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로 가는 길은 하늘도 들판도 열린 길이였다. 곡교천의 물이 마르지 않듯이 방개가 이순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점점 마르지 않은 물처럼 어디선가 흘러오고 또 흘러서 고이고 고였다.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동경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방개는 점점 그에 대한 정신과 삶과 전쟁에서의 눈부신 활략에 감복했던 것이다.
방개는 철희를 데리고 가끔은 현충사에서 철희에게 그림 데생을 하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저녁에 가끔씩은 덕구의 조카나 엉가를 데리고 김밥을 싸가지고 현충사의 잔디 마당에서 김밥을 먹기도 했다. 그는 누구와 현충사를 와도 다 의미가 있어지고, 참다운 배움의 터라는 생각에서 전시관을 둘러보고 이순신 얘기를 하고 그저 들떠 있는 아이처럼 뿌듯하고 자기가 이순신 장군의 후예라도 되는 듯이 현충사에만 오면 사기가 충전했다.
방개가 온양에 올라오고 나서 한 해가 다 되도록 방개는 오직 이순신 공부와 이순신에 대한 열기로 가득 차서 다른 것에는 도무지 관심을 가지 지를 않았다. 어느 때는 아이들이 도시락이나 밥을 지어 주는 일에도 소홀할 정도로 그는 이순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신문에 소설 연재를 마치고 기환이 3부작으로 된 책을 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행보를 서울로 옮기려고 분주한 가운데 온양을 들렸다.
"아저씨, 제가 그동안 보니까 이순신 장군에게 완전히 빠지셨던데...... 이순신 시 많이 쓰셨죠."
"음, 내가 이순신 연작시라고 붙여서 나 혼자 써보긴 했는디 한 오십여 편이 썼지. 그리고 앞으로도 난 계속 이순신에 관한 연작시를 몇 년 쓸 생각이네, 그려. 요즘은 내 맘이 전부 그분께 있다니까. "
"다행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아저씨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모든 걸 이기시고 또 이렇게 새롭게 시작하시는 걸 보니 안심이 됩니다. 그리고 온양에 사시면서 이순신 연작시를 쓰신다고 하면 시인으로써는 참 보람 있는 일이죠. 저는 요즘은 나라 걱정을 많이 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지금쯤 저에게 뭐라고 하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법대교수셨으니까요. 저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을 끄고 산지가 오래돼서 그동안 군산에서 거의 학교 이사장일에 바빴고, 소설 쓰느라 바빴는데, 이제 군산을 정리하고 서울에 올라갑니다. 신문사에서 여러 번 자리를 놓고 청탁이 왔는데, 그런 일은 제가 거절을 했고요, 저는 영화감독을 해볼 생각입니다."
"뭐라고, 영화감독을 한다고."
"네, 제가 그동안 소설을 쓰면서 틈틈이 영화공부를 좀 했습니다. 소설을 각색하는 일부터 여러 번 영화 각본을 써보기도 하고 남의 소설을 각색도 해봤는데, 더 나이가 먹기 전에 제가 직접 감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학교 이사장직을 내놨습니다. 서울에 올라 갈려고요."
"아주 멋있는 일인데, 그거 참, 근디 말여, 영화를 찍을려문 돈이 많이 든다고 하든디. 그런거는 누가 대주는건가 그럼."
"네, 제작비가 들어오기도 하구,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거겠죠. 저는 워낙 단순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만 관심이 있지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는 스타일이라서요. 하하하 아저씨 전 워낙 단순하잖아요. 좋으면 그게 내 일이고, 확실하면 누가 말려도 하고요. 그래서 아버지를 그렇게 거역을 한 건데, 어머니도 서울에서 오래 혼자 사셔서 너무 외로워하시거든요. 이제는 자식도 저 하나뿐인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고도 하고요."
"어머니랑 산다면이야 그건 아주 좋은 일이겠구먼, 그나 저나 영화를 찍으문 자네가 직접 찍는거는 아니지 촬영하는 감독이 따로 있다고 하던디."
"그렇치요, 저는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거고, 촬영감독은 따로 있지요."
"영화는 그럼 무슨 내용을 할라고."
"아저씨가 이순신 장군 시를 잘 써보세요. 제가 혹시 이순신 영화 찍을 수도 있어요."
"뭐, 뭐라고"
방개는 얼굴이 와락와락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달아올랐다. 이순신 영화를 찍는 감독이 기환이가 된다면 이 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방개는 미친 사람처럼 좋아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엉덩춤을 추다시피 이리 뛰어 보고 저리 뛰어보았다. 그 일이 금방 사실이 될 것처럼 방개는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아저씨 너무 좋아하시는데요, 사실 저는 아저씨가 현충사를 매일 가신다고 해서 그저 심심해서 산책 다니시나 했는데, 그 정도가 지나친 것 같아서 저도 그때부터 이순신 공부를 다시 했지요. 그러다가 저도 이순신 장군 그뿐께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순신을 찍으려면 제작비는 좀 많이 들 거 같기는 해요. 그래도 대본이 좋으면 언제든 영화는 가능합니다."
기환은 진지하게 방개와 대화를 더 이어갔다. 기환은 무슨 말이든 무슨 일이든 허투루 하는 법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에 말은 있는 그대로 진실이었다. 그가 한 말이 땅에 떨어지면 그것은 반드시 열매를 맺히는 일이었기에 방개도 기환이 십 년 이십 년이 걸려도 언젠가는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를 반드시 찍어낼 인물이란 것을 알았다. 방개는 온양으로 다시 올라온 것을 그날 크게 다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고, 현충사에 일 년 내내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닌 것을 스스로도 약간 자랑스러워했다.
기환과 방개가 밤이 이슥하도록 현충사 마당에서 이순신 이야기를 하며 처음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시와 소설을 이야기하니 방개도 자신이 이제는 정말 사람다운 사람으로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환이 군산에서 하던 학교 이사장직을 내놓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기환은 어느 날 간단한 짐을 싸가지고 온양으로 내려왔다. 그는 방개네 집에 머무는 것은 거절을 하고 온양에서 호텔에 짐을 풀었다.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 이순신에 대한 영화를 본격적으로 구상하고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서 온양에 내려온 것이었고, 이순신 연작시를 쓰는 방개에게 이순신에 대한 공부도 좀 더 깊이 있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기환이 머무는 온양관광호텔은 아주 멋들어졌다. 방개도 기환이 덕분에 호텔 앞을 지나 만 다니던 기와가 멋들어진 온양광광호텔을 이제는 기환을 만나러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방개도 호텔에서 기환과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 날에는 자기도 아주 근사한 시인이 된 것 같아서 어깨가 조금은 목 위로 살짝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제가 돈이 많아서 이 호텔에 머무는 건 아닌 거 아시죠. 사실 학교 이사장 하고 나니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이순신 영화 써보고 싶다고 했더니 후원자가 생겼어요. 그래서 그분 덕에 이 호텔을 두 달 예약했습니다. 호텔비하고 대본 나올 때까지는 제 모든 경비는 그분이 대주신다고 하셔서요. 우리나라에 재목이 되시는 정도의 큰 기업가시죠. 엄청난 어르신인데, 저를 잘 보신 것 같아요. 군산분이신데, 군산에서 학교 이사장할 때부터 가끔씩 오셔서 학교를 후원해 준 분입니다. 저도 잘한 거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이 한 번씩 이상하게 거창한 선물 보따리를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기분이 들어서 아주 좋습니다. 아저씨도 저랑 이 함께 그분의 호의를 좀 누리시고 저랑 좋은 글 좀 쓰십시다. 사실 아저씨는 시대를 잘 못 타고 나서 그렇치 굉장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영어도 잘하고시고, 서천에서 혼자서 일어랑 중국어도 공부를 하신거 저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서 책도 많이 읽으셨으니까 이제 실력 발휘 좀 하셔야죠."
기환이 호텔을 예약하고 기분이 좋은지 방개에게 오랜만에 일식집에서 정종을 한 잔만 하자고 했다. 둘은 호텔 앞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정종을 한 잔씩 했다. 방개도 기환도 술은 못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기념으로 술잔을 부딪쳐 보기로 한 것이었다.
방개는 기환에게 자기가 쓴 이순신 연작시 중 몇 편을 슬그머니 술잔 아래 내밀었다. 기환이 안경 너머로 시를 읽더니 일어나서 낭송을 하겠다고 우겼다. 일식집에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환은 손님들이 몇몇 있는 일식집 테이블에 서서 방개의 시를 낭송했다.
이순신 연작시 2.
난 아직도 당신을 조금도 모릅니다.
그저 당신이 살았던 고택에 뜰앞을 서성대다가
그 고택의 옆에 서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에게
어느날은 나의 모습을 들켰습니다.
그저 충청도 사내인 나는 내가 얼마나 바보로 살았는지를
당신의 긴 칼을 보고,
당신의 쏘던 화포를 보고,
그리고 그리도 위대하고 겁나게 멋들어진 거북선을 보고
난 내가 이 나라의 사나이가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6.25 전쟁통에 내 사춘기가 포탄 사이로 지나갔고,
첫사랑 청춘도 진달래꽃 분홍 울음으로 귀머거리 내 여자를 삼키고,
나는 그저 바보가 되어서 떠돌다가
어느 날 시인이 되었지만,
난중일기를 읽다가 나도 당신을 따라 일기를 써 보려해도
나는 네 명의 고아를 데리고 사는
철부지 중늙은이가 되어서 얘들 도시락이나 챙기는 얘기 말고는
쓸게 없는 초라한 신세입니다.
그러나 나도 똑똑한 사람들 만나서 얘길 하다 보문
내가 무식한 것이 자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찍이 좋아하던 영어 공부도 심드렁해졌는데,
당신을 알고 보니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는 태어나서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하고
누구는 태어나서 전쟁 때문에 환청에 시달리다가 떠돌이가 되고,
당신은 이 나라 조선을 한려수도에서 건져내고
저는 전쟁도 세상 사는 것도 무서워한 바보 방개
사람이 같은 사람인데,
왜 이리 억겁의 시간처럼 본질상 차이가 날까요.
그래서 오늘도 어리 산 당신의 무덤가에 핀 진달래꽃 보다가
내 부끄러운 울음은 그칠 줄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