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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Mar 04. 2021

나는 느린 아이였고,
엄마는 예민한 아이였다.

서문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대입정책은 수시보다 정시 위주였고, 딱 한 곳 넣은 수시는 말아먹었다. 가, 나, 다군 3번의 기회가 있는 정시는 모두 서울로 지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집을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도 기숙사 생활을 했다. 2인 1실로 생활하는 기숙사 생활 덕분에 고3 입시 준비가 재밌다고 기억될 만큼 즐거웠다. 그래서 기어코 대학교는 서울로 왔다.




지금까지 '가족'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가족 구성은 곰 같은 아빠. 여우 같은 엄마, 아들 하나 딸 하나다. 딱 대한민국에서 가족이라고 하면 그릴 수 있는 그런 전형적인 집안이었다. 어릴 적 화학공단 3교대를 다니던 아빠 덕분에 부유했다. 마당 딸린 100평대 주택에 살았다. 백화점에 가서 VIP로 쇼핑을 했었다. 친척들은 돈이 부족할 때 우리 집에 와서 먹고, 아이를 맡기고, 돈을 빌려갔다. 내 교육비로 만만찮은 돈이 들어갔다. 서울에서 유명한 학원이 지방 분점을 내어 시험을 치면서까지 들어갔고, 지인을 통해 유명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 예체능 일대일 과외를 받았다. 그래도 돈이 모이고 괜찮던 시절이었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이더라도.

엄마가 아이들 교육과 종교에 집착하면서 생활을 하더라도.


첫째가 여자아이여서, 그래서 그렇게 싫다고 하는 엄마에게 한 번 더 아이를 갖자고 해서 기어코 아들을 얻었다. 중간에 유산이 있었다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그 아들은 엄마를 똑 닮아 예민했다. 엄마 몸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세상 떠나가라 울어대는 그 정도. 엄마는 늘 집안일을 했다. 그릇과 수건을 삶았다. 집안 물건에는 먼지가 없었다. 이불은 매일매일 햇볕에 널어 말린 다음 각을 잡아두었다. 화장실은 언제나 물기를 닦아 두었다. 살면서 집 안에서 곰팡이와 벌레를 본 적이 없었다. 밥은 언제나 갓 차려진 따뜻한 밥을 먹였고, 아빠가 퇴근할 시간에 딱 맞춰 모든 것이 식탁이 차려질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을 좋아했다. 잠을 잘 못 자서 방 안은 늘 어둡게. 전화벨 소리마저 거슬릴 때는 선을 뽑아두었다. 


엄마는 그런 예민한 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둔하고 느린 아이였다. 병원에서 갓 태어난 신생아가 울지 않아서 엉덩이를 때려야 그제야 응애 한 마디 울고 말았단다. 집에 와서도 잠만 자느라 모유 달라고 울지도 않아서 자는 아이를 깨워 먹였다고. 동네 어르신들은 언제 애를 낳았는데 집에서 애 우는 소리가 안 들리냐며. 그래서 몇몇 짓궂은 어른들이 날 데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 빨리한다고 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왜 그렇게 굼뜨냐고 성화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어린 시절이었다. 달리기를 하면 언제나 꼴등이었다. 그게 나의 최대 속도였는데. 모두들 내 행동과 말이 느리다고 웃었다. 


나는 그렇게 느린 아이였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졸업을 하려면 꼭 들어야 하는 과목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부모역할과 부모되기교육'.

초등학교 시절부터 결혼은 물론 자식 생각도 없는 사람이건만 이 과목을 꼭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 수업을 들으면서 엄마와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매 강의시간마다 충격을 받았다. 다른 전공수업은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 교양수업에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강렬하게 떠오른다. 이 수업 하나로 대학교를 잘 갔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엄마와 나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 깨달음은 내가 조금 편하게 숨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왜냐면 난 계속해서 '엄마처럼 빠릿빠릿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라는 인생고민에 대한 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 절대 엄마가 될 수 없고, 나의 느린 것은 단점만이 아니었다. 그것이 위안이 되었다. 비록 엄마는 모르지만.




몇 년 전, 한 익명 사이트에서 이와 비슷한 제목으로 짧게 단문을 토로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글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일에 지쳐서 퇴사를 했다.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어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던 차, 마지막 퇴근하는 날 또 한바탕 큰 싸움을 했다. 이대로 있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를 위해서 이 복잡한 관계를 글로 풀어본다. 


끝없이 지루하고, 승자가 없어 둘 다 상처만 받는 엄마와 딸의 싸움.

당신도 하고 있을 그 싸움에서 얼마나 힘들고 지쳤고, 어떻게 지금까지 버텨서 살아왔는지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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