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아, 16개월 간의 타지 생활이 가져다주는 삶의 간격은 이 정도의 크기구나.., " 하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발견도 잠시, 내겐 풀지 못한 암묵적인 숙제가 늘 따라다녔다.
삶을 위한 연극(Theatre for Living)
잘 보고, 듣고, 느끼며 온몸으로 내가 경험했던 삶을 위한 연극의 메시지가 내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동시에 밖으로 공유되지 않고 안으로만 남겨진 살아있는 지식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뒤따랐다. 내가 경험했던 삶을 위한 연극은 실천의 학문이며 실천이 동반되었을때 가장 가치롭게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움직이며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그런 사람. 어느 정도 머리로 정리가 되자 삶을 위한 연극을 마음으로 나누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나눌 때 배가되는 그런 방식으로.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 배워온 내용이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점차 숙달되어 내 것으로서 되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우연히 찾게 된 키워드가 바로 '기부'였다.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약간의 책임감을 갖고서 함께 하는 시간을 완성시켜 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부처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고민지점이 아니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주변 가까운 곳에는 언제나 물심(物心)으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에겐 언제나 '청소년열정공간 99°C'가 그런 곳이었다. 99°C의 대표 김부일 선생님께서는 이런 내 취지를 빌어사회를 바꾸는 '예술 운동(Arts Action)'이라는 거창한 표현으로 나의 생각과 실천을 지지해 주셨다. 늘 그런 분이셨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작은 실천을 일깨워주신 분. 나는 그런 '예술 운동'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9월부터 시작된 작은 실천은 12월이 되어서야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2023 삶을 위한 연극(Theatre for Living) 부산 극단 밖 워크숍 홍보 포스터
2023 삶을 위한 연극(Theatre for Living) 과천 별별극장 워크숍 홍보 포스터
2023년의 12월은 매년 찾아오는 겨울이었지만, 그해 겨울은 유독 빛나고 따뜻한 하이얀 겨울이었다.
부산 지역에서 시각분야 예술교육가로 활동하는 문은아 선생님과 경기도 과천 지역에서 별별극장을 운영하는 석수정 대표님의 기부 및 도움으로 워크숍을 열 수 있는 공간과 참여자 모집을 이뤄낼 수 있었다. 참여를 희망한 사람들의 분야는 다양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참여를 결심한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삶을 위한 연극에 대한 관심이었으며, 둘째는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3개월 간 틈나는 시간을 활용해 삶을 위한 연극 트레이닝에서 내가 경험했던 노하우와 데이비드가 전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내용에 관하여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섯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워크숍이었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두려움은 준비하는 시간까지만 허용되는 범위였다. 생애 처음 맞이한 12월 말, 부산의 겨울은 아름다웠다.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의 흐르는 눈물마저 따뜻했으며 그들과 나눈 삶을 위한 연극은 우리 내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이었다.
2023 삶을 위한 연극(Theatre for Living) 부산 워크숍
2024년을 눈앞에 두고서 맞이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문을 열었던 삶을 위한 연극을 통한 교류는 아쉬움이 더 많았다.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었으리라. 그러므로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이 찾아오면 삶을 위한 연극을 통한 예술 운동은 지속될 예정이다. 개인의 성장을 위하여, 사회의 밝은 변화를 위하여, 우리 내 건강한 공동체를 위하여. 삶을 위한 연극, 삶을 위한 음악, 삶을 위한 미술, 삶을 위한 무용, 삶을 위한 영화, 삶을 위한 문학 그리고 삶을 위한 예술 그 자체가 되어 확산의 꽃을 피워낼 때까지 계속해서 나무를 심어볼 요량이다. 삶을 위한 예술의 숲이 되어 좀 더 안전하고 남을 위한 나만의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