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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뒷면 Sep 30. 2023

슈퍼우먼 대신 체육관

슈퍼우먼이 되려다 평범한 여자임을 깨닫고 사표를 쓰게 된다.  어디에선가 이것을 읽고 달았다. 나도 비슷하게 돼버렸다는 걸, 사표는 쓰지 못하고 슈퍼우먼 되기를 포기했다. 슈퍼우먼이 되려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미련이 남았다. 일도 잘하고 육아와 살림도 잘하는 여자가 되려고 했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남편에게도 인정받고 싶었다. 대단한 여자라고 주목받고 박수받는 장면을 기대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근원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모든 역할에 충실하려고 나를 들볶았다. 희생과 인내쯤이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을 거뜬히 해낼 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잘려는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목표에 나 옭아맨 것이 문제였다. 양손에 모든 것을 쥐고 놓지 않으려 나를 채찍질했다. 본연의 나를 꾹꾹 눌러 담아서 근사한 워킹맘으로 꾸미려 했다. 일하는 사람으로 엄마로 최선을 다했지만 지가고 있었다. 잘하려고만 했던 마음은 나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엄마다워야 한다는 규율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팽팽한 상태로 긴장하는 일이 많았다. 갑자기 끊어진 몸의 균형은 마음까지 흔들고 뿌옇게 만들었다.


무조건 역할에 몰입하는 습관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엄마라는 이유로 집과 직장을 수행하듯 오가며 메마르게 사는 일상을 기로 했다. 불안감과 죄책감에 얽매여 스스로를 검열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부족함을 지우려 애쓰지 말아야겠다고 짐했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몸을 쓰면서 땀을 흘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잃어버린 내 몫의 시간을 운동으로 되찾기로 했다.


주짓수를 시작한 지 100일이 지났다. 머리에서부터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숨이 턱까지 차고 심장소리가 귓가를 두드린다. 전신이 불에 댄 것처럼 뜨거워진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넣어둔 단백질 셰이크를 조금씩 마신다. 목으로 넘어가는 음료의 시원함에 정수리까지 쨍하게 맑아진다.


주짓수 수련이 있는 날은 식구들 저녁을 챙겨놓는다. 운동하는 날에도 저녁 상차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엌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 저녁을 서둘러 준비하고 간단하게 배를 채운다. 도복과 텀블러를 담아둔 운동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퇴근하고 집을 나서는 엄마의 모습이 낯선 막내가 눈물을 글썽인다. 어린이집 등원 할 때도 보이지 않는 울음이다. 불편한 마음을 다잡고 환한 표정으로 아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운동을 하는 엄마의 일상이 익숙해진 아이는 이제 울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매정하고 이기적인 여펜네 같으니라고 꼭 저렇게까지 애를 울리면서 돈 들여서 운동을 해야 하나? 그 나이에 무슨 주짓수를 배운다고? 눈 흘기는 소리가 느껴다. 뒤통수가 뜨거웠지만 모르는 척 체육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나를 위해 이 정도쯤은 욕먹고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엄마의 부채감으로 양보만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누리는 저녁을 나도 누릴 자격이 있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체육관을 나서는 일에 이런 단단한 다짐이 필요할 줄은 몰랐다.


"도대체 무슨 동작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스파링 도중 상대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공격도 수비도 아닌 어정쩡하게 우물쭈물 대는 내가 답답했던 이다. 머쓱한 표정을 숨겼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그 말이 맴돌았다. 스파링 순간의 장면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내뱉지 못한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이불킥을 했다. 내향적이고 소심해서 부탁도 거절도 자기주장도 하지 못했다. 세상의 규칙에 순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았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에 분노가 많았다. 오랜 시간 착한 아이로 길들여져서 마음을 억누르는데 익숙다. 공격력도 없고 방어도 못하니 만만하게 보고 휘두르려는 사람들도 있다. 날카롭고 큰 목소리로 매섭고 사나운 표정으로 압도하려고 들었다. 싸움이 무섭고 관계가 깨지는 게 싫어갈등을 다.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 눈치 보는 일에 익숙했다. 그렇게 점점 더 나를 축소하고 은폐하는데 능숙해졌다. 평화주의자인 척 하지만 실제는 평화롭게 살려고 애쓰는데 지쳐 있었다. 무례한 상대에게는 한마디 못하고 뒤돌아서 이불 킥하는 일도 지겨웠다. 그래서 대놓고 싸울 수 있고 망가질 수 있는 주짓수 도장을 선택한 건지도 모른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엉겨 붙어서 싸우는 일이,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소속도 제각각인 이들이 뒤섞여 서로 한 몸과 다름없이 밀착되어 숨과 체온을 나누는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다. 살면서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고 싸움을 회피한 내가 싸울 일을 찾아 도장에 발을 들였다. 여전히 대놓고 상대의 몸을 제압하고 덤벼드는 일이 서툴다. 하지만 한 번도 느끼지 못한 희열과 알지 못했던 세계에 들어섰다는 설렘에 팍팍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서 이불킥을 하며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는 멍청한 짓을 안 해도 되었다.


공격은 고사하고 나를 덮쳐오는 상대의 압박을 피해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방어하고 도망치려고 온몸을 쓰는 초보는 금세 지친다. 힘을 조절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공간을 비집고 나가려고 숨을 헐떡거리며 몸을 옆으로 비튼다. 내 몸하나 가누지 못하고 파닥이는 모양새가 우스워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버티는 것이 싸움의 절반이라는 걸 온몸으로 배운다


이곳에서는 마음껏 뒹구르고 뒤집히고 누르고 꺾이고 넘어서도 아무도 서로를 해치지 않다. 이겨보겠다는 다짐만 가지고 이를 앙다물고 맹렬하게 덤벼들어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다. 무모한 도전 무수한 굴욕으로 채워지는 것을 격려다. 얌전하지 않아도 예쁘지 않아도 예의 바르지 않아도 내숭 떨지 않아도 착하지 않아도 반듯하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는 엄마인지 아이가 몇인지 남편은 뭐하는지 묻지 않았다. 패배로 쌓여가는 굴욕이 아무렇지 않은 곳이 주짓수 도장이었다. 패가 무한히 허용되다. 마음껏 망가지고 꺾이라고 멍석을 펼쳐준 곳에서 내 역할이 지워진 곳에서 자유로움을 맛보았다. 


엉성하고 서툴기 짝이 없지만 사일 이상은 체육관에 간다. 남편이 막내를 맡아주거나 막내를 재우고 가기도 한다. 불편한 마음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이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한 시간 동안 흠뻑 땀을 흘리고 돌아가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면 감사함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물이 정수리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이토록 간결하고 명확한 상쾌함이라니 흠뻑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매일의 혹독한 수련은 나를 탄탄하게 해 주었다. 나의 한계와 부족함을 몸으로 깨우다. 그것을 모르는 상태의 자존감은 허상이었다. 힘들고 거친 수련 일상을 버티는 자신감이 되었다. 움직인 만큼 땀이 나고 몸이 달라졌. 생각이 많고 소란한 마음이 단순해졌다.


일하는 엄마로 사는 삶이 분주해질수록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애쓸수록 내 세계가 비좁아졌다. 어떤 일들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채로 일어난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선택한 것이 아니듯 엄마가 되는 것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선택하지도 않은 어떤 세계에 갇힌 기분이었다. 일하는 엄마로 사는 강요된 인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슈퍼우먼이 아니면 사표를 써야 하는 현실, 끝끝내 납득이 가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발버둥 치듯 체육관에서 뒹굴었다.


튼튼하고 굵은 나무 같은 마음 내 것의 언어를 되찾고 싶다. 미처 꺼내지 못 말과 감정을 입에 머금곱씹으며 표현할 만한 단어를 찾다. 몸을 움직일 때 뭉뚱그려진 감정이 명확해졌다. 체육관을 오가는 일이 미약한 삶에 한 버팀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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