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에 뜬 별은 그 빛이 애처로웠다. 보름달에 가린 별빛은 자기의 빛을 완전하게 발산을 못하고 희미하게 빛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환이 현충사를 혼자 걸어 다니며 달빛이 환한 넓은 주차장 마당을 걸으며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이어나갔다. 무엇보다도 고민이 되는 것은 역시 제목과 첫 번째 씬이었고, 영화의 몰입감을 주기 위해 어떻게 주제를 끌고 가느냐에 대한 생각이었다.
기환의 고집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가 생각하는 이순신에 대한 생각은 임진왜란의 전쟁영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를 품은 이순신의 지고지순한 나라사랑을 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 나라사랑에 정신은 그가 가진 어떤 깊은 성정과 연결된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그런 이순신을 영화로 나타내려면 그는 인간 이순신과 전쟁터의 이순신과 그리고 조선의 백성들을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거북선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환은 영화를 작업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역사책도 수두룩하게 봤지만, 무엇보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머리를 싸매듯이 고민하고 쓰고 읽고를 거듭하는 날이 많아졌다.
기환은 우선 영화 제목을 정하는데 오랜 고민을 했다. 방개가 기환이 현충사에서 혼자 바람을 쏘이며 그 마당을 도는 멀리서 보고 빠르게 걸어와서 그에게 낮에 시장에서 사다 논 호떡을 한 봉지 내민다. 기환이 온양장에서 파는 호떡을 좋아해서 방개가 낮에 시장을 보러 장에 들렸다가 미리 사다 놓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달빛이 쏟아지는 풀숲에 주저앉았다. 기환이 식은 호떡을 맛있게 먹는 걸 보자 방개의 마음도 별거 아닌 것에 맛있어라 하는 기환이게 고맙기까지 한 마음이 든다.
"자네 말여 그런디, 이순신 장군 영화 제목은 뭐라구 지을 거여? 내가 그게 궁금혀서 어떤때는 잠이 안 오네 그려. 아직두 제목 지을려문 멀었남."
"글쎄유, 저두 그게 고민이여유. 저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사실 거북선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넣고 싶어서 '군함 거북선'이라고 짓고 싶은데, 영화의 주제를 좀 더 깊이 연구해야겠지요. 과연 거북선에 이순신을 다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저는 이순신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두가지라고 보거든요, 하나는 그의 정신이고, 하나는 거북선이라고 봅니다. 거북선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그 전쟁에서 과연 승산이 있었겠는가 싶은거고, 그렇다면 거북선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거북선에는 어떤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를 그려보고 싶은거지요. "
"군함 거북선이라고, 내가 생각할 땐 멋있는데 그려. 누가 딴 소리를 할라는지는 물러두 이 나라에 거북선이 없었으문 우리는 임진왜란에 졌을 거 아녀."
기환은 영화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누구를 만난 적이 별로 없어서 인지 방개 아저씨가 자기가 정한 영화 제목 '군함 거북선'에 대해 호감을 표해주자 마음에 흐뭇하고 기뻤다. 그 제목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을 때 과연 영화가 성공하리란 보장은 지금은 일 퍼센트로 가능성을 타진할 수는 없었지만, 기환은 나름대로 처음 만드는 영화에 자신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영화의 제목은 영화 전체에서 삼십 퍼센트 이상 차지한다고 생각을 했다.
기환은 소설을 쓰면서 그동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자세에서 매일매일신문에 연재소설을 써왔었기에 자신의 예술성은 나름대로 고집도 있고 아집도 있는 소설가였지만, 영화감독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고 나가야 하는 첫 번째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며 각본까지 써야 하는 입장에서는 큰 한계도 느껴졌다.
더구나 첫 영화에서 주제의식이 흐려지거나 예술적 감각이 없는 영화를 만들어 낸다면 역사적인 의미는 당연히 망칠 수도 있다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환은 호떡에 달달한 흑설탕 맛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준 것에 고마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아저씨 가시죠, 제가 빈대떡하고 막걸리 한잔 드시러 가시죠. 호떡이 너무 달고 맛있어서 갑자기 막걸리가 한 잔 땡기네유. 온양 장터로 갑시다유. 막걸리는 장터에 있는 빈대떡집에 맛있더라구유."
"아휴,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실 감독님하구 지 같은게 또 막걸리 마시러 가두 되나유."
방개가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어리 산 너머로 보름달이 휘영청하고 넘어가며 현충사의 전체적인 모습이 훤히 비치었다. 그리도 멋있고 웅장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방개는 기환이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많은 생각이 하는 것이 자기가 이순신의 연작시를 쓰는 고민과 같은 고민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저 마음에 하늘에 걸린 보름달처럼 환하게 빛이 들어왔다.
기환이 온양에 내려와서 온양관광호텔에 머물며 영화의 줄거리를 대충 잡은 후, 다시 음봉면에 시골집을 얻어서 작업실로 꾸민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 기환은 영화 '군함 거북선'이란 제목으로 각본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연출 공부는 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혼자 하는 편이었다.
기환은 소나기가 퍼붓는 초여름에 작업실 마루에서 마당에 피어있는 붉은색 함박꽃이 비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며 '군함 거북선' 영화 각본의 프롤로그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붉디붉은 함박꽃이 이처럼 아름답게 보인 적이 없었다. 각본의 프롤로 그을 써내려 가는 가슴이 심장에 폭죽이 터지듯이 뛰기 시작했다.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