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기있는쫄보 Mar 09. 2021

퇴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떠나겠습니다.

=현실도피하겠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3년을 꽉 채우지 못한 시점, 1달 하고 2주를 남겨두고 나는 퇴사를 했다.


지금 경력에 그만두고 경력 단절이 되어버리면 아쉽지 않을까?, 조금만 더 하고 승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혹은 2주간의 휴가를 주겠다, 그것도 짧다면 HR에 한 달간의 휴가를 줄 수 없는지 문의를 해보겠다 등등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조언을 해주시고 격려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던 건지,, 돌이켜보면 저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나는 퇴사하기를 결정을 했고, 그 어떤 말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힘이 들었다. 별의별 사람들 중 이상하게 이유 없이 화내는 사람이 너무 꼴 보기 싫었고,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뭐라도 걸려라, 나는 얻어가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온 사람들의 심리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으며 본인은 VIP이니 극진히 모시라는 식의 말투와 행동도 눈꼴셨고, 내 잘못도 아닌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더 이상 못하겠던 나에겐 선택지라고는 퇴사뿐이었다. 호텔을 방문하는 모든 손님들이 저렇지는 않다. 힘들게 일한다며 격려해주는 손님들도 있고, 해준 것도 없는데 감사하다며 에너지 드링크를 사 와 힘내라고 힘을 주는 손님들도 있고, 친구처럼 친해진 손님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힘이 들었다.

새벽 늦게 퇴근하면 늘 편의점에 가서 라면 사기가 일상이 되어버렸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다.

힘이 들다 보니 그 누구랑도 얘기하고 싶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지인들에게 카톡이 오면 몇 날 며칠 동안 안 읽었던 적도 있었고, 쉬는 날에는 아무도 만나기 싫어서 존재하지도 않는 약속들이 생겼다. 결국 모든 알림을 꺼버렸고 나중에는 서운함을 표현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족들하고도 대화를 안 하는 내가 보였다.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됐다. 나만 힘들면 됐는데 내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졌다. 잠깐 동안이라도 모든 사람들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퇴사하기로 결정을 했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실도피성 퇴사, 여행이었다.

퇴사 전 한동안 나의 프로필 사진이었던 Inner Peace

'퇴사를 한다고? 퇴사라는 단어는커녕 HR 앞에도 못 갈 것 같은데' 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지인들도 퇴사 후에는 '야, 진짜 퇴사했어? 대단하다 진짜..' 라며 놀랐다. 심지어 부모님과 깊게 상의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정말 나는 그렇게 하기로 100% 마음먹었으니까. '엄마, 나 남미 갈 거야.'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남미?? 남아메리카?? 네가 그 위험한 곳을 가겠다고?' 라며 그래 가볼 테면 가봐라~라는 식으로 '그래~ 휴가 잘 다녀와라~'라고 하시길래

아니, 엄마. 나 퇴사하고 갈 거야.


라고 했을 땐, 믿지 않으셨다. 하지만 비행기 표까지 샀다고 말하는 순간 엄마는 놀랐고, 동행 없이 혼자 간다는 마지막 한 마디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심지어 1~2주도 아니고 4개월이라고? 많이 놀랐나 보다. 그 후로 비행기 타는 전날까지 진짜 가는 거냐고 계속 확인을 하던 엄마가 가끔씩 생각난다. 괜히 엄마 안심시키려고 일본도 혼자 두 번이나 다녀왔고, 그 무섭다던 불곰국 러시아 블라디보스톡도 혼자 다녀와서 괜찮다는 아무 말이나 해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겐 남미라는 곳이 많이 위험했나 보다.


사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라고 아무런 걱정도 불안도 없었던 건 아니다. 동양인이 사는 나라도 아니고 영어를 쓰는 나라들도 아니고 심지어 치안이 안 좋다고 소문이 날대로 나있던 남미를 간다니. 물론 가기 전까지 야간근무를 하면서도 무거운 눈 뜨고 남미라는 곳에 대한 공부도 했고, 출퇴근하면서 SNS나 블로그 같은 여행 후기를 많이 찾아보면서 간접 경험도 했고, 쉬는 날에는 스페인어 공부까지 했다. 그래도 무서웠다.

스페인어 인강 듣기

하지만 나에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Refresh가 필요했고, 사실 그 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잠시 떨어지고 싶었다. 시차도 반대, 위치도 반대. 딱 알맞은 곳이다. 그렇게 나는 2018년 11월 28일 남미로 떠났다. 그리고 2019년 3월 21일 귀국해야 했던 나는 4월 25일 한국에 들어왔다. 새까맣게 그을린 채로.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쫄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