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뒷면 Feb 23. 2024

분노는 나의 힘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이마에 입을 맞추고 운동가방을 챙긴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신나는 음악에 발걸음을 맞춘다. 온종일 미성숙하고 오만한 엘리트들 사이에서 정체 모를 굴욕감에 무기력해진다. 아이들의 의식주와 살림살이에 종종거리느라 강퍅해진다. 쓸데없이 비장해지고 신경질이 늘어난다. 반복되는 쳇바퀴에 짓눌린 의식 없는 하루, 성실하게 집과 직장을 오가는 익숙한 하루, 나에 대한 이해도 만족도 고민도 없는 관성에 이끌린 하루, 무엇하나 새로울 것이 없어서 내 선택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을 가까스로 쪼개어 낸다. 몸싸움으로 나를 돌보는 시간, 작은 행복을 찾는다.


온갖 관절기를 동원하여 상대를 짓누르는 주짓수라는 격투기, 아줌마의 무모한 용맹함은 성별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 건장한 남자들과 가볍고 빠른 젊은 친구들, 노련한 유색벨트 사이에서 서슴없이 대련을 청한다. 젊은 남성 수련생도 수줍어하며 피하지 않는다. 민망하고 멋쩍을 일도 개의치 않는다. 몸을 부딪히며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거칠게 오르내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점잖은 체하며 배려와 예의로 숨긴 경멸, 너그러운 척하며 숨긴 분노가 땀방울과 함께 뚝뚝 떨어진다. 세상의 수많은 규범 속에 가까스로 감추어 두었던 공격성이 되살아난다. 나 자신과 타인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말지 못했던 것들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온갖 꾸밈과 거짓으로 가장된 관계와 현실감각을 망가트리는 말들에서 벗어난다. 강렬하게 공격하고 교묘하게 방어하면서 상대를 괴롭힐 방법을 다. 누가 더 서로를 힘들고 지치게 하는지 겨룬다. 상대가 힘들어할수록 쩔쩔맬수록 재밌어진다. 내가 부리는 수작이 쉽게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상대도 모든 수단을 동원여 훼방을 놓는다. 엎치락뒤치락, 공격과 방어의 위치가 뒤바뀌기를 반복한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후끈 붉어진 볼에 차가운 바람이 닿는다. 내려앉은 밤공기의 청량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다 느닷없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단장한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살아생전에 보지 못한 곱고 귀한 삼베에 둘러싸인 할머니가 아름다워 낯설었다. 가족들 얼굴 드리운 슬픔이 모두 가짜 같아 보였다. 울음소리마저도 슬픔을 시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가식적인 얼굴에 삼베 조각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죽고 나서 이런 호사가 무슨 소용이냐고 살아 아프고 힘들 때는 모두 나 몰라라 하다가 이제 와서 값비싼 삼베로 포장한다고 당신들의 거짓을 감출  있겠냐고 이 구역질 나는 장례 쇼를 집어치우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는 어색하고 역겨움이 솟구치는 공기 속에서 숨죽여 울다. 입관식이 끝나자마자 백일이 지난 막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차갑게 식어버린 할머니 곁에서 가족을 원망했고 뜨겁게 숨 쉬는 아이 곁에서 가족을 그리워했다. 짧은 시간 조금 떨어진 공간을 사이에 두고 죽음과 생명을 오갔다.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할머니 곁을 지킨 나는 내내 무심했던 가족들에게 분노했다.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 분명했지만 연배가 많은 어른이 아버지의 형제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었던 말이 묻혀서 분노가 되고 원망이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흘리는 그들의 눈물을 보고는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뜨거운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그 불길이 너무 뜨거워서 어쩌지 못했다. 그 감정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분노 시간을 따라 사그라지만 여전히 남은 불씨가 나를 체육관으로 이끌었다. 내 안에 켜켜이 쌓아놓은 분노, 할머니의 죽음을 방관했던 가족과 아빠의 죽음을 없었던 일로 덮으려 했던 엄마에 대한 분노가 나를 미친 듯이 싸움에 달려들게 했다.


응분의 움직임이 허용되는 5분의 스파링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느끼는 대로 몸으로 표현하고 분출해도 된다는 것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분노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몸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를 성나게 하는 모든 일들이 재빠르게 사라져 갔다. 미친 듯이 달려들수록 도망치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수많은 겨루기 동작을 반복할수록 가벼워졌다. 지금의 싸움이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싸워도 안전한 세계, 싸울수록 강해질 수 있는 세계라니 , 생소했지만 명쾌했고 투박했지만 다.


힘껏 몸을 쓰고 땀을 흘리복잡했던 일상 깔끔해진다. 한 시간 동안 거칠게 부딪힌 몸은 뒤척임 없는 나른한 안식에 이른다. 육체적인 고통은 마음에 안식을 준다. 만고만한 을 성큼성큼 걸어갈 힘을 오늘의 체육관에서 얻는다.  더 하고 단순하게 살게 한다.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


사진출처:pintere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