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에서 가아끔 만날 수 있는 꽃게 된장국은 구수하고 맛있지만 먹기가 그리 만만한 음식은 아니다.
된장국에는 크기가 작은 꽃게의 절반 혹은 네 등분한 조각이 들어있다. 제법 통통해 보이는 게, 살이 꽉 차 보여도 막상 파보면 보기보다 먹을 게 없어서 노력 대비 결과물을 얻기 어려운 꽃게들의 내막을 한 땀 한 땀 제거해서 먹기는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서 주로는 쭈쭈바를 씹어먹듯 한 입에 털어 넣고 적당히 씹어 살을 발라먹은 뒤 버리는 일이 많다. 본격적으로 살을 파보면 숟가락 절반 정도는 나오겠지 싶지만 한 번 입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잔해들로 다시 손이 가는 일은 드물다.
몇 년 전, 초임 발령을 받고 만난 2학년 꼬꼬마들과 급식을 먹을 때 꽃게 된장국이 나온 적이 있다. 꼬마 꽃게장을 담글법한 사이즈의 아주 미니미한 꽃게가 들어있던 된장국이어서 나는 여느 때처럼 적당히 살을 발라먹고 버리던 중이었는데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자 애기가 그걸 손으로 잡고 젓가락으로 게살을 한가닥 한가닥 파먹고 있는 게 아닌가!
저거 저거.. 게 살 맛보다 젓가락 맛이 더 날 것 같은데.. 싶어서 맛있냐고 물었더니
“제가 게를 많이 좋아해서요.” 하고 씩 웃었다.
평소에 그리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그 모습이 귀엽고 대견해서 머리 한 번 쓱 하고 지나간 후 일 년에 몇 번 급식실에서 꽃게 된장국이 나올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나곤 했다.
오늘 급식시간, 모처럼 만에 꽃게 된장국이 나왔다. 애들 자리에 앉히고 내 식판 받아서 자리로 갔더니 항상 느리고 매사에 무기력하고 고집은 어마어마한 남자애가 내 앞자리.
평소에 꼭 추가 배식을 받는 학생이라 “오늘도 두 그릇 먹을 거지?” 했더니 끄덕거리며 전부 다는 아니고 이거, 저거 그리고 꽃게를 더 받아 올 거란다. 수업시간과 모둠활동 시간에 정확한 호불호를 뽐내며 열에 아홉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뚝심을 가진 만큼 급식실에서도 호불호가 정확한 모습이다.
올해는 4학년, 나는 또 절단 꽃게를 한 입에 털어 먹는데 맞은편 아이는 게를 손으로 집어서 내막 사이사이를 젓가락으로 비집는 순간 예전 그 친구가 스쳐갔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는데 지금 보니 손에 국물 안 묻히고 입으로만 먹는 방법을 몰라서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먹는 게 편해.” 하고 시범을 보였다. 호불호 강한 이 아이는 나를 가만히 보고는 게를 입으로 가져갔다가 게가 한 입에 다 들어가지 않아 나를 보고 멋쩍게 웃고는 다시 젓가락 작업을 시작한다.
나는 적당히 먹고 내려놓는데 이 애는 몸통 사이사이, 꽃게 다리 하나하나를 쪽쪽 빨아가며 먹고 두 번째 몸통을 먹기 전에 제법 큰 두 번째 꽃게 몸통을 적당한 크기로 나누려고 하다가 얼마 안 되는 꽃게살이 여기저기 파편처럼 날아간 후에 또 나를 본다. 평소 같았으면 인상 한 번 빡 쓰고 안 튀게 먹으라고 했을 텐데 오늘은 화가 나지 않아 꽃게 파편이 떨어진 식판과 식탁 위를 짚어주자 식판 위의 것은 손으로 집어먹고 식탁 위의 것은 집어서 식판 한편에 올려둔다.
된장국 안에 든 꽃게가 꼭 그 아이 같다. 꽃게를 적당히 대하는 나는 적당히 먹었고 꽃게를 열심히 대하는 그 애는 만족할 만큼 먹었다.
내가 너를, 네가 꽃게를 대하듯 면밀하고 촘촘하게 바라보았다면 너도 내게 더 사랑스러운 학생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까. 내가 좀 더 시간과 공을 들여 네가 준비할 시간을 기다려주고 너의 속도에 맞춰줄 수 있는 교사였다면 열에 아홉은 활동을 참여하지 않는 너를 조금 더 참여시킬 수 있었을까. 평소 자신의 속도로 급하지 않게 꽃게를 발라먹는 모습을 보며 시간 없으니 빨리 하라고 다그쳤던 내가 먹다 남은 꽃게만큼 작아진다.
나는 식사를 마쳤고 그 아이는 두 번째 배식을 받아왔다. 먼저 갈 테니 천천히 먹고 오라고 인사하고 일어났고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그 아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교실로 들어온다.
그래, 너는 꽃게 된장국 같은 아이구나. 나는 아마 이 생각을 내일이면 잊고 살다가 다음번 꽃게 된장국이 나올 때 너를 떠올리며 이 마음을 되짚어보겠지. 네가 꽃게 된장국 같은 선생님을 만나길 바란다. 가끔 만나는 꽃게 된장국이 반가울 때 너는 또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길 바란다. 그래,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