈이를 한다고,,? 이런 나약한 위장 상태로 4개월을 여행하겠다고,,? 화장실을 어찌나 들락날락했는지 나중엔 정말 찐으로 피곤해서 뻗어버렸다. 입술과 목이 탔지만 물도 마시지 못하고 그냥 억지로 자기로 했다.

집나와서 첫 외식, 그리고 물갈이


삐오삐오삐오삐오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바로 무시무시한 fire alarm, 화재 알람이다.


내가 야간에 당직으로 근무할 때마다 늘 기도했던 것은 '제발 화재 알람 울리지 마라'였다. 화재 대피 훈련을 몇 번이고 받았지만 만약 내가 당직일 때, 대피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다행히 내가 당직일 때는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sub-charge로 일하거나, 아니면 내 shift 가 아닐 때, 아주 간혹 오작동으로 울릴 때가 있었다. 얼마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지 수증기 때문에 울릴 때도 있었고, 정말로 엔지니어분이 기계를 잘못 만져서 울릴 때가 있었다. 아니 어찌됐건 간에 정말로 화재가 일어난다면 모든 직원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있는데 누구는 투숙객 명단과 금일 체크인하는 명단, 각 부서 스케줄을 뽑는 일/ 누구는 각 부서장들과 GM(총지배인)에게 연락하는 일/ 누구는 객실 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리고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분필로 문에 표시를 하는 일/ 누구는 119에 신고하는 일/ 누구는 대피장소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왔는지 체크하는 일 등등 정말 자세하게 나뉘어 있다.


그런데 저렇게 크게 Fire alarm이 십여 초 울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오작동인가 보다.. 하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디서 나온 편안함(깡따구)이지,,? 사실 '여긴 미국인데 불났으면 나오라고 난리 났겠지,,'라는 생각도 안 했던 건 아니다. 그리고 움직이면 배가 또 아플 것 같았다.


다음 날 씻고 풀지도 않았던 배낭과 서브 배낭을 다시 들쳐 메고 체크아웃을 하러 나갔는데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제 댈러스에서 뉴욕으로 간다. 인천에서 약 13시간을 타고 왔는데 또 4시간 30분을 타고 가야 한다. 그런데 몸이 이상하다. 비행기를 탔더니 으슬으슬 춥고, 심지어 식은땀까지 흐른다. 몸살이다. 아니 이게 무슨 개고생이람,,? 뉴욕공항에서 내려 약국을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 지를 않는다.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약국이 없단다. 말이 되냐고요ㅜㅜ 약이 들어있는 메인 배낭은 수화물로 넘겨진지 오래고 결국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의자에 눕다싶히 앉아 멍하니 이착륙하는 비행기들만 7시간을 보다가 드디어 리우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다시 10시간가량을 다시 이동했다. 비행기 이동시간만 약 27시간이다. 한국을 떠난지 2일만에 드디어 남미를 밟았다! 브라질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식은땀 흘리면서 멍하니 보던 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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