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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Jun 26. 2024

6. 버스 타고 유후!

버스에 기대어 유후인으로 들어서기까지의 여정

간밤에 온 가족이 곯아떨어져 잠이 들었다. 덕분에 모두 일찍 일어났다. 일찍 일어난 새는 벌레를 잡는다. 우리는 벌레를 잡아야만 했다. 여동생은 눈 비비면서 단단히 일러두었다.

- 오늘은 유후인에 도착할 때까진 따로 식사 시간이 없으니까, 아침을 든든히 먹어둬야 해.

3일 차의 반나절은 유후인행 1일 버스 투어였다. 어쩜, 이만큼 적절한 일정이 또 있을까. 버스에 기대어 나는 힘을 덜 쓰고 남동생은 덜 미안하고 여동생은 덜 고민하고 부모님은 더 편안해하실 여정이었다. 돌멩이 하나에 네 마리 새를 잡은 격이라니. 나는 밥을 욱여넣으며 대답했다.

- 제부 센스 진짜 대박이다!




비가 올 거라던 예보와 달리 아침부터 태양이 작열했다. 어느 것 하나 순조로운 것이 없었지만 날씨만은 우리 편인 것 같아서 안심했다. 여행 중 제일 가벼운 발걸음으로 투어 집결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이 사람들 모두가 유후인으로 가는 걸까? 우리는 몇 번이나 이들과 마주하게 될까? 란 궁금증으로 시간을 보냈다. 애초에 일찍 간 편이라 기다림을 각오했지만 약속한 시간이 좀 더 지나도 우리 투어의 가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볼멘소리를 낼 때쯤이 돼서야 깃발이 보였다. 드디어 우리는 '호호 아줌마'를 연상케 하는 가이드님을 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가이드 여행이라는 게 대개 그렇다. 버스에 올라탄 순간부터 휘발 가능성이 높은 정보만을 전해 듣는다. 머리에 양식을 어느 정도 채웠으니, 가는 곳마다 더 깊이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버스에서 내린다. 어디, 세상이 그리 만만하더냐. 머리는 금세 비워진다. 그러나 이를 아쉬워할 새도 없다. 풍경을 주워 담느라 바쁘다. 그뿐인가. 몸도 덩달아 바쁘다. 이곳저곳 둘러봐야지, 인생 사진 남겨야지, 맛있는 거 사 먹어야지, 급하면 화장실도 다녀와야지. 거기에 부지런함이 몸에 깃든 부모님의 채근은 어떻고. 그리하여 체감상 5분 내지는 10분으로 느껴질 정도의 짧은 관광을 한다. 그러고는 '에구, 벌써 끝이라니!'를 되뇌며 다시 버스를 탄다. 이제는 다음 행선지의 설명을 들을 차례다. 그렇게 채워지고 비워지고의 연속이다. 결국 굳건히 채워지는 건 우리 가족이 그 공간을 향유했다는 기억이다.




첫 번째 일정은 텐만궁이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다리를 건널 때에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기. 그러니 사진을 찍고 싶다면 나오는 길에 찍기. 우리는 재빠르게 갔다가 천천히 나오며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사람이 많아 빠른 진입이 어려웠다. 구도 잡는 것도 여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버스에 두고 온 삼각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간절해졌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으니. 삼각대 대신 커다란 돌기둥 받침을 찾아내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대체로 얼굴만 있는 우리 가족사진. 누군가 그 사진을 본다면 그곳이  어딘지 모를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떠리. 우리 가족 머릿속에는 다자이후 텐만궁이라는 제목으로 자리 잡을 사진 한 장 근사하게 찍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순간을 포착해서 남긴 몇 안되는 풍경. 여유는 남긴 것 같아 마음에 드는 사진들.
커다란 받침돌 앞에서 우리 가족은 근사한 한 장을 남겼다.

중간에 쿠스 휴게소에 들렀다. 우리 자매는 버스 브레이크를 신호탄 삼아 달려 나갔다. 그곳 편의점에서 판다는 야마나미 목장 요구르트를 샀다. 맛있으니까 무조건 큰걸 사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잊지 않고 두 개 샀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는 요구르트 모델이 된 양 여러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묵직한 요구르트 병을 바라보던 여동생이 말했다.

- 작은 건 병이 귀엽던데. 작은 것도 하나 살 걸 그랬어.

다시 줄 서서 요구르트를 구입하고 사진을 찍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아쉬움은 남겨두고 맛이나 보자 하며 마셔보았다. 과연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작은 거 하나 더 사서 찍고 마셨을 거다. 아니, 두 개는 더.

하늘도 좋고 바람도 좋고 요구르트는 더 좋고!



다음으로 가마도 지옥에서는 온천을 가볍게 구경했다. 한국어를 공부하신 직원분이 신기하네~ 대박이네~ 살아있네~를 연발하며 연기쇼를 보여주셨다. 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제부가 생각났다. 우리 가족 여행을 옆에서 지켜본다면, 아주 흡족해하며 저리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 여행은 말 그대로 신기하고 대박이었으며 살아있었다.) 왠지 모를 훈훈한 기운을 머금고 족욕장으로 이동했다. 제일 구석진 곳에 우리 다섯이 옹기종기 앉아 발을 담갔다. 뜨끈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노곤노곤해져 눈꺼풀이 살짝 무거워지려는 찰나, 부지런함을 최고 무기로 두는 엄마가 말씀하셨다.

- 저기 자리 났다, 얼른 가서 달걀 먹어야 해.

달걀을 먹으면서 비로소 이 투어에 식사시간이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텐만궁에서 매화떡, 휴게소에서 요구르트, 가마도지옥에서 달걀과 사이다. 간식이 시시각각으로 허기의 틈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소다맛이 나는 사이다로 입가심하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더할 나위 없네-.

족욕 후의 맥반석 달걀은 참으로 꿀맛이었다.



투어의 마지막은 유황 재배지라는 유노하나였다. 작은 수탕이 있어 이곳에서는 손을 담가보았다. 한껏 보드라워진 손을 만지며 우리 가족은 현혹되었다. 사실 투어 내내 우리는 착실한 소비자였다. 호호 가이드 선생님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연상케 했다. 그녀가 추천 아이템은 모두 홀린 듯이 구매했기 때문이다. 텐만궁 앞에서는 명란 바게트, 휴게소에서는 요구르트, 가마도지옥에서는 유황 크림과 입욕제, 유노 하나에서는 비누와 술까지. 가는 곳마다 지출이 발생했다. 가벼워지는 현금 주머니가 슬슬 걱정될 무렵에 투어가 끝났다.

현재 기술로는 재현할 수 없는 유황 재배소. 선조의 지혜는 언제나 경이롭다.

각종 시식과 구매를 겸비한 나머지 옹골진 반나절을 보냈다. 우리 가족은 유유히 유후인으로 들어섰다.(유후! 인?!) 버스가 정차한 주차장으로부터 숙소까지의 거리는 1.7km였다. 해는 한창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앞에 펼쳐진 인파(人波)의 파고(波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나는 숨을 골랐다. 휠체어 손잡이를 잡아 쥐었다. 앞만 보고 내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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