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서 방개는 바닷가에 가서 실컷 수영하면서 놀고 있었다.
바닷가에 오니 잠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보드라운 모래사장이 있어서 밤에 잠자리가 걱정되질 않았다. 까만 밤하늘에서 별들이 방개의 가슴에 안겨 소곤거리면 그동안 살아온 세월 속에서 이토록 행복한 시간도 있었나 싶어질 정도로 바닷가의 밤하늘에 부어진 별들이 주는 별빛과 달빛 속에 일렁거리는 파도 소리가 그의 모든 내부에서 자신은 앞으로도 배고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마저 몰려왔다.
그러나 그가 눈을 뜨고 살아가는 날들은 여전히 두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는 훨씬 많은 시절이었기에 그는 그저 밤에만 꾸는 꿈을 꿀 뿐이었다.
방개가 바닷가에서 하루하루 또 이 집 저 집을 떠돌아다니며 문전걸식하던 때였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 아침, 방개는 추위를 피하려 수박이 널려 있는 남의 집 초가로 만든 원두막을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초라한 원두막 안에 어린 아기를 업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방개는 사방이 트인 원두막에 머리라도 우선 비를 피하고자 아기를 업은 여자의 먼 귀퉁이에 엉덩이를 디밀고 앉았다.
여자가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뭐라고 중얼대며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방개를 보고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나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닌대요. 잠깐 비 비가 와서 좀 피하다 갈라구유. 이 밭주인이 셔요.”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대면서 소리를 지르자 등에 있던 아기가 힘없는 소리로 칭얼대며 울기 시작했다. 아기가 계속 칭얼대며 울자 여자는 젖은 웃옷을 열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그러자 아기는 젖을 빨다 말고 더 세차게 울었다. 여자가 방개에게 말했다.
“우리 아기 배고퍼요, 애기 배고퍼요 ”
방개는 갑자기 눈이 동그래지며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를 금세 알아들었다. 아기 엄마는 이 밭의 주인이 아닌 것이 분명했고, 머리카락은 몇 날 며칠을 감지 않았는지 떡처럼 굳어 있고, 몹시 배가 고픈지 힘도 없이 축 늘어진 아기를 업고 아주 오랜 시간을 떠돌아다닌 것 같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인임이 틀림없었다.
방개는 여자가 아기가 배가 고프다는 간절한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갑자기 사방을 둘러본다. 우선은 원두막 아래에 있는 큰 수박이 보였고, 노랗게 익은 참외가 보였다. 그렇다고 주인도 없는데 그걸 따 먹일 수는 없었다.
방개는 원두막을 나와서 거센 비를 맞으며 밭을 돌아봤다. 혹시나 꼭지가 떨어진 참외나 수박을 주어볼 요량이었다. 다행히 수박 한 덩이가
꼭지가 마른 채 줄기에서 떨어진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노란 참외도 몇 개가 줄기에서 떨어진 체 밭에서 황금 알처럼 뒹굴고 있었다.
방개는 수박과 참외를 소중한 보물처럼 안고 원두막으로 다시 올라갔다. 손으로 냅다 수박을 치니 수박이 쩍 하고 갈라지면서 달고 맛있는 향기가 진동했다. 방개는 아기 엄마에게 수박을 큰 것을 주고 자기는 작은 것을 베어 물었다. 달고 맛있는 수박이 여름의 갈증을 씻으며 아기 엄마에게도 한 끼 식사를 되었는지 아기는 금세 엄마의 젖을 빨고는 잠이 들어 원두막의 한쪽에서 새근새근 잠을 잤다. 방개는 참외를 자기는 하나도 먹지를 않고 그녀에게 다 디밀어 주었다. 노란 참외를 먹는 그녀의 눈빛이 좀 반짝인다.
“집이 어디래요”
방개가 아기 엄마에게 물었다. 여인은 엉킨 머리칼만 이리저리 만지며 배시시 웃더니 대답이 없다. 그런데 혼자서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계속 중얼댔다. 아무래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인이 분명하다.
방개는 배운 것은 없고, 사리도 제대로 분별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여자가 미친 여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개는 비가 그치기만 바라고 원두막에서 그 여자에게 등을 돌리고 먼 산을 바라봤다.
한차례의 거센 장대비가 그치고 하늘은 또 기분 좋은 사람의 얼굴처럼 갑자기 쾌청해졌다. 방개는 아기 옆에서 얇은 윗도리 사이로 젖이 다 드러나게 보이는 아기 엄마를 두고 원두막을 걸어 나왔다.
원두막 건너편에 보이는 마을에 가서 저녁을 동냥하지 않으면 오늘은 하루 종일 수박 한쪽이 전부일 것 같아서 발을 빠르게 재촉했다. 물론 어디를 가나 중골에 사는 박 권사가 준 종근락 바가지는 그대로 가지고 다녔다. 그걸 놓고 다녔다가는 밥을 얻어먹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최소한 밥 한 숟갈을 얻어먹으려 해도 밥그릇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 중에 하루다. 저녁이 다 되어 새로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었는데, 종근락 바가지에 밥이 수북하고 어느 집에서 준 오징어 삶은 것과 바다에서 잡은 소라, 멍게도 있었고, 김치도 수북하게 얻은 것이다.
방개는 음식을 남의 집 추녀 밑에서 허겁지겁 먹다가 잠시 입가를 훔치며 원두막에서 본 미친 여자가 생각났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울다 지친 아기의 잠든 얼굴도 떠올랐다. 벌써 밤이 와서 어둑한 길을 방개는 서둘러서 원두막이 있는 곳까지 가보았다. 미친 여자는 아기와 함께 그때까지 그 어두운 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기는 잠에서 깨어 엄마의 빈 젖을 빨면서 칭얼대고 있었는지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지친 듯이 누워 있었다.
“이거 봐요 이거 봐요”
“아 아 왜유”
“애기 밥 밥 줘요, 자, 이거 먹어요”
“아 쌀밥이다.”
여자가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하얀 쌀밥과 누런 보리밥이 섞어진 채 반찬이 이것저것 뒤섞인 노란 종근락 바가지에 밥과 반찬을 보자, 미친 여자는 갑자기 방개의 손에서 바가지를 날쌔게 낚아채더니 자기 입으로 허겁지겁 밥과 반찬을 손가락으로 게 눈 감추듯 먹기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먹던 여자는 그때야 생각이 났는지 밥알을 주어서 애기의 입에 넣어 줬다. 아기도 입을 오물거리며 엄마가 손가락으로 넣어 주는 밥알을 맛있게 받아먹기 시작했다.
방개와 미친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아기 이렇게 셋의 동행은 그날 그 원두막이 시작이었다. 방개는 혼자서 지금까지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일도 해주고, 잔칫집이나 초상집을 돌아다니며 끼니를 해결했지만, 갑자기 두 명의 챙겨야 할 사람이 생긴 것이다.
미친 여자는 방개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녔기에 방개는 자기 먹을 것도 때로는 힘겨운 판에 고민도 되고 귀찮기도 했지만, 뱃가죽이 등에 붙어서 울기만 하는 애기를 보고 있으면 차마 그 애기를 버리고 혼자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기가 미안했다.
방개는 그녀를 ‘엉가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녀가 애기를 부를 때면 이상하게 ‘엉가야’ 하고 불렀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아기의 호칭 내지 이름 비슷한 의미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를 골리거나 뭐라고 하면 갑자기 그 사람에게 달려들어 상대를 마구 때리는 뜻밖의 폭력성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그녀에게 쉽게 먹을 것도 주지를 않았다.
방개는 ‘엉가 엄마’를 데리고 애기와 함께 길을 떠났다. 이 마을 저 마을 셋은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묘한 일행이 되어 충청도의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어느 마을에서는 불쌍하다며 세 사람 몫의 밥을 줄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너무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또 자기들처럼 그렇게 문전걸식하는 동료들도 많다 보니 조금만 늦게 일어나도 아침밥을 세 사람이 요기할 정도로 구걸하기는 참으로 힘든 날이 많았다.
방개는 기차를 타고 도고온천역에서 내렸다. 이곳은 유황온천도 있고, 그 온천물이 소나무 숲 개천에도 흘러서 그곳에서 뜨거운 물에 목욕도 하고 온천에 나들이 온 관광객들에게 먹을 것도 얻어먹었다.
그러나 관광지에서 이 이상한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는 그들은 그곳에서 관광지를 단속하는 여관의 주인들에게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