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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기있는쫄보 Apr 02. 2021

나의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된 브라질

아름다운 브라질

해가 밝았다. 이제 조금 적응을 했는지 새벽에 더 이상 배가 아파서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날씨가 어떠려나~ 하고 커튼을 열었더니 날씨가 좋다.


예수상이나 보러 가볼까


사실 신은 절대 없다고 믿는 나였기에 엄청난 흥미가 있진 않았지만 남들 다 가보는 예수상이니까 나도 가봐야지 라는 마음이 컸다. 아직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다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여행 초보자다.


우버를 불렀더니 기사가 짧은 영어로 오늘 안개 가득이라며 위에 올라가면 아무것도 안 보일 거라고 한다. 하늘을 봤더니 구름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을 가보겠다며 괜찮다고 했더니 계속 하늘과 나를 번갈아 보는 아저씨. ¡Abrigada!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택시에서 내려 예수상으로 갈 수 있는 트램을 타기 위해 티켓 부스에 갔더니 직원들이 화면을 보여준다.


‘예수상 안 보이는데 정말 갈 거야,,?’


오 마이 갓, 화면을 봤더니 정말 안개 가득이다. 어차피 오늘 할 일이 뭐 많지도 않고 그렇다 할 계획도 없으니까 흔히들 말하는 ‘존버’ 해볼까?라는 마음에 괜찮다고 했더니 걱정하는 눈치로 표를 끊어준다. 그래도 나 말고도 트램을 타는 사람이 꽤 있었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일까.


예수상 정상에 도착해서 앞을 보니 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직원이 밑에서 보여준 화면과 똑같았다. 여길보고 저길보고 다시 여길 봐도 똑같았다. 기다리면 보이려나,,? 하는 순간 바람이 조금 불더니 먹구름도 바람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

처음엔 예수님 뒤통수인가, 앞통수인가 했지만 조금씩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예수상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관광지라 사람들로 가득 차서 사람 얼굴반, 예수상반, 그리고 남는 공간에 내 얼굴. 이렇게 사진이 나오는 걸로 알았는데 뭔가 성당에 온것마냥 조용-하다. 예수상과 같이 찍으려는 사람들로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없었다.

혼자 여행하면 가장 아쉬운 점은 사진 찍기다. 예수상과 찍으려니 혼자 할 수 있는 최대 능력치는 여기까지다. 미니 삼각대가 있지만 아직 쓸 깡다구는 없다! 그래도 점점 안개가 사라지고 있다. 앞바다도 슬쩍슬쩍 보인다.

예수상보다는 저 멀리 보이는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예수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들을 매일매일 보고 있다니. 부러웠다.

혼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배경으로 셀카도 찍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더니 먹구름이 예수상 뒤로 넘어갔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브라질의 랜드마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예수상이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던 것 같다. 막상 예수상을 마주치니 ‘드디어 봤다, 내려가자!’ 이게 다였다.


내려오면서 나는 결심했다. 남미에 오기까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결국 퇴사까지 하고 지구 반대편으로 왔으니 정말 내가 원하는 것만 하고, 원하는 것만 보고, 원하는 것만 먹고 후회 없이 놀다 가야겠다고 말이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4개월이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예수상 덕분에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가슴 뻥 뚫리는 바다도 보고, 바람도 느꼈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한 느낌에 기분은 좋았다. 내려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예수가 두 팔 벌려 내려다보이는 곳은 부촌이고, 등 뒤로는 빈민가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마저 본인들에게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세상일은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아까 타고 올라왔던 트램을 타고 다시 내려왔다. 우버를 불러 이 근처에 있다는 셀라론 계단으로 향했다. 앞좌석에 타서 나는 셀라론의 계단은 안전하냐는 바보 같은 물음을 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동상이몽은 시작되었다. 나는 영어로, 우버 기사는 포어로 열심히 말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기사가 답답했는지 운전을 하면서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봤더니 번역기를 켜서 낮이라서 괜찮다는 말을 그렇게 열심히 적었던 것이다. 귀여웠다. 그러더니 나를 잠시 보더니 또 무언가를 적는다. 약간의 촉이 왔다. 편하지도,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는 그 느낌.


‘남자 친구 있어?’


나는 없는 남자 친구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응. 남자 친구 있어.’

‘왜 같이 안 왔어? 남자 친구는 어디 있는데?’

‘지금 한국에서 일하고 있어. 남자 친구는 다음 주에 아르헨티나로 올 거라서 그때 같이 여행할 거야. 거기서 만나기로 했어.’


라며 정말 누가 보면 진짜 있는 것 마냥 우리는 소리 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너한테 남자 친구가 없는 줄 알았어. 미안.’


남자 친구가 없는 줄 알았다니,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지만 여하튼 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멈추는 줄 날았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든 우버 기사는


‘남자 친구 만나면서 다른 남자 친구는 안 만나?’


라는 벙찌게 만드는 물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넌지시 던졌다. 올라 남미! 남미다. 이곳은 뭐든 열정적인 남미다. 사랑도, 일도, 노래도, 춤도 뭐든 열정적으로 하는 이곳이었다.


‘Oh, No way!’


덕분에 한바탕 크게 웃고 답을 했다. 그리고 잘 넘어가나 했더니,,


‘그럼 다른 남자랑은 키스 안 해? 나는 너랑 하고 싶은데.’


구글 번역이었는지 무슨 번역이었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번역기라 자연스럽게 안 걸러지는 건가? 내가 이상하게 알아들은 건가? 싶었지만 어찌 됐던 돌려서 생각하고 이해하더라도 결론적으로 정리해서 번역된 최선의 표현은 저 표현이 다였다. 난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깔깔 웃었다. 깔깔 웃으면서 어떻게 말해야 하지, 괜히 잘못 말했다간 어디 끌려가는 건 아닌가, 어떻게 모면해야 하지 등등 그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을 다 했다.


‘나 곧 결혼하는데?’


라고 써서 보여줬더니 멋쩍게 웃으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 근데 너 정말 이쁘다’


이렇게 이상한 대화는 끝이 났다. 덕분에 셀라론 계단까지 무서움은커녕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근처에 다 와갔을 땐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무서웠다. 누군가에게 브라질에서는 창문을 부수고 강도를 당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어서 그런가, 괜히 차 안에서 사진 찍는 것도 무서워서 찔끔찔끔 사진을 찍었다. 우버 기사는 나를 내려주기 전에 갑자기 핸드폰을 열심히 만지더니


'마지막으로 손키스 한 번만 해도 돼?'


라고 묻길래 키스는 안된다고 방방 뛰었던 나는


'응 그럼. 되고 말고.'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당당하게 손을 뻗었다. 잊을 수 없었다. 똘망똘망했던 큰 눈과 괜히 귀여웠던 얼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우린 각자 갈 길(?)을 갔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이다.


여튼 택시에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 셀라론 계단에만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주변의 온도, 분위기, 색깔은 확실하게 달랐다. 일단 골목에는 부랑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거리는 더러웠다. 그런데 고개만 조금 돌려서 셀라론 계단을 보면 사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과 음악들. 많이 달랐다.

택시 안에서 소심하게 찍은 그래피티

알록달록 타일들로 만들어진 계단들은 예뻤다. 포토 스팟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어제 빵산에서도 느꼈지만 정말 사진은 한국인이 제일 잘 찍는 것 같다. 열심히 줄 서서 뒤에 있는 관광객에게 부탁해서 찍힌 사진은 나를 다시 줄 뒤로 보내게 만들었다. 다시 줄을 서서 기다렸고, 두 번째로 찍어준 관광객은 내 뒤에 사람이 있었는지 본인 사진 찍어야 하니 앵글 밖으로 나가라고까지 해줬다. 재밌었다.

계단 위로 더 올라가고 싶었지만 쫄아서 다녔던 나는 계단에 앉아서 사진 찍었으니까 오늘 할 일 다 했다 치고 다시 우버를 불러 숙소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 주어진 미션 클리어하러 간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재미없게 다닌 것 같기도 하다가도 다시 저 때의 내가 되어 생각해보면 나름 최선의 방법으로 다녔던 것 같기도 하고.


오전에 우버 타기 전에 미리 맡겨두었던 런더리를 찾았다. 브라질에 온 지 며칠 안됐지만 옷을 많이 챙겨 오지 않았던 나는 아르헨티나로 가기 전까지는 세탁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한번 세탁기에 돌리기로 했다. 깨끗하게 빨린 런더리를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침대에 누우니 더 기분이 좋다. 물갈이도 진정된 듯싶으니 뭔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었다. 맡겨둔 런더리를 찾아오면서 봐 뒀던 레스토랑으로 갔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흰머리와 흰 수염의 영감님이 웨이터였다. 나에게 포어로 열심히 메뉴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기 같은 메뉴를 골랐고, 콜라도 한잔 시켜보았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꽐라가 되는 나는 맥주를 시킬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생맥주가 나왔다. 오더하지 않았다고 천천히 영어로도 말해보고 손으로 X자를 그려보았지만 못 알아들으시는 건지, 그냥 못 알아들으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분위기에 마셔보기로 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한 모금만 마셨지만 생맥주도 좋았다.

시키지 않았던 생맥주

웨이터 영감님과 나는 정말 서로 대화가 안됐나 보다. 메뉴가 정말 많이 나왔다. 고기와 감자튀김, 볶음밥이 함께 담겨 있는 접시와 볶음밥이 한껏 담긴 접시, 그리고 엄청난 양의 감자튀김이 담긴 접시. 허허허허. 그냥 먹기로 했다.

다 먹어보려 했지만 결국은 반은 남겼던 메뉴들. 기분 좋게 결제하고 나와 그 유명하다던 코파카바나 해변을 걸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코파카바나, 코파카바나라고 하는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걸었다.

뜨거운 태양, 태양이 내리쬐어 반짝이는 모래, 파도소리와 바다, 그리고 즐기는 사람들. 정말 최고였다.

혼자 보는 게 너무 아까울 정도랄까. 그래서 한국은 새벽이지만 안자는 친구들한테 일일이 영상통화를 걸어서 보여줬다. 너무 좋았다. 매일매일 올걸,, 나는 내일이면 리우를 떠나는데 말이다. 모든 것이 아쉬웠다.

브라질. 생각해보면 가장 아쉽고, 또 아쉬운 나라는 브라질이다. 생각해보면 사람들도 친절했다. 아름다웠다. 물론 아무 걱정 없이 한밤 중 산책을 하고, 소지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그저 쇠창살과 더러운 골목길만 보고 지레 겁만 먹고 눈치를 보면서 다닐 곳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남미를 다시 꼭 가겠다고 늘 말을 하고 다니곤 하는데, 나의 첫 번째 남미 버킷 리스트는 브라질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것이다. 정말 볼 것도, 갈 곳도 많은 브라질. 다녀왔지만 다시 다녀와야 할 곳,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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