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당신을 두고 가야 하나요.

by 권길주




엉가엄마 윤희에게 서해 바다는 세상의 끝이었다. 어딘가에 비비고 살 데가 없던 방개를 받아준 서해바다는 방개가 누르고 살던 그리움이나 가슴 저린 가족의 이야기도 갯벌에 조용히 묻혀있는 세상의 끝자락 같은 곳이었다.


윤희는 화가가 자신에게 그림에 모델이 되어 달라는 정중한 청을 거절했다. 자신의 병든 모습을 남기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와 가까워질 어떤 시간들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시간이라도 방개씨와 함께 더 있고 싶었고, 그의 곁에서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는데 마음을 다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방개네 집에 찾아와서 같이 밥을 먹거나 바닷가를 여러 명이 같이 갈 때는 그녀도 그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화가의 서운함은 컸지만, 그도 이제는 그녀가 병든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먼 곳에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자신의 이미지대로 그녀를 작업실에서 혼자 그려나갔다. 그것은 화가인 그에 자유이니 화가가 윤희를 어떤 모습을 주로 그리는지는 일주일에 한 번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러 가는 철희만 알 뿐 다른 사람들은 화가가 윤희를 어떻게 그리는지를 알지를 못했다.


"선생님, 윤희 아줌마는 무지 아프다는데, 죽을병에 걸렸다는데 왜 이렇게 싱싱하고 건강해 보여요. 그리고 너무 아름다운걸요."


철희가 화가가 그린 윤희를 보면서 늘 하는 질문이었지만, 뻥쩎빨의 화가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붓질만 해대고 그가 그리는 윤희의 그림은 점점 쌓여만 갔다.


방개는 엉가엄마 윤희 때문에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일을 거의 못했다. 밤이면 더 심한 통증과 고통이 오는지 가끔씩 엉가엄마가 내뱉는 신음소리와 고통에 찬 통증을 참는 소리를 문밖에서 듣노라면 방개도 마음이 찢어지고 산에 올라가도 그녀가 겪는 고통이 근심이 되어 기도도 잘 되질 않았던 것이다. 그 대신 공동묘지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기도를 하는 젊은 전도사는 거의 매일 산에서 내려와 엉가엄마를 기도해 주고 예배를 함께 드리고 저녁에 되면 다시 산을 올라갔다.


"기도가 정성이라고 하던데요, 저는 제 인생을 정성스럽게 살지를 못했나 봐요, 저 자신을 놓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할 마음은 없어요. 더는 살고 싶은 생각도 그리 없으니 제가 참 이상하죠. 그러나 방개씨를 위해 제가 꼭 해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방개씨가 제 말을 들어줬으면 싶어요. 저는 저를 살려달라는 기도는 한 번도 하질 않았고요, 방개씨가 제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만을 기도하고 있어요. 전도사님."


젊은 전도사는 엉가엄마 윤희가 예배나 기도받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성경말씀을 따라 읽고 가끔은 찬송가도 잘 부르는 걸 보면 참 기적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교회를 한 번도 간 적이 없다는 사람이 순순히 방개네 마루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고, 젊은 전도사가 몸에 손을 얹고 해주는 기도를 아무 거부 반응 없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드리는 예배나 기도는 죽음을 눈앞에 둔 병자가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아닌 살아있는 사랑하는 한 사람에 대한 간절한 소원 때문이라고 하니 젊은 전도사도 조금은 놀라웠다.


"성도님의 바라는 방개 성도님을 향한 마지막 소원이 뭔지 제가 혹시 물어봐도 되나요? 저도 기도를 해드릴까 싶어서요."


윤희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네, 저는 진짜 기적처럼 방개씨를 만나서 저와 내 딸 엉가가 목숨을 건졌어요. 우리는 그 여름날 원두막에서 방개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더위와 배고픔에 지쳐서 병이 들었거나,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덕구 씨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또 저희 세 사람이 같이 살지도 못했을 거고요. 그래서 저는 온양에서 양장점을 하면서 덕구 조카 둘을 데리고 살았던 것은 덕구네 집에 신세를 갚고 싶어서였지요. 그 애들에게 하숙비 같은 거 한 푼도 받은 적 없이 제 집에서 제가 우리 엉가랑 같이 학교를 보내줬어요. 그것으로 덕구 씨에게 진 신세는 제가 다 갚았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물론 더 해주고 싶지만, 저는 지금 시간이 없으니까요."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그 마음이. 사람이 사람에게 보답하고 산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요. 성도님은 받은 사랑과 감사를 갚을 줄 아는 고운 사람이셨군요."


"그런데 방개씨는 나한테 아무것도 받지를 않았어요. 우리 모녀를 살려놓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떠나게 되면 방개씨가 내 청을 꼭 들어줬으면 해서요."


"어떤 청인가요?"


젊은 전도사는 엉가엄마 윤희가 진심을 다해 하는 말을 잘 귀담아 들었다. 이것이 그녀의 유언이라면 그로써는 그녀가 하는 기도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네, 저는 방개씨가 법적으로 우리 엉가의 아버지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요. 그러려면 제가 살아있는 동안 혼인신고를 해야 하고, 방개씨가 그걸 들어줘야 하는데 제 소원을 방개씨가 들어줄까요? 그래서 저는 못하는 기도지만 저두 방개씨가 믿는 하나님께 여기 와서 처음으로 기도를 했어요."

젊은 전도사는 깜짝 놀랐다. 혼자 사는 방개 성도가 들어주기에는 참으로 힘든 이야기 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평생을 떠돌아다닌 사내가 과연 남의 집 딸에 아버지가 되어주기 위해 죽어가는 여자와 혼인신고를 할 수 있을지 그도 참 난감해 보였다.


"왜, 꼭 방개씨가 따님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나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그가 생각할 때 그건 방개 성도가 들어주기 힘든 일일 수도 있기에 그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제 엉가는 이제 겨우 여고 1학년이에요. 열일곱 살이죠. 그런데 저는 그동안 온양에서 양장점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거든요. 그래서 그 돈으로 덕구씨네가 사는 마을에 큰 산을 하나 사놓고, 논하고 과수원도 사놨어요. 그 동네는 워낙은 땅 값이 싸니까 제가 온양에서 몇 달만 양장점에서 돈을 벌어도 그 동네 땅은 얼마든지 사놓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저를 위해서는 모든 돈을 아꼈고, 아이들 먹이고 학교 보내는 돈 빼고는 다 덕구네 동네에다가 땅을 사놨어요. 나중에 방개씨가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게 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산도 사고 논도 사고 과수원도 사놨죠. 만평이 넘어요. 그리고 온양에도 집이 두 채나 있어요. 지금 엉가랑 덕구 조카랑 나랑 넷이서 살던 집 한 채랑 그거보다 큰 집이 시내에 하나 더 있어요. 그걸 다 방개씨에게 넘겨주고 우리 엉가 아버지가 되어 주면 제가 소원이 없겠어요. 어린 엉가에게 그런 걸 물려주고 죽을 수도 없고 덕구 씨에게 맡아달라고 하기에는 덕구 씨는 남의 재산 같은 거 맡아서 가지고 있는 거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요. 그분도 참 정직해서 남의 것은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방개씨를 위해서 내가 만들어 놓은 땅에 방개씨가 가서 마음대로 농사도 짓고 우리 엉가도 지켜주고 살길 저는 간절히 바라고 이곳까지 온 거예요. 물론 제가 염치가 없는 여자죠. 정말.... 염치는 없는 여자죠. 방개씨 한 테는."


저녁에 젊은 전도사에게 그 엉가엄마의 청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방개는 펄쩍하고 황소개구리 뛰듯이 뛰었다. 엉감생심 꿈에도 생각지도 않은 일을 들으니 방개는 황당한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엉가를 지켜줄 아버지 같은 마음은 있지만, 어느 사이 엉가엄마가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 많은 재산을 혼인신고를 하고 자기 앞으로 해달라는 청탁은 정말 들어주기 힘든 말이었다.


"이 문제는 성도님이 잘 판단하고 결정을 해셔야 하는 일이네요. 저도 뭐라고 조언을 해드릴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방개씨도 그만 떠도시고 그럼 덕구라는 분 동네에 가서 같이 농사를 지으면서 엉가를 대학도 보내고 시집도 보내주면 엉가엄마는 편히 가실 것 같기는 하네요."


엉가엄마 윤희의 간곡한 청을 들었지만, 그리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개네 집 뜨락에도 가을이 왔다.

간에 복수가 차서 엉가엄마는 점점 얼굴이 노래지고, 숨도 많이 차는지 어느 때는 밤새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멀리 바닷가에 물결을 차고 저 먼 세상의 끝에 까지 도달하는 것 같이 고통스럽게 이어졌다.





젊은 전도사의 말로는 이제 그녀가 갈 날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를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고 하니 방개는 하루도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집에 일하는 아줌마를 놓고 두고 왔다고는 하지만 엉가에게 엄마가 이렇게 멀리서 죽는다면 나중에 엉가에게도 원망을 들을까 봐 방개는 노심초사한 것이었다. 덕구는 몇 번을 다녀갔지만, 그에게 엉가엄마랑 자신의 혼인신고 문제를 놓고 가타부타 답을 내려줄 수는 없노라 했다. 그러나 어린 엉가에게 만약에 재산이 다 상속되면 엉가네 친척들이 나설 수도 있고 생각보다 힘든 일이 엉가에게 생길 수도 있다는 조언은 빼놓지 않고 했다.


서해의 찬 물결이 새벽마다 방개의 얼굴과 가슴과 발목을 시리게 했다. 그는 새벽이면 바다에 가서 혼자 걸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자기가 식구처럼 생각한 엉가엄마의 소원을 들어줘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자기가 살던 대로 떠돌며 살아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물었다. 그러나 신도 그에게는 그 문제에 대해 큰 소리로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방개는 신이 자기에게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잠시 맡았다가 엉가에게 전부 돌려주는 방법을 말하는 것 같았다. 몇 년 만, 엉가가 성인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그때쯤 엉가에게 다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너는 떠나면 되지 않느냐는 마음을 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몇 년 동안 너는 온양에서 다시 공부를 더 하라는 마음을 주시는 것 같았다. 학교 이사장으로 있는 기환이가 시인이 되었으니 대학을 들어가라고 몇 번을 부탁을 했는데, 대학에 정식으로 들어가든가 , 아니면 하고 싶던 역사와 세계사 공부를 혼자 하던가...... 하지만 방개는 그런 학문에 관한 것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시나 좀 더 깊이 써보고 싶었다. 시를 위한 성찰이 더 필요한 시간들을 그는 원했던 것이다.


"엉가엄마랑 같이 가서 혼인신고를 해야 하는 거 아녀유."


"성도님, 그 일은 혼자 가서 해도 될 거예요. 도장만 엉가엄마 윤희 씨 거 가지고 가시면 다 면사무소나 동사무소에서 도와줄 겁니다. 아니면 엉가엄마를 데리고 온양으로 같이 가시던가요. 이제 엉가엄마에게 시간도 얼마 남지를 않았으니 딸이랑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방개는 엉가엄마의 소원을 들어줬다. 엉가를 딸처럼 데리고 다니며 거지로 살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기도 했고, 가난한 그때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박권사가 준 종근락 하나에 이 집 저 집에서 밥과 누룽지 김치 몇 조각 두부 한 입 거리를 얻어다가 두 모녀를 먹였던 것뿐인데, 엉가엄마가 자기에게 맡긴 재산은 너무 크지만, 어차피 그는 자기 것을 원하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잠시 맡았다가 엉가를 주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법적으로 죽어가는 엉가엄마의 남편이 되고, 엉가의 새아버지가 되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그것도 생각하면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이 종이 한 장으로 엉가엄마가 딸 걱정을 안 하고 마음 편히 저 세상 하늘나라를 갈 수 있다면 방개는 그 소원도 들어주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덕구네 마을에 가서 농사를 짓는 일은 어찌 생각하면 좋은 일 일 수도 있었다.


더구나 과수원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개로써는 자기 마음대로 과일 농사를 지어서 그 과일을 사람들에게 마음껏 나눠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서천을 떠나고 비인 앞바다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젊은 전도사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기의 죄를 다 하나님께 고백한 엉가엄마 윤희는 얼굴이 정말 해 같이 빛이 났다. 그녀는 방개가 온양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온 뒤 며칠 후에 서해바다의 끝에서 영원한 잠이 들었다. 방개와 젊은 전도사 그리고 철희, 뻥쩍뻘의 화가가 윤희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었다. 화가는 자기가 그린 그림 중에서 분홍빛 긴 원피스를 입고 둥글고 긴 푸른 챙모자를 쓰고 환하게 방개네 집 마당에 서 있는 윤희의 모습을 그려서 그녀가 잠든 곁에 두었다. 그녀는 화가가 자신을 얼마나 마음에 두고 그림을 그렸는지를 그 그림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그림에서 방개네 마당에 환한 빛이 들어오는 것은 그녀의 마지막 영혼의 빛이라는 것을 화가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방개는 식어가는 엉가엄마의 손을 잡고 그녀가 자기에게 누구였는지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엉가엄마 윤희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가여운 여자였다. 더구나 자기처럼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떠돌이 남자에게조차도 한 여자로서 깊은 애정을 받지 못한 기구한 여자였다는 것이 방개의 가슴을 찢을 듯이 아프게 했다. 방개는 왜 인간의 사랑이 이처럼 어긋나며 또 비켜만 가는지 아쉽기도 하고, 애절했던 엉가엄마 윤희의 자기를 향한 사랑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차올라서 마지막 숨을 몰아 쉬는 그녀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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