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순신의 집무실) 비 오는 밤, 프롤로그
자막 -
1592년 4월 14일 묘시에 부산포 우암에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어
왜군이 동래성과 부산성을 함락하였다.
복숭아꽃이 활짝 핀 나무 한그루 서 있고, 꽃잎들이 비바람에 처참히 흩어진다. 꽃잎들 사이로 날카롭고 큰 이순신 장군의 칼이 보인다. 장인이 하사한 칼로 크기가 2미터에 가깝다. 큰 칼을 잘 다듬어 칼집에 꽂고 차분히 앉아서 먹을 갈고 붓을 드는 이순신 장군. 비장한 얼굴이 칼에 거울처럼 반사돼서 보인다.
그때 울타리 안에 있던 개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온 여우에게 먹히는데, 참혹하리 만치 개가 물어 뜯기고 있다. 그러나 개도 사납게 짖으며 막 대응을 하는데, 아무도 그들의 혈투를 보는 사람이 없어 결국 개가 창차가 다 물어 뜯길 정도로 죽엄을 당한다. 피가 낭자하게 흘러서 담장 아래 흩뿌려져 있고, 개는 죽은 채로 질질 끌려서 여우에게 산으로 끌어올려간다. 여우 새끼들 모여 있다가 개를 물어뜯어먹는다.
자막 -
난중일기. 4월 - 임진왜란이 발생하다.
17일. 병오. 궂은비가 오더니 늦게 갰다. 영남 우병사 (김성일)가 공문을 보냈는데, "왜적이 부산을 함락시킨 뒤 그대로 머물면서 물러가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 늦게 활 5 순을 쏘았다. 이전 복무한 수군과 급히 복무하러 나온 수군이 잇달아 방비처로 왔다.
2. 동헌의 오후 2시 정도.
이순신 장군 동헌에 서 있을 때 급하게 순찰사의 공문을 들고 달려온 군관
군관 : 장군, 동래도 함락되고 양산, 울산 두 수령도 조방장으로서 성으로 들어갔다가 모두 패했다고 합니다.
이순신 비통하고 원통함에 가슴을 부여잡고 울분을 토한다.
3. 산속 밤늦은 시간.
산에 끌어 올라간 개가 처참하게 물어 뜯긴 것을 보고 병사 몇이 개의 시체를 구덩이를 파서 묻어 주고 내려온다.
밤 이슥한 시간, 이순신 붓을 들고 난중일기를 쓴다.
자막
20일. 기유. 맑음.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영남 관찰사의 공문이 왔다.
"큰 적들이 맹렬하게 몰려와 그 날카로운 기세를 대적할 수가 없으니, 그 승승장구함이 마치 무인지경에 든 것 같다. 고 하면서
"전함을 정비해 가지고 와서 구원해 오도록 장계로 청했다."라고 했다.
이순신 개의 처절한 울음소리 같은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기환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의 제목을 정하고 각본의 첫 장면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 쓰는 영화 각본이지만, 기환은 그동안 소설을 쓰던 습관처럼 집중하고 또 집중을 하면 일 년 안에 완성된 각본이 나오리라 자신을 믿었다.
어떤 제작자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 제작비도 책정된 바가 없지만, 기환은 꼭 한국영화사에 남을 만한 영화를 만들리라 마음을 먹었고, 그 일에 자신도 마음을 다른데 빼앗기지 않으려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도 한 달에 전화를 한 두 번 밖에 하지도 않을 정도로 모든 이에게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기에 그다지 그의 아내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은 평정심이 충분했다.
방개가 급하게 기환의 집 음봉면을 찾아와 문을 두드린 것은 첫 프롤로그를 한 페이지 정도 겨우 썼을 때였다. 문밖에서 기환을 부르는 방개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이봐, 기환이 큰일 났네."
방개가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온 것을 보니 큰일이 난 것이 분명했다. 기환이 방문을 열고 대청마루로 급히 나가보았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세요."
"응, 철희가 큰 일을 냈네. 경찰서에 잡혀갔어."
"네, 뭐라고유. 경찰서에유."
"그려, 나쁜 친구를 사귀었나 봐 요새. 친구들하고 남의 집에 오토바이를 훔쳐서 타고 돌아다니다가 잡혔다나, 그래서 절도죄로 경찰에 잡혀 있다고 연락이 와서 가봤는데, 물건이 워낙 비싼 거라서 금방 대화가 안 되네, 오토바이 주인이 얘들 셋을 다 감방에 넣는다고 야단이 아닐세. 어떡하나 이걸."
"아이코, 드디어 또 터질 일이 터졌구먼요."
"그러게 말여, 그 녀석이 화가 시계 훔칠 때부터 내가 큰 걱정을 했는데, 오토바이도 좀 비싸게 아니잖아, 쌀이 거진 50 가마니 가격이니 , 그걸 훔쳐서 나쁜 친구들하고 타고 다녔다고 하니 주인이 당연히 감옥에 쳐 넣은다고 노발대발이지. 그것도 워낙 무서운 건달 꺼요, 온양 깡패 중에 이름난 인간이여, 그런데 그런 거를 훔치다니."
"도로 찾았으니 , 그 사람이 얘들을 용서만 해주면 될 텐데, 그게 쉽지가 않겠구먼요. 사람이 또 그런 사람이라면."
기환도 갑자기 원고를 써야 할 힘까지 빠지는 듯이 가슴이 털썩하니 주저앉았다. 철희가 고아로 살면서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고 살았던 세월이 길다 보니 잠자고 있던 그 애의 숨겨진 습관이 다시 드러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기환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요즘 우리가 영화다 시다 해서 이순신 장군만 좋아했더니 얘들이 사랑도 고프고, 관심도 고프고 그랬나 본데, 엉가나 덕구네 조카들은 좀 괜찮은가요."
"그럼, 그 얘들은 다 정상이지, 그 정도면 학교 잘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니까, 그런데 철희도 그림도 잘 그리고 좋았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됐지. 증말루, 내가 그 얘한테 신경을 들 쓴 모양이여 요새."
방개는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었다. 겨우 철희의 마음이 잡히는가 싶었고, 이제 미술 실력도 꽤 좋아졌는데, 미대 입시 날이 코앞인데 이런 사달이 났으니 그에게도 낙망이 컸던 것이다. 기환은 방개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그의 마음을 먼저 안심을 시켰다. 사람이 사고를 칠 때는 전조증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철희의 이상한 행동들이 궁금했기 때문에 둘은 잠시 말없이 철희가 근래에 엉가에게 자꾸만 관심을 보이던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엉가가 철희에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냉정하게 쏘아붙이는 것을 몇 번이나 본 을 방개는 떠올렸다.
엉가의 마음을 사고 싶었던 철희의 방황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동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방개의 말에 기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아침에 철희는 오토바이 절도 사건으로 두 명의 친구들과 갑작스레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