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십 대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제1장부터 제6장으로 구성된 소제목들은 “종장의 시작”에서 이야기의 첫 장이 시작되어 “시작의 종장”으로 끝났다. 그 옛날의 소설책은 이제 티끌이 되어 흩어졌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으나 위대한 문학작품의 유산은 마음밭에 묻어둔 보물처럼 내 안에 남았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The Pianist, Le Pianiste, 2002>는 전쟁의 비극 속에 살아남은 한 사람의 예술가를 보여준다. 이 전쟁 같은 팬데믹의 혼란 속에 마지막 한 톨까지 다 소모되고 말 것 같은 지난한 인생이지만 최후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글이라도 쓰겠다는 심정으로 이 아침을 열고 있다.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팬데믹은 이제 종장의 시작인가 또 다른 시작의 종장인가. 알파와 오메가는 성경책에서만 배웠는데 그리스 문자의 열다섯째 자모를 온 세계인이 알게 될 줄이야.
천만 서울시민 중에 3,991명(01.28. 00:00 기준)이 단 하루 만에 확진자로 분류되는 대략 1/2500의 확률을 피해가며 일상이 보전되고 있는 운 좋은 시민으로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면서 학력이든 경제력이든 뭐든 0.04 퍼센트의 상위집단에 속해본 적 없는 평범한 인생이었으니 이 전쟁 같은 감염병의 시대에도 내겐 해당사항 없을 거라는 소시민적 자아에 위로받으며 견디고 있다.
아이가 매일 저녁 6시에 본방사수해 온 EBS1 <생방송 뭐든지 해결단> 방송이 내부 사정으로 결방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치는 생각도 급격한 오미크론 확산의 여파인가 싶었다.
직장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고 종종 있어온 일이었지만, 오미크론으로 변경된 지침을 적용하는 문제로 현장에 혼선이 있었고 역학조사관도 적시에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으로 어수선한 일주일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직원들에게 일정 부분 불편을 주게 되었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국이라 일단 협조하고 나중에 따지기로 했다. 선 협조, 후 저항. 이게 뭐라고 몰아치듯 사람을 경황없게 만드는 탓에 모든 역학조사와 음성 판정으로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니 그제야 깨어나는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들.
팬데믹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기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아득한 마음이 들었다. 제도는 어리석고 난무하는 온갖 조처들은 무능하기만 한데, 인간이라도 지혜로워야 이 난국을 살아남을 거란 생각에 관리자를 찾아갔다.
직원으로서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일단 협조했으니 이번 확진자 발생과 관련한 불합리한 조처에 대해 관리자에게 컴플레인 후 해명을 요구했다. 이 재난 같은 시국에 사용자의 인색한 태도(kkondae)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지였다. 한동안 유행했던 세대론적 접근도 식상한 논리 같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온도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관리자가 진솔한 설명 후 사과했다. 고마웠고 그도 참 힘든 위치에 있는 걸 알기에 이해하는 복잡한 마음 한편으로 이 전쟁 같은 난국에 생존을 위한 나의 심리적인 방어선도 지켜야 했으니.
어려운 시기에 마음까지 상하는 일 없기를 바라고 직원들도 협조하는 만큼 충분히 배려받고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느지막한 출근이 가능했던 겨울 어느 날인가 눈 내리던 덕수궁 돌담길을 출근길 한컷으로 담았던 적이 있다.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온다”던 음악가의 광화문 연가는 세종대로를 오가던 출퇴근 연가로 내겐 남아있다. 사랑노래 만큼이나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도 감미롭고 호소력 짙은 인생의 발라드, 직장인의 연가戀歌.
서울시 중구 정동의 정동제일교회 건너편에는 이영훈의 노래비가 있다고 한다.
"영훈 씨! 이제! 우리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영훈 씨의 음악들과 영훈 씨를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당신의 노래비를 세웁니다.
영훈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2009. 2. 14."
@출처: 나무위키 이영훈(음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