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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May 28. 2024

2. 목발 나사 실종 사건

중요한 것이 사라지고 나서 우리 가족이 벌인 사투의 기록

아빠는 장난을 무척 좋아하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게이트 앞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도 아빠는 남동생의 목발을 가지고 환자 흉내를 내셨다. 엄마는 아빠를 제지하셨다.

- 하지 마. 아픈 애 앞에서 그러고 싶어?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 어허, 이거 나사가 없다.

정말이었다. 수나사가 사선으로 비스듬히 매달려 있었다. '나 여기 있는데 좀 봐줘!'라면서 대롱대롱하는 듯했다. 우리 가족은 혼비백산이 되어 바닥만 내려다봤다. 시야를 점차 넓혔다. 당장 지나쳐왔던 근방을 살폈다. 반경을 좀 더 넓혔다. 녀석은 자신이 다녀온 화장실까지 찾아보았다. 있을 리가 만무했다. 공항에 들어온 이래로 금속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일절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언제 빠진 걸까. 출국장에서? 자동차 안에서? 아니 어쩌면 집에서? 내가 찍어둔 사진을 보면 혹시 나사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알 수 있을까 하여 카메라를 켜봤다. 죄다 동생이 목발을 껴안고 있거나 상반신만 찍은 탓에 나사의 유무를 밝힐 수 없었다. 목발도 주인의 돌아간 발목 따라 덜렁거리기 직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앞으로 가야 할 시간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은 닥치면 무엇이든 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나름의 집단 지성을 발휘했다. 나는 후쿠오카에서 여행객에게 휠체어를 빌려준다는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 무작정 '후쿠오카 휠체어 대여'를 검색해 가며 사이트를 찾았다. 한국어로 번역해서 급하게 필요 사항을 확인했다. 문의 내용, 이름, 이메일, 숙소 이름, 렌털 용품(휠체어)을 간략하게 남겼다. 곧바로 문의를 확인했으니, 답장을 기다려달라는 자동 답장 메일이 왔다. 일단 물어보았다지만, 당장 앞으로가 걱정되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항공사 휠체어를 반납하고 나면 어쩌나. 이 목발이 과연 얼마나 이 녀석을 지탱해 줄까. 여행은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먼지 같은 걱정이 켜켜이 쌓여갈 때쯤, 엄마와 여동생이 고따위 것들 물리치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나타났다. 엄마의 손에는 고무줄이, 여동생의 손에는 테이프가 들려있었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구한 직원들의 사무용품이라서 반납해야 한다고 했다. 고무줄과 테이프를 목발의 붕대 삼아 칭칭 감았다. 불뚝 튀어나온 노란 붕대였다. 남동생은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목발은 안은 채, 제일 먼저 비행기 앞으로 갔다.

면 붕대를 감은 동생의 발목과 테이프 붕대를 감은 동생의 목발




후쿠오카 입국장에 도착해서도 교통약자인 남동생과 동반자인 나는 빨리 입국장에서 벗어났다.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 앞에 먼저 도착해서 우리 짐을 내렸다. 이윽고 가족이 다시 모였다. 항공사 직원이 공항의 출입구까지 동행했다가 휠체어를 수거해 갔다. 우리만 온전히 남게 됐을 때, 비행하는 사이에 휠체어 대여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온 것을 바로 가족들에게 공유했다.

- 휠체어 빌려주겠다는 답장을 받았어. 어떻게 할까?

- 나 걸어 다녀 볼게. 걸을 수 있어.

남동생은 극구 걸어 다녀보겠다고 했지만, 남동생의 발목 건강, 목발의 내구력, 현저히 떨어지는 기동력이 심히 우려되었다. 대여소가 멀리 있더라도 그곳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설득했다.

공항 국내선 터미널 북쪽 게이트 끝에는 공항 내부용, 외부용 휠체어 렌털 서비스 장소가 구비돼 있었다. 외부용 관광 안내소에 가니 노인이 한 분이 계셨다. 어떻게 말해야 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종이를 들이밀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내가 미리 보낸 메일로 보낸 정보가 적혀있었다. 한글로 남동생의 이름까지 정성스레 적혀있어서 감동적인 마음이 절로 일었다. 연신 오케이를 외쳤다. 여권 사본을 제출하고 돈을 지불하고 조작법을 배우고 나서야 휠체어를 받았다. 썩 잘 굴러가진 않았다. 어휴, 그래도 이게 어디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자, 이제 우리 어딜 가면 될까 동생아.

우리의 천군만마는 ‘청’토마였다.

덧 1, 국제선 인포메이션에서 만났던 안내 요원께서 한국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하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 대신 대여소 직원분과 통화해 주시며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덧 2, 대여 사이트를 찾을 때, 검색창에 뭐라고 적었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답신에 적혀있는 사이트 주소를 공유해 본다.

후쿠오카에 가는데 휠체어나 유모차가 필요하다면 참고하시길.


https://ud-kyushu.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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