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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기있는쫄보 Mar 09. 2021

나는 쫄보다

하지만용기 있는쫄보다

나는 나 자신을 가끔씩 쫄보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지인들은 어쩔 땐 “맞아, 너는 쫄보야. 이런 쫄보 같으니라고!”라고 할 때가 있고, 어쩔 땐 “네가 쫄보라고? 난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정말 대단해!”라고 할 때도 있다.


사실 나는 중고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아침 조회시간에 운동장에 혼자 나가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고, 학교에서 화장실을 혼자 가는 것 마저도 어색해했던 사춘기 여학생이었다. 이런 모습을 쫄보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어찌 됐던 혼자라면 괜히 뻘쭘해하던 나였고, 친구와 함께하는 게 인생의 전부였던 것처럼 살아왔던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전공 수업뿐만 아니라 교양 수업도 무조건 친구들과 함께 해야 했고, 친구들과 함께가 아닌 나 혼자 수업 듣기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1년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이 어학연수마저 대학 동기와 함께 같은 나라, 같은 도시, 같은 어학원을 등록했다.(아, 물론 홈스테이를 했던 집은 달랐다. 집까지 같으면,, 쫌,,) 지금의 나라면 절대적으로 혼자 갔을 것이고, 한국인이 없다는 곳만 찾았을 텐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22살의 나는 함께 할 사람이 있어 천만다행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생활로 조금씩 나는 변해갔다. 이는 어쩌면 함께 갔던 친구 덕(?)도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어학원에 잘 안 나왔고, 심지어 수업도 아예 달랐다. 함께 할 거라는 누군가와 떨어지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가끔씩은 나만의 시간을 갖는 시간들이 많아졌는데 그전까지는 친구 없이 교양수업을 듣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나에겐 큰 변화 중 하나였다. 그것도 심지어 머나먼 타국에서.

2012년 토론토, 캐나다

홈스테이를 하다가 혼자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난생처음으로 그것도 해외에서 자취도 해봤다(아직도 부모님은 이 사실을 모른다). 신세계일 줄만 알았던 자취는 별다를 게 없었지만 그래도 온전한 나만의 생활이 있다는 건 나름 괜찮은 일이었고, 괜스레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스스로가 변했다고 자각하지 못한 채 일 년 동안의 캐나다 어학연수를 끝내고 다시 복학을 해서 내가 듣고 싶었던 교양수업을 들었고, 친구들과 전공 아니면 많이 만날 수도 없던 요일도 생겨버렸다. 아니, 생겼다. 좋았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 반 정도를 오로지 내 꿈 하나를 위해서 시간과 돈과 노력과 눈물을 바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월급을 타고,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 그대로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이 있었고, 사실은 이런 생활들이 오랫동안 지속될까 봐 많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고등학생 때부터 품어왔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하. 못 이룬 꿈을 생각해보면 아직은 씁쓸한 미련이 남는다. 그래도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일 년 반을 낭비했다는 후회는 전혀 해본 적이 없다.

기차 타고 면접 보러 가는 길

그리고 호텔에서 나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서비스직이 나의 천직이다 라고 막연히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해왔던 나는 관광학부를 전공으로 했고, 나는 우리 학과에서 몇 안 되는 전공 살린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호텔리어 5년 차가 되어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오고 있다. 그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만날 예정이다. 별의별 사람들 중에는 뭘 해도 다 퍼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무서운 사람도 있고, 이상한 사람도 있고, 이해하기 참 어려운 사람들도 있는데 지나고 보면 내가 이런 사람들을 상대했다고,,? 가 되어 버린다. 그러던 중 마음도 몸도 지쳐버려 갑자기 돌연 '퇴사를 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5개월간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사회 속의 쫄보였던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하지만 쫄보 탈출을 완벽하게 했다는 건 아니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날이 많아졌고, 조금 더 나아가 보다가도 다시 쫄보 모드로 변하기를 반복했는데 나는 이런 나를 용기 있는 쫄보라고 칭하고 싶다. 가끔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시는 나이가 들어서 눈에 뵈는 게 없고, 무서운 게 없어진 건가?라는 물음표는 아직은 내 나이 31살, 만 29살인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 것 같고 용기 있는 쫄보, 이 말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얼마나 나는 쫄보인지, 얼마나 용기 있는 쫄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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