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빈속 여행
여행 이튿날. 전날 밤에 편의점에서 사둔 간편식으로 아침을 때웠다. 서둘렀는데도 시간이 없었다. 먹어야 할 것만으로도 빡빡한 일정이었다. 간식으로 가라토 시장에서 초밥, 점심은 모지코항의 야키카레, 저녁은 숙소 주변의 스키야키까지. 참으로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변수'에 얻어터지기 전까지는...
남동생을 휠체어에 앉히고 하카타역까지 단숨에 갔다. 제법 휠체어 사용법도 손에 익어서 인도의 턱도 무사히 지나왔다.(사실 한 번은 튕겼다. 그래도 어제에 비하면 무사했다.) 우리 가족은 신칸센을 타고 고쿠라 역까지 무사히 갔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시모노세키 역에서 내린 후에 버스를 타고 가라토 시장을 가면 될 참이었다. 그런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시모노세키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엄마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목적지에 내렸을 때 엄마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었다. 급체였다. 화장실로 보내드렸다. 그 이후로 두어 번은 더 다녀오셨는데 여전히 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엄마는 여행을 망친 것 같다며 연신 미안해하셨다.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실제로도 괜찮았다. 우리 남매는 남동생의 발목 부상 이후에는 나름 대인배가 되어있었다. 어차피 계획을 실행할 수 없었던 거 알고 있었잖아? 그저 다음을 생각하기로 했다. 역 내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탄산음료를 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가라토시장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서 버스를 타기에 무리라 판단했다. 우리는 두 개 조로 나뉘어 움직이기로 했다. 엄마와 여동생은 걸어서, 나와 남동생, 아빠는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역 앞에 택시승강장으로 갔다. 남동생은 뭔가를 검색을 하더니, 본인이 나서보겠단다. 그리고 아주 비장하게 말했다.
- 가라토 시즈오 구다사이.
친절한 택시기사님 덕분에 시장 앞까지 바로 내달렸다. 선발대가 미리 장을 봐두기로 했던 터라 기다리지 않고 곧장 들어갔다. 지각생은 환대받지 못할 그곳. 시장은 이미 도떼기였다. 여동생 말로는, 이곳은 주말에만 초밥시장을 열기 때문에 관광객뿐만이 아니라 현지인도 많단다. 우와, 근데 이 정도로 많을 줄이야. 남동생을 데리고 둘러보며 쇼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서둘러 시장을 관통하여 반대편 출입구로 나갔다. 일단 엄마와 여동생을 기다리기로 했다. 카메라를 이곳저곳 들이대면서 바닷바람 쐰 지 얼마 안 되어 엄마가 오셨다.
-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
- 걷다가 중간에 속이 좀 괜찮아져서 버스 타자고 했어.
그랬을 리가. 미안하셨던 나머지 동생에게 버스를 타자고 채근하셨겠지.
엄마는 그저 바람을 쐬고 싶다 하셨다. 우리는 식사할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드렸다. 남동생과 엄마를 남겨두고 나머지 셋은 장을 보기로 했다. 새참이 되었어야 할 초밥은 시간의 자리를 옮겨 자연히 점심이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종류별로 먹어보자며,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초밥을 두 개씩을 골라 세 접시를 꽉 채운 걸로도 모자라 새우튀김에 복어회까지 샀다. 아빠 손이 없었다면 식사 자리로 돌아오는데 꽤 버거울 뻔했다.
자리로 돌아오니 여전히 아프신 엄마가 마른세수를 하고 계셨다. 그러다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너희 표정을 읽었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 괜찮아, 천천히 먹어.
초밥은 우리 가족의 입안을 가득 채우고 말을 빼앗아갔다. 맛있다는 말 한두 마디 정도 했을까. 우리는 조용히 접시를 비웠다.
한편, 바다 내음은 엄마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소금기 묻어난 바람이 살랑일수록 당신의 속은 진정된다고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신의 말씀처럼 안색도 돌아왔고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뒷모습이 당신을 대변하고 있었다. 한껏 그네 타는 듯한 엄마의 손짓과 가뿐해진 발이 그랬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느리게 걸었다. 시장에서 발을 떼어 더디게 항구로 갔다. 그렇게 페리를 타고 모지코 항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