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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홈 로스팅에 화재경보가 울렸다.

아~ 망신스러운 나의 홈 로스팅이여

제가 마신 최고의 커피는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대충 프라이팬에 볶아 보리차처럼 끓인 커피예요.

오래전 티브이에서  커피 전문가의 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현지에 갈 순 없지만 그 커피는 마셔보고 싶었다.



드립 커피를 마신 지도 6년이 지났다. 첨엔 싱싱한 원두를 갈아 마시는 것 기쁨에, 그 고소한 커피맛에 늘 고맙고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마움은 줄어들어갔다. 킬로 단위 원두를 구입해 먹다 보니 갓포장을 풀었을 때만 그 고소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소단위 주문으로 구매하기엔 소비량이 많다 보니 비용이 부담되어 망설여졌다.


이쯤 되면 원두 로스팅으로 넘어가야겠다 싶었다. 그 전에도 한번 맘먹은 적이 있었는데, 경험자의 말을 빌리면 그냥 사 먹는데 정신 건강에 나을 것 같았다. 직접 로스팅한다고 원두 비용이 절약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 먹는 맛만 못하다 하였다. 무엇보다 원두 껍질에서 생기는 셰프(껍질)가 온 집안을 뒤덮을 거라 하였다.


그래도 홈 로스팅이 하고 싶어 졌다. 갓 볶은 원두를 추출할 때만 볼 수 있는 두툼한 커피 빵도 보고 싶고, 고소한 커피맛도 늘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귀찮음을 넘어선 뭔가 재미난 일이 기다릴 것 같았다.

직접 볶은 원두로 내린 커피빵. 비록 생각보단 덜 부풀었지만

첨엔 프라이팬 로스팅을 시도했다. 첨부터 로스팅기를 사면 그 기계의 유용성을 잘 느낄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또한 나름 프라이팬에 굽는 일은 자신이 있었다. 비록 프라이팬에 두툼한 고기를 수준이었지만.


프라이팬 로스팅은 쉽지 않았다. 비로소 왜 전문가들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바닥 열만으론 볼록한 원두에 골고루 열을 가하기가 쉽지 않았다. 2차 팝핑음까지 들어야 한다는데, 한 번의 팝핑음 마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체프도 날리지 않았다. 열을 더 올리자니 원두가 다 탈 것 같았고, 그냥 볶자니 제대로 로스팅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결론은 그냥 탄 맛의 밍밍한 커피맛만 느껴졌다.

원두의 납작한 부분은 탄 듯 구워졌고, 볼록한 부분은 덜 익었다.

직화 로스팅 기계를 샀다. 통 속에 온도도 일정히 유지되고, 팝핑음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2차 팝핑을 마친 후 선풍기를 활용해 급속 냉각을 시켰다.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두 번째 홈 로스팅이었다. 로스팅 기계 덕에 제대로 볶을 순 있었지만, 그 뒤처리가 상당했다. 체프는 온 집안을 날아다녔고, 그걸 치우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번 원두를 볶는데 드는 품에 비해 수확은 적었다. 그래서 한번 로스팅할 때 두 차례 원두를 볶기로 했다. 그러면 총 400g의 원두는 얻을 수 있으니 일주일 정돈 버틸 수 있었다.

로스팅은 갈색부분으로 표시된 일정 온도에 달하지 못하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로스팅 정도에 따라 같은 원두의 색이 확연히 다르다.

첫 번째 로스팅은 조금 약하게 볶아진 듯했다. 2차 팝핑음까지 들었지만, 그것이 1차 팝핑음이 이어진 건지 2차의 시작인지 확실하지 않아서이다. 두 번째 로스팅에선 조금 더 볶아보기로 했다. 약 1분 정도 더 볶았는데 연기가 제법 나왔다. 환기를 위해 창과 베란다 문도 활짝 열었건만 연기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가스버너의 불을 껐는데도 연기는 계속 발생했다.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 이 정도 연기로 경보기가 반응하진 않겠지. 한참 연기가 빠지고 겨우 한숨을 내쉴 때쯤 초인종이 울렸다. 관리사무소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며 확인차 방문한 것이다.


아뿔싸, 화재경보기가 울렸었구나. 경보음 같은 건 듣지 못했었는데 어디서 울린 거지? 식탁 위 화재경보기는 여전히 초록불인데.

알고 보니 거실에 화재경보기가 작동했었다. 로스팅 한 곳과는 떨어져 있었는데 저기에 연기가 많이 몰렸었나 보다. 방문한 직원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다시는 집에서 로스팅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여전히 로스팅의 길은 쉽지 않다. 이제는 야외에서만 로스팅을 하는데 매번 로스팅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로스팅으로 얻은 원두의 맛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불 세기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원두의 맛도 매력적이고, 혼자만 느끼는 깊고 고소한 원두의 맛도 매력적이다. 번거로움은 많지만 충분히 상쇄시킬만한 매력이다. 이래서 커피를 악마의 열매라 불렀구나 싶기도 하다.


p.s 원두에서 발생하는 연기는 요리할 때 발생하는 연기와는 종류가 다르다. 보통 고기를 구울 때 발생하는 연기(지방)는 무거워 크게 확산되지 않는데, 원두를 태우면서 나오는 연기는 가볍고 잘 퍼진다. 그리고 정말 순식간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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