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할 수 없는 사람
정착할 수 없는 사람
‘정착’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저는 항상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했습니다.
깊고 우직하게 결코 가볍지 않게 탄탄한 뿌리와 줄기를 가진 사람을 늘 동경했습니다.
살면서 ‘임시’라는 것을 너무 많아 가져 본 탓이었을까요?
어렸을 때는 사주에 역마살이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올라 제 뜻대로 살아내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굳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부러워요.
그거 기억하시나요? 재미로 본 사주 거 기서에서 저에게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던 것, 직업도 공부도 흥미도
너무 많은 것을 저질러버려 얕은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 것 기억하시나요?
그 말이 왜 이리 억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를 깊게 좀 파고들라며 타박하던 점쟁이.
저는 왜 깊어지는 것이 겁이 날까요? ‘임시'라는 단어 뒤에 숨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임시라는 말을 붙이고 딱 1년만 살 것을 계획했지만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정이 들었지만 정과 묵직함은 다른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공간임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저는 이곳을 떠납니다. 드디어 떠나지만 알 수 없어요. 제가 이곳을 떠나도 될까요?
그리고 그곳에서는 정착을 할 수 있을까요? 회사가 사옥을 옮깁니다.
짓고 있던 사옥이 완공되고, 따라서 저는 집을 옮겨야 합니다. 제가 그래도 되는 걸까요?
H 씨 주변에서 멀어지는 것이 겁이 납니다. 서울의 동쪽과 서쪽 가장 끝단으로 떨어진다는 게
기분이 이상합니다. 무엇보다. 임시로 점철되어 남들보다 더 짤막하고 자잘한 제 기록에
이 회사는 얼마나 긴 선을 남길까요? 오래 있고 싶지만 제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떡하죠?
노래 가사에 ‘머물고 싶던 사람들’ 이 구절 우리가 자주 부르는 그 노래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H 씨는 제가 머물고 싶은 사람이에요. 머물고 싶어요. 오래오래 재밌고 싶어요.
가볍지만 단단한 H 씨 당신은 정착을 했다고 느끼나요? 저는 아직도 이방인 같습니다.
녹아서 사라지고 싶어요.
* 이제 곧 봄이 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계절의 냄새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어요.
봄부터 저는 여름 냄새를 맡습니다. 봄 냄새는 여름향기의 진득함을 한 꺼풀 벗겨낸 향기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지만 봄 향기가 좋습니다. 따뜻하고 아련한 향기가 납니다.
아! 아닙니다. 정정합니다. 지금 보일러를 보니 집 온도가 27도군요 봄 향기가 아니고 그냥 방이 따뜻해서 그렇게 느꼈나 봐요. 춥네요 아직 겨울입니다.
그럼 H 씨 감기가 빨리 낫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