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다면.

by 권길주


서해안의 여름 바다는 저녁이 되자, 붉은 몸을 드러내며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던 뻥 쩍빨의 화가에게 새 감정의 밀어를 속삭였다. 그러나 사랑이 길다고 다 사랑이 아니고, 짧다고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니란 것을 그는 엉가엄마 윤희로 인하여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이란 이름이 그리 고상하게만 다가오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미 윤희는 겪은 일이라서 그녀는 사랑에는 관심조차 두질 않았다. 그리고 윤희는 이제는 사랑 따위에는 관심을 둘 만큼 인생에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네 남자의 틈에 끼어서 방개네 마당 평상 위에서 저녁을 먹는 윤희는 화가의 열정에 찬 눈길이 부담스러워 저녁으로 먹는 해물수제비가 소화가 되질 않았다.


방개는 뜨거운 수제비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이상하게 심란한 것은 뻥쩍빨 화가가 엉가엄마에게 보이는 오뉴월 땡볕처럼 뜨거운 눈빛 때문도 아니었다. 어딘지 이상한 엉가엄마의 움푹 파인 눈과 기운이 빠져 보이는 몸의 기운과 노르스름한 살색이 아무래도 엉가엄마가 병이 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곱게 화장을 하고 화사하게 옷을 입어서인지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녀가 심히 아파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네 남자와 저녁을 먹고 난 후, 젊은이는 철희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고, 뻥쩍뻘의 화가는 가기 싫은 발걸음을 천근만근처럼 떼면서 윤희에게 자기 집에 차를 마시러 오라고 몇 번을 간청을 하고 돌아갔다. 자기 그림에 모델이 되는 것은 큰 영광이라는 듯이 화가는 방개에게 은근히 자기를 잘 말해달라는 듯이 눈짓까지 하고는 돌아갔다.


방개는 엉가엄마와 이제는 단둘이 한 방에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할 정도로 그녀와의 거리를 두었지만, 엉가엄마 윤희는 자신의 마음을 하얀 백지장처럼 드러냈다.


"그동안 못 찾아와서 미안했어요. 순자 씨도 그렇게 보내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저는 늘 방개씨한테는 염치가 없는 여자네요."


이제 윤희는 오랫동안 의상실 여주인에 맞는 말을 하다 보니 충청도 사투리도 잘 쓰지를 않고 주로 서울 말투를 썼다.


"괜찮아유, 지는 . 다 살다 보면 잊혀지구 ........그러는거 같어유. 달도 차면 기울듯이 인생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사람은 잊혀지는 거지유."


방개는 순자를 잊기 위해 책을 읽고 시를 쓰고, 그리고 산에서 젊은 전도사와 기도를 하고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자신의 감정들이 아름답게 갈무리되길 바랐다.


"그런디, 엉가엄마 워디 아픈가유? 워째 얼굴이 안 좋아요, 기운두 없어 보이구유."


윤희는 가만히 숨을 쉬는데, 숨소리가 어딘지 가쁜 것이 자신도 방개도 느껴질 만큼 방 안의 공기는 윤희의 가쁜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창밖에 풀벌레 소리가 둘의 정적 사이에서 낮은음을 내며 속삭였지만, 둘 사이의 무거운 공기는 여전했다.


"네, 지가 좀 아퍼요. 의사 말이 살날이 이제 몇 달 안 남았다고 하네요. 반년 정도 살면 많이 산다고 해서 방개씨랑 살라고 왔어요. 절 여자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알아요. 그렇치만 염치가 정말 없지만, 저 좀 데리고 살아줘요. 여기 방개씨 집에서 살다가 죽고 싶어요. 당신 밖에는 내 몸뚱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요."


엉가엄마 윤희는 깊고 깊은 통곡을 터트렸다.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그녀는 오직 방개만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연애를 했던 젊은 약사가 사람을 치료하는 약을 제조하는 약사였지만, 그를 좋아도 했지만, 그 남자에게는 자신의 마지막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아직 어린 딸 엉가에게도 엄마의 죽음의 병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숨을 거둘 때만 딸을 부르기로 작정을 하고 윤희는 방개를 찾아온 것이다. 양장점을 하면서 번 돈으로 서울에서 얼마든지 큰 병원에 입원해 마지막까지 병원 치료를 받다가 죽을 수도 있었지만, 엉가엄마는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는 자신의 병 앞에서 오직 방개만이 자신이 의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방개를 처음 만난 날, 그 여름에 원두막에서 자신이 아장거리며 걷는 딸 엉가를 데리고 그곳에 힘없이 누워 있을 때 남의 집 참외밭을 뒤져서 수박과 참외를 따다가 노란 참외를 내주던 방개와의 첫 만남 이후, 엉가엄마 윤희는 한시도 방개를 잊고 산 적이 없었다.


그가 자기를 받아주지 않고, 귀머거리 순자 씨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어도 윤희는 방개가 자신의 울타리라는 생각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자신이 고독 때문에 젊은 약사와 연애를 해도 방개가 자기와 엉가와의 사이에서 언제나 엉가의 아버지 같고, 자신의 남편 같고, 때로는 그 이상의 혈육 같은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

방개는 허리를 깊이 숙이고 우는 엉가엄마의 어깨를 처음으로 투덕투덕거리며 다독였다. 가녀린 어깨가 바람에 이는 낙엽보다 가벼웠다.


"걱정말어유 엉가엄마, 여기서 월마든지 계셔유, 지는 엉가엄마가 남이 아녀유, 그러니께 지가 잘해주지는 못해두 윗채에 안방이 있으니께 거기서 지내유, 지는 여기 서재서 월마든지 있을 수 있구, 철희라고 하는 돌아댕기는 얘도 와 있긴 하지만 그 애도 젊은 전도사하고 살아도 되고 왔다 갔다 하문 되니께 걱정말구유, 그나 저나 병원서 그랬다구 다 죽는거는 아니니께 우선 치료약을 먹어유. 나두 여기 처음에 왔을때는 거의 죽을 뻔했어유, 위에 천공이 나서. 그런디 지금은 약도 좋은거 계속 먹구 교회에서 목사님두 기도도 해주시구 하니께 다 낳은걸유 뭘. 지금은 하나두 안아퍼유. 엉가엄마도 아프니께 교회가서 하나님한티 살려달라구 기도 좀 해봐유, 목사님이 그러시는디 아플때 회개 많이 하라구 하시데유. 그럼 깨끗하게 병이 낳을 수도 있다구. 죄를 많이 지으면 병도 오나봐유. 나나 엉가엄마나 다 죄인이지 뭘 그려유."


엉가엄마 윤희는 방개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지도 몰랐지만, 언제 저런 말을 할 정도로 교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개가 그렇게 아플 때 자기가 옆에 없었다는 것이 그리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요, 맞아요. 제가 죄인이지요. 거기가 그렇게 아프고 힘들 때는 내가 다른 남자 만나고 연애나 하고 돌아다니다가 이제 와서 뻔뻔하게 이렇게 죽게 돼서 당신을 찾아왔으니........ 맞아요, 내가 죄인 맞아요. 그리고 난 하나님도 버린 여자일지도 몰라요. 당신이 순자 씨 죽고 그렇게 힘들어할 때는 코빼기도 안보였잖아요. 사실 지는 순자 씨를 많이 질투했어요. 제가 그렇게 질투하는 마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내가 순자 씨 죽고 나서 알게 되었지요. 내가 그 여자를 질투했다는 걸요. 질투는 무서운 거지요.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그 여자가 죽은 게 슬프지를 않았으니 말이에요. 난 사실 순자 씨 시집가기 전에 봤어요."


"순자 씨를 만났데유, 왜유?"


"아니요, 만난 건 아니구 지가 몰래 순자 씨 집 근처에 가서 그 여자를 훔쳐보고 왔지요. 아주 이쁘더라구요. 얼굴이 달덩이 같던데요. 귀만 먹었다 뿐이지 참 이뻣어요. 그래서 방개씨가 그 여자를 좋아한 걸 알겠더라구요. 착해 보이고 이쁘구....... 순자 씨는 정말 아까웠죠. 그런 나쁜 중늙은이 건달한테 시집을 가기에는요. 그렇치만 내가 누굴 만나도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나 정을 무게로 달아서 잰다고 치면 어디 달아맬 저울이 없을 정도로 난 당신이 그립구 가슴 아프구 그랬어요. 이런 내 마음은 뭔지를 모르겠어요. 사랑이라고 하문 이상하구 정들었다구 하면 맞는디, 내가 어떤 좋은 걸 먹든 입든 아무리 잘난 남자를 만나든 그냥 당신이 그리웠어요. 온양에서 사는 내내요....그리구 덕구씨네서 당신과 엉가 데리고 살때가 내 평생에 제일 좋았어요."


방개는 갑자기 엉가엄마가 순자를 몰래 가서 봤다는 말에 엉가엄마가 몇 년 전 자길 찾아와서 온양에 가서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매달린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방개는 엉가엄마에게는 여자로 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그 여자가 어찌했든 순자에 대한 그리움만 남아 있는 자신의 감정이 다시 들썩이는 것이 괴로워서 서재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여름밤에 별들은 유난히 짙고 환하게 바다와 숲과 모래사장을 비추는 길을 방개는 그날 밤 또 밤새도록 걸었다.


그러나 그날 밤 뻥쩍빨에 화가는 몇 번을 방개네 집 근처를 왔다 갔다 거리며 윤희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에 잠을 이루질 못했다. 그리고 산속 공동묘지에서 기도하는 젊은이는 내일 아침 엉가엄마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또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서 산비탈을 뛰어내려와 방개네 집에 달려온 사람은 어린 철희였다. 철희는 엉가엄마윤희에게서 오랜만에 엄마의 향기를 맡았는지 연신 코를 벌름대며 그녀 곁에서 파를 다듬고, 모시조개를 씻고, 마루를 물걸레로 밀고 난리를 피웠다. 윤희도 새 삶이 시작된 듯이 잘 갖추 어지 않은 부엌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요리를 하며 철희와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했다. 그러나 그 시간까지 방개는 교회 의자에서 가만히 강대상 뒤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하나님 왜 그러신데유, 순자 씨도 데려가고 엉가엄마두 데려가문 나 너무 외로울 거 같어유. 제발 저를 한 번은 봐주셔유, 엉가엄마 살려주셔야 해유. 난 엉가가 내 딸이유. 그 애는 내 딸이나 마찬가진디 그 어린 것이 엄마밖에 없는디 벌써 데려가시문 않되지유. 그러니 저 여자를 좀 살려주셔유."


방개는 햇빛이 그을린 검은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흠뻑 젖은 눈물이 얇은 여름옷 사이로 흘러서 가슴을 다 적시도록 방개는 엉가엄마 윤희를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뻥쩍빨의 화가는 아침부터 분주히 걸어서 방개네 집 문 앞에 들이닥쳤다. 그의 어깨에는 화구통과 캔버스가 매달려 있었고, 그는 아주 멋을 부린 화가처럼 머리엔 커다란 모자를 쓰고 바지는 흰색을 광나게 차려입은 것이 어린 철희 눈에는 그렇게 우스워 보일 수가 없었다. 마루를 닦던 철희가 걸레를 들고 광대를 본 것처럼 화가를 보고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철희의 웃음소리에 윤희가 부엌에서 나오다 말고 뚱뚱한 몸집에 맞는 않게 하얀 통바지에 빨강 남방을 입은 화가를 보자, 입을 가리고 웃으며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가는 윤희가 자기를 보고 수줍어서 피하는 줄 알고 방개의 서재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속으로 이런 시골에서 나 같이 멋진 남자는 없을 거라고 착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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