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전해서 현충사에 매일 가유.

by 권길주



엉가엄마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방개는 서천에서의 긴 세월을 정리했다. 죽을병이 들어서 바닷가 오두막에 혼자 들어가 앓고 있던 자신은 멀쩡히 살아있는데

, 어찌 꿈에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엉가엄마가 이 바닷가에 와서 자신의 품에서 죽었는지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에이고 붉은 멍이 든 것처럼 아펐다. 그러나 엉가엄마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방개는 서천을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방개는 자기를 살려준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교인들을 떠났고, 산에서 기도하는 젊은 전도사에게는 살던 집을 넘겨주기로 하고 그에게 서재가 딸린 작은 집을 넘겨주었다. 물론 작가로 신문사에 계속 소설을 연재하는 기환은 바닷가에 집에 젊은 전도사가 있겠다면 얼마든지 있으라고 했다. 그 집은 이미 방개에게 소유권을 넘겨줬지만 방개가 그 소유권마저 다 젊은 전도사에게 주길 원했기에 기환도 흔쾌히 허락을 해준 것이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젊은 전도사는 서울에 있는 아버지의 교회에서 사역을 하지 않기로 했고, 방개가 다니던 교회에서 다시 전도사로 사역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젊은 전도사도 엉가엄마에게 정성과 사랑을 쏟으며 아내를 떠나보낸 아픔이 오히려 치유가 된 것이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섬기는 일은 결국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도 잊게 할 만큼 성스럽고 보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젊은 전도사에게는 죽어가는 엉가엄마를 위해 밤마다 기도를 하고 낮이면 산에서 내려와서 예배를 정성스럽게 들이며 기도를 해 주었던 일이 결국은 자신을 살린 일이라고 했다. 만약에 엉가엄마를 자기 양으로 생각하지않고 그렇게 정성을 들이며 한 영혼을 구원시키지 못했다면 자신은 아직도 산속에서 방황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린 철희를 누가 데리고 있을 것이냐에 대해서 서로 약간의 앞선 마음들은 있었지만, 결국 철희는 방개가 데리고 온양에서 살기로 했다. 방개는 철희를 검정고시 공부시키고 서울에 있는 미대를 보내려면 온양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고, 젊은 전도사는 자기가 데리고 살면서 공부를 시키겠다고 했지만, 선택의 여지를 철희에게 물었을 때 철희는 뜻밖에 방개와 온양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방개가 가는 집에 또래 비슷한 엉가와 덕구의 조카들이 있다는 말에 철희는 당연히 엉가네 집을 원한 것이었다.


비인 앞바다 방개의 집에서 철희와 젊은 전도사와 윤택이와 기환이와 뻥 쩍빨의 화가가 모였다. 그리고 방개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도 오셨다. 그들은 서천을 떠나는 방개에게 눈물로 서로 악수를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오지 못한 한 사람 중 소록도에 간 젊은 과부는 편지로 방개에게 서천에서의 고마움을 전했다. 누구보다 방개가 서천을 떠나는 것을 가슴 아파한 사람은 작가가 된 기환이였다. 그는 방개가 자기 목숨을 살린 은인인데 이렇게 멀리 떠난다며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자꾸만 눈물을 훔쳤다.






장항선 기차에 몸을 싣고 방개는 어린 철희를 데리고 온양에 다시 돌아왔다. 세월이 녹슨 기찻길을 반들반들 윤을 닦듯이 닦으며 지나간 것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서천에서 산 세월 동안 그는 죽음에서 살아났고, 책을 무수히 읽었고,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온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온양에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순자의 무덤에는 풀이 무성했고, 방개의 사랑을 갈구하던 엉가엄마도 그녀의 멋들어진 양장점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순자의 죽음이 처절한 자살이었다면 엉가엄마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갔다는 마음은 확실하게 들었다. 그 이유는 엉가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세상에서 방개가 엉가엄마를 본 얼굴 중에 가장 평온하고 고요한 것이 꼭 봄날에 핀 하얀 목련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방개는 철희를 검정고시 학원과 천안에 있는 미술학원 두 곳에 보내기 시작했다. 철희를 내년이면 서울에 있는 미대에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뻥 쩍빨의 화가 말로는 철희는 정신적으로만 성숙한 사람이 되면 그가 가진 재주는 천부적이라서 자기보다 유명한 화가가 될 거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방개는 엉가엄마가 온양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자기에게 해준 비단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그리고 엉가와 덕구에 조카 둘 그리고 철희를 위해 매일 밥을 하고 아침이면 도시락을 네 개씩 때로는 다섯 개 여섯 개씩 쌌다. 엄마를 졸지에 잃어버린 엉가가 공부에 심하게 집착을 했고, 덕구 조카들도 공부를 아주 잘하는 편이라서 밤이 늦도록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느라 도시락을 어느 때는 두 개씩 싸달라고 했던 것이다. 덕구의 아내가 가끔씩 김치와 반찬을 해나르기도 했고, 장 보는 걸 좋아하는 방개는 온양장에서 매일 콩나물이나 두부를 사다가 아이들에게 도시락 반찬을 해주었다.


한참 자라는 얘들을 데리고 사니 엉가네 집은 활기도 있고, 엉가도 점점 그 틈새에서 자기 공부에 매진하느라 슬픔을 잘 내색하질 않았기에 방개는 엉가가 참으로 기특하고 예뻤다. 그러나 방개의 마음은 온양에 있으며 하루하루가 다르게 허전하고 견딜 수 없이 또 힘이 든 것은 순자에 대한 미안함과 그녀를 책임지지 못했던 지난날의 죄책감이 가끔씩 그를 괴롭히기도 하고 이제는 순자든 엉가엄마든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었다.


방개의 마음은 봄날에 아무것도 심지 않은 논과 밭처럼 그렇게 허전하기만 했다. 마른 먼지만 풀풀거리고 날리는 행길과 논둑을 걸으며 방개는 낮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중골에 덕구네 집에 가서 엉가엄마가 남겨 논 과수원이나 논과 산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아직은 농사를 지을 만큼 힘도 없었고, 엉가엄마가 과수원과 논을 도지 주었던 김씨네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니 그에게 농사를 당분간 더 지으라고 했기에 그가 바삐 농사지을 형편도 아니었기에 그는 엉가네 집에 주로 있었던 것이었다.


천안에 부동산 사무실을 차리고 건물 사장이 된 덕구는 매일 천안에 출근을 하니 덕구도 중골에서는 주로 오후에나 있으니 방개는 중골을 가도 잠깐씩만 있다 와야 했다. 그렇다고 방개가 덕구의 부동산 사무실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방개는 천안에 덕구의 부동산 사무실에는 잘 가질 않았던 것이다. 덕구는 엄청난 부동산 업자가 되어서 그가 하는 부동산 사무실엘 가면 방개는 영 딴 세상 같았기에 그곳엘 거의 가질 않았던 것이다. 화투를 좋아하는 덕구는 부동산 업자들과 사무실에서 화투도 치고, 자가용을 타고 이 땅 저 땅을 보러 다니는 걸 보면 영 딴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방개는 덕구가 예전처럼 농사꾼처럼 느껴지질 않아서 그저 마음만 서로 나누는 게 편했던 것이다.





방개는 마음이 허전한 날이면 엉가네 집에서 나와서 곡교천을 지나 현충사엘 혼자 걸어갔다. 온양 시내에서 삼십여분이면 현충사에 도착을 하니 방개가 혼자서 걷기에는 딱 좋은 거리기도 하고 현충사 가는 길에 은행나무길이 그는 참 좋았던 것이다. 현충사 마당을 들어서면 언제나 방개의 가슴이 뻥하고 뚫리듯이 뭔가 모를 큰 울림이 생기는 것이 방개는 참 이상하다고 처음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현충사에는 이순신 장군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 같이 이상하게 가슴을 설레게 했고, 그곳에 갈 수록 그곳은 점점 더 그에 가슴을 뛰게 만드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마음이 허전한 날마다 현충사로 매일 발걸음을 옮기던 어느 날부터 방개는 현충사 잔디 마당에 누워서 파란 하늘을 보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이 찬 큰 칼 앞에서 서성대다가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빨간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가에서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기도 하며 서점에서 사 온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들을 읽어나갔다. 대학을 가기보다는 역사와 세계사 공부를 더하기로 한 방개가 처음으로 택한 역사의 인물은 생각지도 못하게 온양에 있는 현충사에 주인공 이순신 장군이었다.


그리고는 그는 점점 더 이순신 장군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는 순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엉가엄마를 애달퍼한 마음을 떠나 훨씬 크고 위대한 인물로 그에게 자기의 마음을 쏟아부어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이순신에 대한 여러 가지 책들과 조선시대를 공부하면 할수록 이순신의 정신과 그이 생애와 그의 업적에 점점 깊이 몰두되어 갔다.

정말 그는 조선을 사랑한 거룩한 최고의 영웅, 다시 말해서 성웅 이순신 장군이 맞는 말이란 생각이 식견이 부족하고 지식이 부족한 방개의 생각에도 확실하게 들어왔다. 그를 공부한다는 것이 그리고 현충사에 매일 올 수 있다는 것이 방개로써는 큰 자부심이 들 정도로 그에게는 감개가 무량한 사람이 바로 성웅 이순신 장군이었던 것이었다.


방개는 자기가 왜 온양에 다시 와서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살며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곡교천의 은행나무 길을 따라 현충사에 들어와서 그가 살던 냄새를 맡고, 그가 살던 고향의 땅을 밟으며 그의 유적들을 바라볼 수 있으며,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산다는 현충사 근처의 땅을 밟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지덕지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착한 엉가가 자기를 아버지라고 불러주는 것보다 방개에게는 온양에서 살면서 현충사에 이순신 장군을 알게 되고, 그를 공부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나라 사랑 정신에 자기도 얼이 반쯤은 나간 듯이 정신없이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방개는 성웅 이순신 장군의 전기와 일대기를 밤이 새도록 읽으며 그리고 매일 현충사를 걸어가서 그곳에 하루를 보내며 가끔씩 관광객들이 버린 휴지를 혼자서 치우기도 하고, 누가 뭐라 하지 않으면 화장실에 청소도 하고 잔디에 풀도 혼자서 뽑았다. 방개는 이제야 자신이 소년병으로 한국전쟁에서 잃어버린 청년의 기개와 혼란스러웠던 나라에 대한 마음들이 정돈되는 것을 느꼈다.


방개는 전쟁과 전쟁의 공포 그리고 친구 현병이의 죽음을 통해서 느꼈던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전쟁의 공포가 이제는 사라지고, 그에게는 전쟁을 이기고 죽음을 이긴, 한 영웅의 숨결에서 비로소 자신도 다시 남자로 이 땅에, 이 나라에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내가 한국전쟁에서 소년병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리 떨떨한 사춘기 소년이 아니고, 조선 시대에 태어나서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던 무사나 병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개는 이순신 장군의 기개와 무사 정신이 좋았고, 책을 읽으며 전쟁에 능한 전략가인 그의 지략에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방개는 이순신에 관한 공부를 위해 온양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역사 선생님들을 찾아다니고, 사학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환에게 도움을 받아서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들을 두루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뛰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무엇이 자신을 이토록 이 위대한 성웅에게 빠지게 하나를 그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시인이 된 방개가 이순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그에 관한 시를 써나가는 일들로 그에 노트에 하나하나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며

시 1편 ㅡ 나는 사내가 아니였습니다.




이제야 저 같은 사내도 사내가 되었나 봅니다.

그동안 사내구실도 못하고

사람 구실도 못하고

전쟁통에 시달렸는데,


이제야 저 같은 사람도 당신 같은 영웅 때문에

사내가 되었나 봅니다.


저 곡교천의 은행나무도 수백 년이 지나면 고목이 되겠지만,

당신처럼 위대한 사람은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도

썩은 나무가 되지 않고 살아서 그 깊은 뿌리가

조선 땅을 다 덮고도 남을 겁니다.


내가 왜 이제 당신을 알아서 이제야

사내가 되었는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너무나 약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정신도 약하고

마음도 약하여 전쟁의 포탄에 내 상한 마음이

찢어지고 부서져

내가 이토록 오래 떠돌아다닌 거지가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영어공부도 놓고

중학교도 더 못 다니고,

사랑하던 여자도 지켜주질 못하고,


인간구실 사내구실 못하여

시대도 잃어버리고,

나는 혼자서 떠돌아다닌 떠돌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보고

등신새끼라고도 하고

또는 바보천치라고도 하고

쪼다, 머저리, 방개, 방개라고 하였지요.


그러나 이제 내가 당신을 만나고 보니

내가 이제는 사내로 살아갈 자신이 조금 생겼습니다.


당신이 구한 조선 땅에 저 큰 칼을 보아하니

내가 포탄맞고 죽은 친구에 영혼도 위로하지 못한

참으로 못난 사내였다는 생각에

그저 부끄러움이 저 앞산을 치받습니다.


영웅이여, 그리고 성인이시여,

조선과 이 땅을 구한 당신은 진정한 사나이,

거룩한 영웅 이순신 , 그 사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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