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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현 Mar 22. 2021

# 2. 폭력과 이데올로기(1)

<도랑선비 청정각시>와 열(烈) 이데올로기

"나와 같이 살려거든 집에 돌아가서 석자 세치 명주실로 오대조(五代祖)가 심은 노가지 향나무에 한 끝을 걸고 한 끝은 네 목에 걸고 죽어라. 죽어 저승에서라야 우리 둘이 잘 살리라.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재물을 탐하고 백성을 죽인 죄로 이렇게 되었소."
낭자는 비로소 죽는 법을 깨달아 크게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 가르친 대로 목을 잘라 자결하였다.

김근성 구연, 손진태 조사, <도랑선배‧청정각시>(1926)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처럼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지만,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작동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데올로기적 폭력은 역사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대표적인 비가시적인 폭력 중 하나입니다.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 의하면, 이데올로기(ideology)는 가상의 형태로 스스로에게 자신의 실제 존재 조건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즉, 어떤 개인이 ‘주체’로서 호명(interpellation)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춘향이라는 한 개인은 이몽룡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변학도에게 대항함으로써 ‘열녀(烈女)’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됩니다. 열녀 춘향이라는 새로운 주체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춘향을 열녀라고 호명하는 것이 바로 중세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유교적 이데올로기입니다. 수많은 개인들은 춘향이처럼 특정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내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함경도의 망묵굿에서 구연되는 <도랑선비 청정각시>는 이런 ‘열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잘 보여주는 신화입니다. 망묵굿은 새남굿이라고도 불리며, 함흥과 인근 각지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치러지는 대규모의 무속의례입니다. 호새비(호시아비)로 불리는 여러 무당들이 동원되어 3일간 밤낮으로 진행되며, 그 안에서 '신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무당의 노래로 구송됩니다.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서사적 대응이 신화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죠. <도랑선비 청정각시>는 함경도 망묵굿 중 '도랑축원'이라는 굿거리에서 연행되는데, 도랑축원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소통 가능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두 공간의 배타적 관계를 확립합니다. 망묵굿이라는 제의를 통해 이승과 저승이 일시적으로 연결될 수는 있지만, 결국 저승은 이승에서 배제됨으로써 편입되는 특수한 예외 공간임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연결되지만 결국 분리될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서 이승과 저승의 관계가 정립되는 셈입니다. <도랑선비 청정각시>는 이런 복잡한 관계를 뮈토스의 형태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도랑선비 청정각시>는 지금까지 총 5편의 각편(version)이 남아있습니다. 김근성, 이고분, 장채순, 지금섬, 백가야라는 무당에 의해서 구연되었던 <도랑선비 청정각시>는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나 학자들의 개별적인 조사를 통해 보고되었습니다. 그중에 이데올로기적 폭력을 잘 보여주는 김근성이 구연한 각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정각시의 아버지는 화덕중군이고 어머니는 구토부인이었다.

청정각시는 도랑선비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도랑선비는 성대한 혼수와 많은 하인을 대동하고 청정각시의 집에 왔는데, 대문을 넘을 때 무엇인가가 뒤통수를 잡아 끄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결혼식이 진행되면서 도랑선비는 계속 누워있었다. 첫날 밤 정신이 혼미한 도랑선비를 보고 청정각시의 부모가 놀라 큰 무당을 불러 점을 보니, 혼수에 부정이 타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혼수를 모두 불태웠지만 여전히 도랑선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도랑선비는 집에 돌아가서 숨을 거두었다.

청정각시는 도랑선비의 집에 가서 남편의 시체를 매장하고 밤낮으로 울었다. 그 곡성을 듣고 옥황상제는 황금산의 성인(聖人)을 내려보냈다. 황금산 성인은 중의 모습이 되어서 청정각시에게 동냥을 구했다. 청정각시는 동냥은 원하는 대로 드릴 테니 도랑선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황금산 성인은 됫박을 주며 여기에 정화수를 길어 첫날밤의 이부자리를 펴고 첫날밤 입던 옷을 입고 혼자서 삼일간 기도를 하라고 했다. 청정각시가 그대로 하자 도랑선비의 모습이 나타났다. 청정각시가 도랑선비의 손을 잡자 도랑선비는 바로 사라졌다.

청정각시가 다시 황금산 성인에게 도랑선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황금상 성인은 머리카락을 뽑아서 노끈을 꼬아 만들고 안내산 금상절에 가서 한 끝은 법당에, 또 한 끝은 공중에 걸라고 했다. 그리고 손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그 노끈을 꿰어 위아래로 훑되 절대로 아프다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했다. 청정각시가 머리카락을 뽑아 꼬아만든 매듭을 구멍을 뚫은 손바닥에 꿰어서 훑자 도랑선비가 나타났다. 청정각시가 도랑선비를 껴안자 도랑선비는 다시 사라졌다.

청정각시가 다시 황금산 성인에게 도랑선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황금상 성인은 참깨 닷 말, 들깨 닷 말, 아주까리 닷 말로 기름을 짜서 손에 적셔 찍어 말리고, 열 손가락에 불을 붙여 그 불로 발원을 하라고 했다. 청정각시가 그렇게 손가락에 불을 붙이자 도랑선비가 나타났다. 청정각시가 도랑선비를 안자 도랑선비는 또 사라졌다.

청정각시가 다시 황금산 성인에게 도랑선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황금상 성인은 안내산 금상절의 험난한 고갯길을 맨손으로 닦으라고 했다. 청정각시는 타고 남은 손가락으로 풀을 뽑고 돌을 치우며 길을 닦기 시작했고,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때 피로로 인해 혼절했다. 청정각시가 정신을 차리자, 도랑선비가 반대편에서 길을 닦으며 오고 있었다. 청정각시는 도랑선비를 껴안았다. 이번에는 도랑선비가 사라지지 않았다. 둘은 손을 마주잡고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그때 위태위태한 다리가 있었는데, 도랑선비는 청정각시한테 먼저 건너라고 했다. 청정각시가 다리를 건너고 도랑선비가 다리를 건널 차례가 되자,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 도랑선비를 휘감아 다리 아래 물속으로 떨어뜨렸다. 도랑선비는 물속에서 청정각시에게 소리쳤다. 자신과 같이 살려면 오대조가 심은 노가지 향나무에 명주실을 걸어 자결을 하라고...

청정각시는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 자결했다. 청정각시는 저승에 가서 당당하게 도랑선비를 만나러 왔노라 소리쳤다. 도랑선비는 저승 서당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둘은 크게 기뻐하여 저승에서 무한한 즐거움을 맞았다.

뒤에 둘은 인간 세상에 환생하여 신으로 모셔졌다. 인간 세상에서 죽은 망령을 위하는 제사를 올릴 때 양쪽의 두 상은 도랑선비와 청정각시 부부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절간에서 제사를 올릴 때 첫상은 부처님이, 그 뒤의 상은 도랑선비와 청정각시가 젯상을 받도록 법을 마련하였다.


<도랑선비 청정각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함경도 망묵굿에서 가장 중요하고 인기있는 신화입니다. 망묵굿에서 망자를 만나기 위한 '저승 길'을 닦는 최초의 신화이기도 합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눈물과 고통의 서사'라고도 불릴 정도로 청정각시가 감내해야 하는 수난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도랑선비가 신부에게 보내는 혼수에 부정이 타거나 도랑선비의 조부(祖父)가 죄를 지어 후대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도랑선비의 갑작스런 죽음에는 남성 집단의 원죄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도랑선비 청정각시>는 남성 집단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남편을 잃은 청정각시의 눈물로 점철된 서사에서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행을 겪어야 했는지에만 주로 주목하고 있죠. 특히, 머리카락을 뽑아서 꼬아만든 매듭을 구멍을 뚫은 손바닥에 꿰어서 훑는 장면, 참깨나 들깨 등에서 기름을 짜서 열 손가락에 묻혀 말린 후에 불을 붙이는 장면, 금상절의 거친 고개를 직접 손으로 다듬으며 길을 닦는 장면은 쉽게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처절함을 보여줍니다. 물론, 청정각시에게 부여된 고난은 삶과 죽음의 경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횡단하여 망자(亡者)를 한 번이라도 만나고자 하는 생자(生者)의 불굴의 의지가 투영된 것이기에 현실 차원을 넘어선 행위가 묘사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청정각시라는 여성에게만 이런 고난이 부여되는 것일까요?


황망한 것은 청정각시의 이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도랑선비와의 온전한 재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겨우 도랑선비가 눈앞에 나타나도 손을 잡거나 안으려고 할 때 도랑선비는 사라질 뿐입니다. 찰나의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안타까운 상황은 청정각시가 스스로 죽어야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서만 저승의 존재와 온전하게 재회할 수 있다는 설정은 저승이 이승에 있는 인간들에게는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배타적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도랑선비 청정각시>에서는 끝내 청정각시가 자결을 함으로써 도랑선비와 재회하게 만듭니다.


<도랑선비 청정각시>에서 도랑선비는 스스로 죽음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롯이 청정각시에게만 있습니다. 옥황상제, 황금산 성인, 도랑선비의 조부(祖父), 도랑선비로 이어지는 남성집단은 직접적인 문제상황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청정각시를 마치 시험이라도 하듯 고난을 부여합니다. 그들의 마땅한 권리인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보니, 이들 남성집단과 청정각시 사이에는 수직적 위계가 만들어집니다. 남성집단의 조종을 통해 청정각시에게 부여된 가학적인 고난은 '손'이라는 신체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청정각시의 손은 구멍이 뚫리고, 피를 철철 흘리며, 불에 그을리고, 거친 땅을 파고들면서 점점 남성집단이 부여한 고통을 내면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도랑선비가 청정각시에게 자결을 요구했을 때, 청정각시는 '기쁜 마음'으로 목을 매어 자살을 했던 것입니다.


청정각시를 대하는 남성집단의 모습은 물리적인 억압과 폭력에 다름 아닙니다. 남성/여성의 체계에서 남성 우위의 수직질서를 당연시 여기고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여성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도랑선비 청정각시>에서 포착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남성집단의 폭력이 물리적인 형태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직접적으로 열(烈)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청정각시가 스스로 희생을 감내하고 폭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남성중심적 상징질서'라는 구조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청정각시는 상징질서 안에서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열녀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첫날 밤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해 온전한 가족 구성원이 되지 못했던 청정각시는 스스로 고난을 감내함으로써 해체되었던 가족을 복원하고 그 안에서 '열녀'라는 새로운 주체로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겁니다.


청정각시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열녀 되기'라는 서사를 통해 점차 은폐됩니다.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열녀로 호명된 청정각시는 이제 도랑선비와 기뻐하며 '부부의 일원'으로서 무한한 즐거움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 속에서 폭력은 오히려 청정각시의 삶 속에 주체되기의 충분조건이 됩니다. 이데올로기와 폭력의 공생은 이런 환경 속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도랑선비 청정각시>는 기본적으로 생자와 망자, 이승과 저승 사이의 소통 가능성과 배타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편에서는 가부장적 상징 질서 내에서 여성을 향한 물리적‧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보여주는 신화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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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뛰세르 지음, 김동수 역,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아미엥에서의 주장』, 솔, 1991.
조현설, 「여신의 서사와 주체의 생산」, 『민족문학사연구』18,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01.
정제호, 「<도랑선비 청정각시>에 나타난 고난의 의미와 제의적 기능」, 『고전과해석』23,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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