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에피소드
2022년 봄, 밴쿠버행 비행기에 오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삶을 위한 연극(Theatre for Living)'이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한해 전 나는 대학원에서 시민연극 실습 워크숍(Applied Theatre Practice Workshop)이란 수강명의 수업을 청강했다. 수업은 시민연극의 개념을 학습하고 브라질 연극 연출가이자 교육자로 알려진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의 억압받는 자의 연극(Theatre of the Oppressed)과 그가 창시한 포럼연극(Forum Theatre)에 대한 이론과 실천으로 구성된 내용이었다.
16주간 바쁘게 이어진 수업에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면 보알(Boal)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이 만들어 낸 질문들이었고 그 질문들은 역으로 나에게 자문하도록 이끄는 질문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왜 연극을 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 연극인가?
나는 어떤 연극을 할 수 있는가?
16주가 지난 이후에도 포럼연극에 대한 개인적인 열기는 식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열기는 배가 되어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관객이 주인이 되는 연극
논쟁(Debate) 보다 합의(Discuss)를 이끌어내는 연극
이러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배경 삼아 나는 밴쿠버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삶을 위한 연극(Theatre for Living)은 캐나다 밴쿠버에 위치한 포럼연극 극단으로 1981년부터 2018년까지 약 40여 년간 포럼연극 작업을 진행시켜 온 극단이다. 현재는 극단의 형태로 운영되기보다 전 세계를 다니며 삶을 위한 연극의 철학과 기법을 교육하며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삶을 위한 연극의 대표이자 교육자인 데이비드 다이아몬드(David Diamond)는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브라질의 연극 연출가이자 교육자인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과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 온 동료이자 친구이다. 그는 현재까지 50년 이상 캐나다와 전 세계(미국, 유럽의 여러 국가, 나미비아, 에티오피아,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원주민 공동체)의 사회 문제를 연극을 통해 탐구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방법을 삶을 위한 연극을 통해 실천적 행위자로서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있어 삶을 위한 연극이란 단순한 예술의 형태가 아니며, 연극이 사회와 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이다. 특히 삶을 위한 연극에서는 참여자와 관객이 적극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이는 ‘억압자와 억압을 당하는 자’라는 이분법적 모델을 넘어서 오늘날 양 극단화된 세상에서 이해의 다리를 놓기 위한 필수적인 모델을 보여준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키칠라노 비치(Kitsilano Beach) 인근의 작은 카페에서였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그의 책 '삶을 위한 연극: 공동체를 위한 대화의 예술과 과학(Theatre for Living: The art and Science of Community-Based Dialogue)'을 읽고 있었다. 대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전공서적과는 달리 그의 책은 실질적 경험을 기반으로 쓰인 살아있는 문장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글을 통해 상상하며 이미지로 형성된 그의 모습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긴장보다는 편안함이 우선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약 한 시간가량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의 문화와 연극, 그리고 포럼연극 실천에 관하여 궁금한 게 많았고 나는 50년 이상 포럼연극을 실천해 온 실천가로서의 그가 흥미로웠다. 커다란 산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지만, 내가 느낀 그는 잘 닦여진 산책로와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몇 개월 뒤에 있을 정규 트레이닝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삶을 위한 연극은 나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