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는 ‘엉가엄마’를 데리고 도고온천에서 십 여리 떨어진 중골에 권 대감 어르신 집으로 갔다. 권 대감이 오랜만에 온 방개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자와 애기까지 데리고 온 것을 보고 혀를 한참 동안 끌끌 대며 곰방대를 연신 대청마루에 서서 피워 댔다. 아무래도 대책이 안 서는 이 떠돌이를 어찌해야 싶어서 반기지를 않는 표정이다.
그때 권 대감보다 더 큰 부자인 면장 집에 머슴으로 살고 있던 덕구가 나타났다. 그는 방개와는 비슷한 또래였는데, 방개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다. 그의 주인은 인근의 면장으로 공무원이기도 하지만, 집에 논이 만 평이 넘는 땅이 있는 부자였고, 덕구는 그 집에 머슴을 산지가 십 년이 넘었다. 덕구는 부모가 없어 머슴을 살고 있지만, 이곳이 고향이었기 때문에 동네에 친척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는 방개와는 아주 다른 처지였다.
덕구는 머슴을 살은 대가로 일 년에 쌀 한 가마니를 받았는데, 그걸 잘 모아서 논도 다섯 마지기나 사두었지만, 아직 그도 집도 없고, 색시도 없으니 면장 집에서 머슴을 사는 처지다.
올봄에 장가를 들면 머슴을 그만둘 계산인데, 아직도 중매가 잘 들어오지 않아 장가를 못 가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데 어디서 방개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와 애기를 데리고 마을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애기 엄마는 확실히 정신이 온전한 여자가 아닌 미친 여자가 맞았다. 그런데 방개가 그 모녀에게 밥을 얻어 먹인다고 했다.
“너두 밥 얻어먹기가 힘든데, 왜 저런 미친 여자를 데리고 다녀”
“응, 아가 애기가 불쌍해서 내꺼 먹을 거 나눠 먹이는 거지”
“아휴, 네 색시도 아닌데, 왜 네가 어떻게 저 여자까지 먹인단 말여, 일찌감치 떼 버려“
“안 돼, 저 저 여자는 지금 내가 밥 안구먹이문 애기랑 굶어 주 죽을거여”
덕구는 가만히 방개를 보니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자기는 머슴 산 쇠경을 받아서 무조건 땅만 사느라 누구에게 밥 한번 후덕하게 나눠 먹어보지도 않았고, 오로지 머슴을 벗어나려면 땅을 사야 한다는 생각만 하는 자신보다는 방개가 더 착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구는 방개에게 큰마음먹고 자기도 한번 베풀어 보기로 했다. 우선 그들이 머물 공간을 마련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덕구는 온 마을과 인근 마을을 다 돌아다녀 봤다. 낮에 일하고 밤이면 그는 근처에 있는 마을들을 돌고 다니며 방개가 그 ‘엉가 엄마’라는 여자와 살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빈 집은 한 곳도 없었다. 하다 못해 돼지가 살았던 돼지 막이라도 있으면 그곳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소독이라도 해서 세 사람을 살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런 빈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돌아다니던 덕구의 눈에 갑자기 상엿집이 보였다. 그곳은 사람이 죽으면 장례 때 쓰는 상여를 두는 곳이었다. 그런데 가끔 방개처럼 거지로 돌아다니는 남자들이 잠을 자기도 했는데, 보통은 그곳을 문을 잠가 놓았기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도 아니었다. 마을에 어르신들에게 허락받아야만 쓸 수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이 아니고는 방개와 미친 여자나 다름없는 엉가 엄마와 아기를 함께 재울 곳은 그 인근에는 아무 데도 없었다. 덕구는 얼른 생각했다. 우선은 이곳에서 세 사람이 잠만 잘 수 있다면 자기가 먹을 것을 대주어야겠다고.
말이 많은 동네에서 방개에게 상엿집을 쓸 수 있게 해주려고 해도 힘든 일이긴 하다. 더구나 무슨 안 좋은 일이도 생기면 다 덕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덕구는 방개가 혼자 일 때는 동네에서 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을 때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세 사람 몫의 밥을 하루 세끼를 얻어먹으려면 오랫동안 머물 공간이 당장 필요한데, 정신까지 온전치 않은 여자를 데리고 마을에 나타난 방개에게 숙소를 제공할 사람은 동네에 아무도 없었다.
방개는 그저 떠돌이에 불과한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했기에 그에 대한 책임감은 아무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먹을 것도 부족해 하루에 한 끼 이상을 죽을 먹어야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형편이니 거지나 정신이상자를 챙길 여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상엿집은 우선은 집의 형태를 하고 있으니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는 있었다. 덕구는 그렇지 않아도 장가를 가면 초가집을 하나 지어서 머슴을 사는 면장 집에서 나와서 살려고 땅을 조금 사놨는데, 방개와 함께 아무래도 그곳에 빨리 초가집을 지어서 방개가 데리고 온 엉가엄마와 아기를 데리고 우선 장가가기 전까지는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우선 소낙비를 피하는 원두막처럼 상엿집에 먼저 세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 사람이 굶주림과 잠잘 곳 때문에 힘들 것 같았다. 가을까지는 방개와 엉가엄마가 남의 집 사랑채 토방에서 잠을 잘 수도 있지만, 겨울이 되면 방개가 늘 자던 거름더미에서 아기는 추위를 이길 재간이 없을 것이고, 그러다가는 어린 아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게 뻔했다.
“뭐 방개랑 미친 여자를 상엿집에다 재워주자고”
“넌 조용히 머슴이나 살지 왜 방개한테까지 신경을 쓰냐?”
면장 어르신이 야단이 났다. 권 대감도 덕구를 혼을 냈다.
그래도 한번 마음먹은 것은 물러서는 법이 잘 없는 덕구는 동네 어르신들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며 상엿집 열쇠를 받아 냈다. 상엿집을 들어서니 덕구도 으스스한 기분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방개는 좋아라 하고 싱글벙글 웃어댔지만, 엉가엄마는 무서운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밖에서 서성댔다.
며칠 동안 방개와 엉가엄마와 아기가 상엿집에서 자고 먹는 것은 덕구가 대준다는 소문이 나자, 동네는 시끌시끌했다. 그래도 덕구는 묵묵히 그 일을 했다. 그리고 낮에는 논에서 밭에서 일하는 덕구를 방개가 와서 도와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바쁜 농사일에 방개가 돕는 걸 본 면장 어르신이 방개네 세 사람이 먹을 것을 양푼에 수북이 담아 주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덕구와 방개는 흙을 벽돌로 만드는 일을 밤새도록 했다. 빨리 집을 지으려고 한 것이다. 덕구는 집 짓는 일을 주로 방개를 시켰다. 낮에 산에서 나무도 해오게도 하고, 그는 그걸 톱으로 잘라서 서까래를 만들 나무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덕구가 집 짓는 일을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방개와 덕구는 누구에 도움을 별로 받지 않고 자그마한 초가집을 한 채 지었다. 덕구가 신혼집으로 지으려고 했던 초가집에 방개네가 들어갔다. 방개가 엉가엄마와 결혼하거나, 사는 것은 아니지만 덕구는 그냥 방개네라고 가족처럼 불러줬다.
그러자 동네에서도 방개네라고 불렀다. 엉가엄마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라서 그런지 밥이라든지 살림은 전혀 할 줄을 몰랐다. 심지어 아기에게도 기저귀를 제대로 갈아 줄 줄도 몰랐다. 딸인 아기의 이름도 없고 그냥 ‘엉가야, 엉가야’하고 아기를 불렀다. 그래서 엉가 엄마가 된 것이다.
방안에 벽지도 바르지 않은 흙집에 방은 하나였고, 부엌도 하나고, 작은 토방이 하나 있는 집이었다.
본래 덕구가 신혼집으로 지으려고 한 집은 방이 두세 개는 되고, 마루도 큰 게 있고, 부엌과 외양간도 갖춘 좀 그럴듯한 집을 지으려 했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세 사람이 살아야 할 집을 짓다 보니 아주 초라하고 작은 초가집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덕구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한번 방개를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변치 않으려면 중요한 일을 서둘러야 했던 것이었다.
덕구는 면장 집에서 더 머슴을 살기로 하고 그 집에 사랑채에서 계속 머물러 살았다. 방개는 올겨울에도 거름더미에서 살 줄 알았는데, 기적이 일어난 것은 엉가엄마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엉가엄마를 데리고 다니면서 아기에게 밥을 얻어 먹인 것뿐인데, 친구 덕구가 너무 후한 대접을 한다고 느꼈다. 덕구의 걱정은 방개는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를 않는 떠돌이 기질이 걱정되었고, 엉가엄마라는 여자는 정신이 온전치를 못하니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까 싶어서 걱정되긴 했다. 그래도 그 모든 문제는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하는 것이지 미리 할 일은 아니었다.
첫눈이 오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방개네는 덕구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상엿집에서 석 달 가까이 비와 바람을 피하며 살고 있었다. 방개는 아기에게 지극 정성을 다해 먹을 것을 먹이고는 했다. 맛있는 걸 동네 사람들이 줄 때면 꼭 그걸 가져다가 아기에게 먹이고는 빙그레 웃고는 했다. 그러나 방개는 여자와 잠자리를 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관심도 없고, 엉가엄마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동네 사람들의 이상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이 있었지만, 그런 호기심을 막아주는 것은 덕구의 역할이 컸다.
“방개는 여자를 몰라유, 바보 잖아유,”
“아니, 그렇다고 고자인가, 어째 미친 여자라서 안 건드리나”
덕구는 그런 동네 사람들의 공연한 관심을 일축하는 말을 질렀다.
“방개가 여자를 알았으문, 얼마나 나쁜 짓을 하구 댕겼겄슈, 그런데 방개는 떠돌아다닌 지가 벌써 십년도 더 넘었다는데, 방개가 나쁜 짓 한 거는 이 동네 저 동네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잖아유. 우리 동네 와서 하는 걸 봐두 그렇구유. 어디 여자 한번 건드린 적이 없잖아유. 남의 집 토방에서 잠을 자두, 지나가는 여자 희롱 한번 잘하는 걸 못봤슈, 그리고 거름더미에서 겨울을 나두 과붓집에 몰래 들어가서 과부 겁탈한 적두 한번 없는 걸루 아는디유 지는.”
“그건 그렇다 덕구야 네 말이 맞긴 맞어.”
“그럼유, 더구나 엉가엄마는 미친 여자인디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지유, 그리구 방개가 착혀유, 엉가를 얼마나 챙기고 이뻐하는지 물러유. 맛있는 거는 다 엉가 같다 멕이는 걸유 뭐.”
“그러게 엊그제께두 글쎄 내가 제사 지내고 남은 떡을 좀 줬더니 엉가 가져다준다고 보자기에 싸달라고 해서 내가 싸주긴 했다.”
동네의 여자들은 방개와 엉가엄마의 관계를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덕구가 그들에게 초가집 한 칸을 지어서 살게 한 것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래도 방개네가 별 탈 없이 마을 끄트머리 오두막 한 칸에서 사는 것을 방해하거나 훼방을 놓거나 그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겨울이 와서 온 동네가 할 일도 없고 한가롭기만 했다. 머슴 덕구도 면장네 집에 할 일이 별로 없어서 낮에 군불을 때거나 소여 물을 쑤어서 소에게 먹이를 주는 일 외에는 가끔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장작을 패는 거 말고는 가을에 콩 튀듯이 바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주로 저녁이 되면 방개네가 있는 오두막에 주로 와서 넷이서 한 방에서 뒹굴뒹굴하는 시간이 많았다. 덕구는 방개에게 물었다.
“엉가 엄마는 워터케 하다가 저렇게 정신이 이상하게 된 거래. 혹시 들언 봤어.”
“나두 잘 물러유, 그 그냥 의 의붓아버지한티 맞구 살다가 저렇게 됐다구 하는 소리두 하구유, 또 신랑이 처 첩을 두고 때려서 집을 나왔다구두 하구유 왔다 갔다 이 이상한 소리를 하긴 하는디 어떤 소리가 맞는 건지 저두 잘 물러유.”
“어휴, 불쌍한 여자구먼. 의붓아버지 아니면 신랑이 첩을 두고 본부인인 엉가엄마를 때려서 내쫓았다는 얘기 중에 하나는 맞거나 아니면 두 개 다 맞거나 한 얘기 아닐까 싶으네.”
“엉가가 지금 두 살이지. 그럼 도대체 언제 쫓겨난 걸까, 엉가는 참 이쁘게두 생겼는디, 눈도 아주 초롱초롱하고 애기가 야무지게 생겼어야.”
“엉가 엄마두 이뻐유, 저렇게 머리를 헝클러트리고 빗지를 않아서 그 그러지유, 때도 안딱구.”
방개는 자기한테 나는 퀴퀴한 냄새는 모르는지 생전 세수도 잘 안 해서 때가 덕지덕지 낀 엉가 엄마의 떡 진 머리카락과 손톱의 까만 때, 그리고 얼굴의 꼬질꼬질한 때가 신경이 쓰일 때가 있었다. 그건 엉가에게 더러운 손으로 뭘 먹일 때였다. 그런데 그런 엉가 엄마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하면 갑자기 엉가 엄마는 방개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방개는 그렇게 몇 번 엉가 엄마에게 등짝을 맞고 나서는 다시는 그녀에게 무슨 잔소리 비슷한 거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가 가마솥에 물을 끓여서 덕구가 가져다준 함지에 따듯한 물을 가득 담아서 엉가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주곤 했다. 아기 엉가는 그런 방개에게 방긋방긋 웃으며 물속에서 물장구를 치며 좋아했다. 그러면 엉가는 쫓아와서 자기도 그 물로 얼굴을 씻거나 손을 씻고 방개에게 고맙다고 인사도 하긴 했다.
그러나 보통 때의 엉가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하고 먼 산을 보고 있거나 엉가를 업고 이곳저곳 혼자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고는 했다. 산을 가든 들을 가든 그것은 그녀가 마음대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도 저녁이 되면 방개가 있는 집으로 항상 들어오는 것은 신기할 정도로 오랫동안 정확하게 했었다.
엉가가 네 살이 되었을 때 덕구가 선을 봤다. 그동안 방개는 봄. 여름. 가을에는 마을에서 주로 사람들 농사를 거들어 주고 밥을 얻어다 엉가네 엄마와 엉가를 먹여 살렸고, 겨울에는 주로 덕구가 세 사람을 자주 먹을 거를 대 주었다. 덕구가 먹을 거를 가져오지 않는 날에는 방개가 아침부터 동네를 한 바퀴 다 돌면서 바가지에 먹을 것을 얻어다가 세 사람이 먹었다. 덕구는 선을 본 광천 처녀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박꽃같이 희고 보드라워 보이는 살결이 마음을 끌어당겼다. 덕구는 선을 보고 두 번째 보던 날 혼인 날짜를 잡아 달라고 중매쟁이에게 떼를 썼다.
색싯감을 놓칠까 봐 안달이 난 것이다. 중매쟁이는 광천 처녀에게 덕구가 논이 열 마 지기가 넘게 있다고 허풍을 떨어서 혼인을 성사하게 시켰다. 중매쟁이는 그 정도 허풍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결혼을 한 번 한 남자와 처녀를 혼인시킬 때도 초혼이라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었으니까 논이 다섯 마지기 있는 총각을 논이 열 마 지기라고 속이는 것 정도는 혼사가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할 수도 있다 생각도 했고, 광천 처녀네 친정이야말로 논 한 뙈기도 없는 가난한 집이었기에 이 정도면 큰 호사를 누릴 수 있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쳐대니 그 집에서 얼른 덕구를 사위로 달라고 달려들었다.
덕구는 급하게 혼인 날짜를 잡고 보니 집이 문제였다.
덕구는 방개와 엉가 엄마와 엉가를 내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덕구는 생각한 것이 방개가 사는 집에 사랑채를 지어서 그곳에서 자기들이 신혼을 꾸리기로 했다. 덕구가 장가를 든 날은 늦봄이 되어서다. 방개와 덕구는 사랑채를 한 칸 더 짓느라 밤이 새도록 산에서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진흙과 모래를 퍼서 흙벽돌을 만들어냈다. 한 달 만에 다행히 사랑채 한 칸 방이 만들어졌다. 방 하나와 마루가 전부였다. 부엌은 방개네가 쓰는 위채에 있는 부엌을 쓰면 되는 거였다.
덕구가 장가가는 날 덕구네 마당에서 혼례식이 이뤄졌다. 덕구도 돈을 아껴야 해서 사진관에 가서 혼인 사진만 한 장 찍고, 결혼식은 구식으로 집에서 치러야 했다. 광천 처녀는 택시를 타고 덕구네 마당에 도착했다. 달덩이보다 예쁜 덕구 색시가 마당에 나타나자 온 동네가 환해졌다. 그날부터 덕구는 날마다 구름을 타고 사는 신선처럼 행복에 겨웠다.
“덕구가 요새는 아주 신이 났구나, 장가를 들더니”
그러나 덕구의 그런 행복도 잠깐이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덕구 색시와 엉가 엄마 사이가 문제였다. 덕구 색시는 밤마다 덕구를 보채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도 아랫마을에 사는 순이 엄마랑 친구를 할라고 그 집에 좀 찾아갔더니, 날 보고 미친 여자랑 방개랑 한집에 사는 사람 볼일 없다구 하더구만유. 이 동네 인심이 그런가유, 아니문 지가 시집을 잘못 온 건가유, 말 좀 혀봐유. 내가 당신 논 다섯 마지기 인디 그걸 열 마 지기 라구 중매쟁이가 속인 거까지는 눈감고 살 수 있는디 저 사람들 때문에 난 이 동네에서 여자들하고 못 놀게 생겼슈. 나 외톨이로 여기서 어떻게 살어유.”
“무슨 소리여, 이 동네 사람들 그동안 나랑 방개네 사는 걸 잘 돌봐줬는디, 왜 당신한테 그렇게 인심 사납게 군데, 이상하네 순이 엄마가. 좀 기달려봐유, 아무래도 당신이 너무 이뻐서 질투하는 거 아니여.“
덕구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었다. 자기네가 방개네랑 산다고 남들이 무시하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밝고 어둠이 있듯이 부자와 가난뱅이가 한마을에서 같이 사는 것도 사람 사는데 당연한 이치요, 동네에는 벙어리도 있고, 소아마비도 있고, 중풍 병자도 있고, 바보 자식을 가진 이도 있었지만, 머슴에게 시집을 온 광천 처녀에게 동네 젊은 새댁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는 것은 엉가 엄마를 그다지 젊은 여자들은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 때문이란 것을 덕구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유는 엉가 엄마가 아기들 빨래를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그걸 종종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걷어다가 엉가에게 입히고는 했는데, 아무리 그걸 못하게 덕구와 광천 처녀와 하물며 방개까지 말려도 엉가 엄마는 그 짓을 멈추지를 않았다.
“아휴, 재수 없이 미친년이 동네에 들어와가지구, 남의 자식 빨래를 자꾸 훔쳐 가니 어떻게 허나, 내 새끼두 단벌 신세들인데.”
“나두 어제 또 우리 첫아들 꺼 또 엉가 엄마한테 도둑맞었슈, 방개네 집에 찾으러 가서 엉가 엄마하고 머리끄뎅이 띁으며 싸워가지고 간신히 찾어왔슈, 저 미친년 때문에 우리 자식이 빨가벗구 다니것슈.”
젊은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엉가 엄마가 애들 빨래를 다 걷어 간다고 입에 거품들을 무는 날이 자꾸만 늘어났다. 덕구의 고민도 열 고랑 고구마밭처럼 근심이 늘어났다.
결국은 동네에서 제일 사납고 뚱뚱한 뚱땡이네에게 엉가 엄마가 걸린 날 일은 터졌다.
뚱땡이네는 암소만 한 등치로 방개네를 다짜고짜 들이닥쳤다. 그러더니 무조건 엉가 엄마의 머리 챌 잡더니 마당에 끌고 나와 그 큰 덩치로 엉가 엄마를 마당에 내치며 팔과 다리로 사정없이 엉가 엄마를 때리고 짓누르고 분을 못 이긴단 듯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 옷이 워떤 옷인디 이 미친년아 그걸 빨랫줄에서 걷어가, 어쨋어, 우리 아들 옷 어쨋냐고.”
“어 어 어 물러 나나 물러유”
엉가 엄마는 손짓발짓 하며 아니라고 울고 맞기만 했다. 그래도 뚱땡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엉가 엄마를 흠씬 두들겨 팼다. 뚱땡이를 민 것은 어디선가 나타난 방개였다. 방개는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뚱땡이를 밀어붙이고 그 밑에 깔린 엉가 엄마를 꺼냈다. 암소만 한 등치로 엉가 엄마를 누르고 패는 것을 본 방개는 순식간에 달려들어 뚱땡이를 집어던지듯이 마당 한 귀퉁이로 내동댕이쳤다. 덕구 색시는 이 모든 사단은 이제 처리하기 힘든 일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 길로 친정으로 짐을 싸서 가버렸다. 덕구에게는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덕구는 뚱땡이 신랑이 다짜고짜 면장네로 찾아와 소여 물을 주던 덕구를 닦아세우며 네가 이 동네 사람이냐 아니면 방개네 가족이냐 하며 둘 중 하나를 택하든지 아니면 자기네 아들 옷이 서울에 큰아버지가 사다 준 비싼 옷이니까 똑같은 거로 열 벌은 사서 오라며 성을 내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마누라가 방개 같은 존재에게 얻어맞은 것이 분했는지 덕구에게 동네에 이상한 떠돌이와 미친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살게 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머슴 주제에 분수에 맞게 살 것이지 무슨 쓸데없는 적선을 하냐고 야단을 쳤다.
하긴 뚱땡이 신랑도 타지에서 떠돌아 들어와서 살지만 그래도 한글도 잘 알고 더하기 빼기 곱하기도 하고 나눗셈도 하는 데다 한문도 꽤 아는 농사꾼이니 학교라고는 문 앞에도 안 가본 덕구를 무시하는 건 당연했다. 덕구는 분이 났다. 자기는 방개를 친구로 생각하고 살았기에 가난하고 떠돌아다니는 방개를 도와주려고 애를 쓴 것뿐인데,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을 이렇게 몰라주는 게 너무 서럽고 못 배운 것이 더 뼈저리게 서러웠다. 그런데 그가 집에 가보니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의 아내가 친정으로 짐을 싸서 가버린 것이다.
그날 밤 덕구는 밤이 새도록 산에 가서 혼자 울었다. 방개에게 들키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울음이었고, 한없는 설움의 눈물이었다. 부모도 없이 학교라고는 국민학교를 다니다 만 것이었고, 서당에서 한문을 조금 배운 게 다였으니 한글만 깨치고 머슴만 산지 십오 년, 이제 겨우 사람답게 장가를 가고 논도 다섯 마지기에서 혼인하고 더 열심히 일해서 한 마지기를 늘려서 여섯 마지기를 이뤘는데, 이제 그 사랑스러운 아내에게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만 하나 얻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텐데, 아내가 뚱땡이네 때문에 집을 나간 것이다. 자기에게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떠난 것이다. 덕구는 밤새 부엉이처럼 울고 또 울었다. 새벽이 다 되어 면장네로 일하려고 하니 눈덩이가 수북했다. 너무 울어서 눈이 알밤처럼 부은 것이다. 그래도 덕구는 방개에게 그 얼굴을 보이지 않고 면장네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기다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일이지 다른 것은 아무 대책이 서질 않았다. 그는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상수리나무에 대고 말을 했다. 나무도 자기 속사정을 한 번쯤은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누구는 배워서 잘 살고, 누구는 못 배워서 이렇게 머슴이나 살런가 모르지만, 하늘이 무심하지 않으면 나두 언젠가는 너희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겨. 덕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베푸는 거라고 우리 큰아버지가 가르쳐줬는디, 난 그대로만 살아보려구 했지, 나보다 잘 사는 너희는 왜 방개네 한티, 엉가 엄마 한티 한 번쯤 덕을 베풀지를 못하는 겨, 그깟 애기 옷 한 벌이 뭐 대수라고, 그게 뭐 하늘이냐, 땅이냐, 애기들 조금만 크문 입지두 못하는 게 옷인디. 네 자식 중하문 엉가도 중한 애여 이것들아. 하늘이 노하것다.”
상수리나무 잎새는 파릇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덕구의 가슴은 좀 뚫렸다. 덕구는 때때로 포악하거나 인심이 사나운 사람들보다는 자연이 훨씬 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산 지는 오래되었다.
방개는 엉가 엄마가 뚱땡이 여자한테 맞은 것이 속이 상했다. 산새, 들새도 매는 안 맞구 사는데 사람이 짐승마냥 매를 맞는 걸 보니 너무나 속이 상한 것이었다. 방개는 속이 상한 것을 달래기 위해 덕구네 집을 나와서 한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덧 온양 장터였다. 장터에는 마침 장날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북적거리고 장터 한 모퉁이 마당에서 사람들이 대보름 윷놀이를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수십 명이 모여서 윷놀이를 하는데, 윷판 옆에는 종이돈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편을 짜서 내기 윷놀이를 하는 모습이다. 방개가 윷판을 기웃거리자, 그에게서 냄새가 나는 걸 느낀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그때 방개를 알아본 덕구의 친구 칠생이가 옆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