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은 노련한 장수의 눈으로 보아도 어느 곳 하나 베일 곳이 없을 것 같다. 방개는 이순신의 큰 칼 앞에서 다시 한번 장수의 기개를 느끼며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에게는 곡교천을 건너오는 길에 본 봄의 기운이 아무리 고와도 어찌 이순신 장군이 보는 눈과 같을까 싶었다. 자기에게는 평범한 햇살과 땅이지만,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보았던 이 땅은 아마도 왜놈에게 짓밟힌 처절한 땅이었으리라.
사람의 키만큼 큰 칼을 왜놈 장수의 정수리에 꽃아서 반드시 조선을 구하고자 했던 이순신의 정기가 오백 년을 거슬러 방개의 가슴에 시정신으로 내리꽃혔다. 그는 그때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묵묵히 전시관을 빠져나와 어리 산 기슭으로 걸어 올라갔다.
이순신 연작시 3. 난세의 영웅 이순신
난세에는 영웅이 난다고 했다는데,
당신은 임진왜란의 영웅으로 이미 천 년 전에 하늘이 점지했나요.
바람을 폭풍을 그 갑옷에 집어넣고
바다를 잠잠케 하는 영웅호걸의 목소리로
한산 앞바다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큰 칼일랑 당신의 무거운 어깨에 메고,
당신은 콩 한 알도 반쪽으로 갈라먹어야 하는
만백성의 고통과 배고픔이 전쟁으로 스러지지 않는 별이 되도록
그토록 밤잠을 설치고, 새벽에 이르도록 난중일기를 쓰시며
왜선 133척을 격파하는 명량대첩의 큰 쾌거로
난세의 영웅
난세의 영웅이 되었지만,
당신의 겸허와 자중함은 누구의 가르침인지요.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를 만드셨을 때
조선의 땅에 난세의 영웅을 두시어
한산도대첩에서 장수와 군사들이 적을 향해 바람같이 우뢰같이
돌진하였다고 하니 그것을 적어 논 난중일기에 한 줄에서도
그저 나는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방개와 기환이 각기 다른 이순신에 관한 글을 쓰고 있지만, 둘은 자주 현충사에서 만남을 가졌다. 가끔은 기환이 방개가 살고 있는 엉가네를 와서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고, 좋은 말을 해주자, 아이들도 방개랑 살던 때와 달리 더 활기가 넘쳤다.
엉가는 엄마가 하던 양장점에서 여러 가지로 옷에 대한 기술을 엿보아서 인지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대학을 가면 공부를 하다가 이태리로 패션 공부를 하러 가고 싶다고 하는 걸 보면 패션디자인으로 포부도 큰 듯이 보였는데, 그런 엉가를 좋아하는 철희는 그림에 몰두하며 생각보다는 그림에 꽤 큰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덕구의 조카 둘은 공부파들이였는데, 첫째는 법대를 원했고, 둘째는 상대를 원했다.
방개는 자기가 낳은 자식들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길을 찾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주리라 마음을 먹었기에 그 애들이 공부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데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자신에게도 커다란 울타리가 생기는 것을 느껴서 네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데는 자기의 어떤 헌신이나 때를 따라서는 목숨이라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번 일을 하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든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환은 생활습관이나 모든 것이 굉장히 계획성이 있었고, 침착하게 일을 해나가는 타입이였다. 기환은 주도면밀하게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면서 자신이 만드는 영화 대본에 굉장히 몰입해가기 시작했다.
방개는 기환의 그런 면을 보면서 기환이 만드는 영화가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기환은 자기 나름대로 대본을 착착 써나가기 시작했다.
기환은 온양관광호텔에 머무는 두 달 동안 우선 영화대본의 줄거리를 마칠 생각이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그는 대본의 줄거리를 잡아가는데 젖 먹은 힘까지 다 쏟는 것 같았기에 방개는 기환이 부르지 않으면 절대로 그에게 먼저 찾아가는 법은 없었다.
온양관광호텔을 예약한 두 달이 다 지나고 기환이 방개를 찾아왔다.
"아저씨, 제가 아무래도 온양에서 한 일 년 정도 머물고 싶은데, 혼자서 사는 집을 장만하기보다는 아저씨랑 아이들이 같이 살 수 있는 이 집에 머물고 싶네요. 그리고 낮에는 근처에 있는 시골집을 하나 구해서 작업실로 쓰면 어떨까 싶어요. 현충사 근처 음봉면에 있는 조용한 시골집 하나 구할까 싶은데요. 거기서 글을 쓰고 가끔씩 아저씨 집에 와서 아이들하고 아저씨 하고 밥도 먹고 그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거야 당연히 좋은 일이지. 나도 자네가 함께 살아만 준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지 뭐. 아이들도 무지 좋아할걸. 그리고 시골집 구하는 거는 누워서 떡 먹기지 뭐. 요새 시골에 빈집 찾아보면 있을 거야. 당장 음봉면으로 가보세, 그리고 호텔에서 짐은 나랑 내일 나르고 말여."
"아저씨는 내가 이순신 영화 만드는게 그렇게두 좋으신가봐유, 날 볼때마다 신바람이 나시니. 하하하"
"암, 그렇치, 내가 말여 아직은 하나님은 뜨겁게 만나지를 못한거 같아서 하나님께는 아직 참말로 죄송한데, 이순신 장군은 내가 생각하문 할수록 난세에 영웅이시지 뭐여, 아, 난세에 영웅이 난다구 했잖여. 이순신 장군이 그런 사람이잖아, 참말로 멋져부려. 그 양반이."
"하하하, 그렇치유 아저씨 그려유, 난세에 영웅이 났지유, 임진왜란을 그렇치 않았음 우리가 워떻게 막었겄슈."
기환이 방개의 충청도사투리를 따라하며 기분 좋게 큰 걸음을 뚜벅뚜벅 걸어서 방개와 현충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방개는 기환이 자기가 사는 집으로 들어온다고 하자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덕구와 자주 만나지 못해서 외롭던 차에 기환이 이렇게 자기와 함께 살면서 아이들에게도 든든한 선생이 되어줄 것이 뻔했기에 방개는 기환을 큰 절이라도 하고 맞아들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구나 방개는 역사공부에 자신이 없어서 기환이 옆에 있으면 이순신 공부를 하기에 최적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환은 이순신 연작시를 쓰는 방개에게 도움도 되어주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는 온양과 한산도를 오가며 큰 그림을 가지고 이순신 대본을 쓰려면 그가 살았던 현장을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기 때문에 일 년이란 시간을 온양에서 살기로 한 것이었다. 기환은 서울에 두고 온 아내와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에게는 이순신 영화를 만드는 일은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가장 획기적이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도 그것보다 소중한 일은 없을 거라 판단을 했던 것이었다.
기환은 자신이 아버지의 뜻대로 검사나 판사가 되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 일이 바로 이순신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을 거란 생각을 하자, 자신의 생각대로 인생을 결정해 나가는 지금이 자신은 가장 행복한 때라는 생각을 했다.
방개는 기환과 대화를 마치고 현충사를 걸어나오며 혼자 가만히 시 한 수를 읊었다. 자신이 어찌하여 한국전쟁 소년병에서 이렇게 또 공부를 많이 한 기환을 만나서 자기가 서천에서 시인이 되었는지 생각을 하면 감개가 무량했지만, 왠지 이순신 장군처럼 멋진 장수가 지금도 이 땅에 살았으면 하는 꿈같은 꿈을 꾼것이다.
그 꿈이 시를 쓰는 일이라면 방개에게도 참으로 좋은 나라에 자신이 전쟁도 견디고 살아있는 것이 새삼 살을 꼬집는 실감도 났던 것이다.
이순신 연작시 4. 명량 대첩, 울돌목의 회오리
지금도 그가 살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 이 땅에서 그 장군이 살아서 버티어 있다면 좋으련만,
한산도 앞바다 울돌목에서 그는 왜놈들의 간을 서늘하게 하는
호령을 외쳤다.
격파하라,
격파하라,
돌진하라,
돌진하라,
전군 돌진하라,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전군 출정하라는 그의 호령으로
거북선의 노를 저를 저어 가는 조선의 병사들에게는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해적왕이 별거더냐,
두려움을 용기로만 바꿀 수 있다면.
일본 장수들의 간담이 녹아내린 율돌목 회오리는
다시는 이 나라가 왜놈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깊고 깊은 외침이었으리.
아직도 한산도 율돌목에 가면
이순신 그의 사랑은 바다의 용의 물길보다 깊어서
12척의 거북선에 힘은
330척 왜놈들 배를 물리치고
이 나라 조선을 수천 만 년 동안 다시 지킬 그 성웅의 힘으로
어질고 용맹스러워서 나는 그가 좋습니다.
참으로 이 조선에 살았다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를 기다리며 그의 호령소리 듣고자
현충문 드나들며 봄이 다 갔습니다.
회오리치던 여름도 갔습니다.
빛 바래던 들녘에 가을도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 같은 바보도 기나긴 겨울밤에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 강산에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수많은 기도자가 지금도 산과 바다와 강가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