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선비 청정각시>와 열(烈) 이데올로기
"나와 같이 살려거든 집에 돌아가서 석자 세치 명주실로 오대조(五代祖)가 심은 노가지 향나무에 한 끝을 걸고 한 끝은 네 목에 걸고 죽어라. 죽어 저승에서라야 우리 둘이 잘 살리라.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재물을 탐하고 백성을 죽인 죄로 이렇게 되었소."
낭자는 비로소 죽는 법을 깨달아 크게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 가르친 대로 목을 잘라 자결하였다.
김근성 구연, 손진태 조사, <도랑선배‧청정각시>(1926)
청정각시의 아버지는 화덕중군이고 어머니는 구토부인이었다.
청정각시는 도랑선비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도랑선비는 성대한 혼수와 많은 하인을 대동하고 청정각시의 집에 왔는데, 대문을 넘을 때 무엇인가가 뒤통수를 잡아 끄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결혼식이 진행되면서 도랑선비는 계속 누워있었다. 첫날 밤 정신이 혼미한 도랑선비를 보고 청정각시의 부모가 놀라 큰 무당을 불러 점을 보니, 혼수에 부정이 타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혼수를 모두 불태웠지만 여전히 도랑선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도랑선비는 집에 돌아가서 숨을 거두었다.
청정각시는 도랑선비의 집에 가서 남편의 시체를 매장하고 밤낮으로 울었다. 그 곡성을 듣고 옥황상제는 황금산의 성인(聖人)을 내려보냈다. 황금산 성인은 중의 모습이 되어서 청정각시에게 동냥을 구했다. 청정각시는 동냥은 원하는 대로 드릴 테니 도랑선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황금산 성인은 됫박을 주며 여기에 정화수를 길어 첫날밤의 이부자리를 펴고 첫날밤 입던 옷을 입고 혼자서 삼일간 기도를 하라고 했다. 청정각시가 그대로 하자 도랑선비의 모습이 나타났다. 청정각시가 도랑선비의 손을 잡자 도랑선비는 바로 사라졌다.
청정각시가 다시 황금산 성인에게 도랑선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황금상 성인은 머리카락을 뽑아서 노끈을 꼬아 만들고 안내산 금상절에 가서 한 끝은 법당에, 또 한 끝은 공중에 걸라고 했다. 그리고 손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그 노끈을 꿰어 위아래로 훑되 절대로 아프다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했다. 청정각시가 머리카락을 뽑아 꼬아만든 매듭을 구멍을 뚫은 손바닥에 꿰어서 훑자 도랑선비가 나타났다. 청정각시가 도랑선비를 껴안자 도랑선비는 다시 사라졌다.
청정각시가 다시 황금산 성인에게 도랑선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황금상 성인은 참깨 닷 말, 들깨 닷 말, 아주까리 닷 말로 기름을 짜서 손에 적셔 찍어 말리고, 열 손가락에 불을 붙여 그 불로 발원을 하라고 했다. 청정각시가 그렇게 손가락에 불을 붙이자 도랑선비가 나타났다. 청정각시가 도랑선비를 안자 도랑선비는 또 사라졌다.
청정각시가 다시 황금산 성인에게 도랑선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황금상 성인은 안내산 금상절의 험난한 고갯길을 맨손으로 닦으라고 했다. 청정각시는 타고 남은 손가락으로 풀을 뽑고 돌을 치우며 길을 닦기 시작했고,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때 피로로 인해 혼절했다. 청정각시가 정신을 차리자, 도랑선비가 반대편에서 길을 닦으며 오고 있었다. 청정각시는 도랑선비를 껴안았다. 이번에는 도랑선비가 사라지지 않았다. 둘은 손을 마주잡고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그때 위태위태한 다리가 있었는데, 도랑선비는 청정각시한테 먼저 건너라고 했다. 청정각시가 다리를 건너고 도랑선비가 다리를 건널 차례가 되자,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 도랑선비를 휘감아 다리 아래 물속으로 떨어뜨렸다. 도랑선비는 물속에서 청정각시에게 소리쳤다. 자신과 같이 살려면 오대조가 심은 노가지 향나무에 명주실을 걸어 자결을 하라고...
청정각시는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 자결했다. 청정각시는 저승에 가서 당당하게 도랑선비를 만나러 왔노라 소리쳤다. 도랑선비는 저승 서당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둘은 크게 기뻐하여 저승에서 무한한 즐거움을 맞았다.
뒤에 둘은 인간 세상에 환생하여 신으로 모셔졌다. 인간 세상에서 죽은 망령을 위하는 제사를 올릴 때 양쪽의 두 상은 도랑선비와 청정각시 부부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절간에서 제사를 올릴 때 첫상은 부처님이, 그 뒤의 상은 도랑선비와 청정각시가 젯상을 받도록 법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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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설, 「여신의 서사와 주체의 생산」, 『민족문학사연구』18,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01.
정제호, 「<도랑선비 청정각시>에 나타난 고난의 의미와 제의적 기능」, 『고전과해석』23,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