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에린은 토토를 안고 강진의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토토를 진단한 의사가 약간 굳은 표정으로 에린과 토토를 대했다.
"강아지 이름이 토토라고 했지요. 어떡하죠. 이 강아지는 간암이에요. 진행이 꽤 많이 되었는데, 수술하기도 늦은 것 같고."
수의사는 토토의 배를 만져보고 옆구리를 만져보고 했다. 에린은 멀리 동물병원 바깥으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한그루가 짙은 초록빛을 띠며 잎사귀들이 태양에 몸을 태우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무도 저리 잘 자라는데 왜 엄마도 떠나고 토토마저 암이란 말인가. 에린은 슬펐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어떤 언어의 소리들이 거리의 자동차 클락션 소리보다 강하게 들려왔다.
'시를 써봐, 시를 써보란 말이야. 너를 불태울 시를 써 보란 말이야. 이상이 말해줬잖아,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하고 어젯밤에 너에게 말해줬잖아. 시를 쓰다 보면 좋아질 거야. 너도 좋아지고, 토토도 좋아질지 모르잖아.'
에린은 그것이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내면의 큰 갈등과 울분과 눈물과 한숨에 소리에 섞인 어떤 열정이 들끓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이 그저 시를 써야 한다는 강렬한 자신의 소리가 가슴에서 들려왔다.
"암수술도 힘들 거 같고요. 이제 그냥 강아지한테 먹일 수 있는 거 잘 먹이고, 운동 잘 시키시고, 잘 돌봐주시고, 정기적으로 병원에를 좀 데리고 와 보세요.'
수의사가 토토를 진찰대 위에서 내려놓으며 에린에게 말했다. 에린은 토토를 안아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에게 뺨을 비비고는 돈을 계산하고 동물병원을 나와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에린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걷고, 시내버스를 타고 숙소인 별농장으로 돌아왔다. 여름날의 작열하는 태양에 토토도 지쳐서인지 둘은 에어컨을 켜 놓고 한참을 낮잠에 빠져들었다. 토토는 기운이 없는지 얼마 못 자고 낑낑거리며 에린을 흔들어 깨웠다. 에린은 토토에게 시원한 물을 주고 간식을 꺼내주고는 거실 문을 열고 마당에 핀 노란 채송화와 빨간 채송화를 바라봤다. 그리고 에린은 진수에게 카톡을 보냈다.
"진수야, 우리 토토 간암이래. 그리고 나 한 학기 휴학할 거야. 토토랑 운동하면서 여기 강진에서 다시 시를 써보고 싶어. 오늘 그렇게 결정했어. 난 엄마를 지켜줘야 했는데 서울로 간 건 아닌지 몰라. 왜 자꾸 오늘 그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럴 수 없는 것도 있듯이.... 에린아 엄마는 네가 서울로 떠나서 그렇게 되신 건 아닐 거야. 엄마의 인생은 강진에서가 마지막 이셨겠지. 광주로 가지만 안 했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 이건 내 생각이고. 휴학은 좋은 생각 같기도 하다. 네가 쉬었다가 다시 공부해도 되니까. 그리고 여기서 시를 쓰는 것은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될 거라고 믿어. 토토도 여길 좋아하겠는걸."
진수는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에린의 감정을 건드리고 싶지가 않았다. 원래 말도 없는 에린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 자신에게 의지하고 기대는 것만으로도 그는 고마웠고, 에린과 긴 사랑을 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을 진수는 언제나 생각을 하는 편이라서 그는 에린과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에린은 여름이 다 끝나갈 무렵, 학교를 휴학했다. 그리고 다시 강진으로 돌아와 엄마랑 살던 빌라 동네로 이사를 했다. 이십 년 동안 엄마와 살던 빌라보다는 좀 더 작은 평수를 택해서 에린은 빌라를 샀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준 돈 1억을 가지고 산 것이었다. 에린은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서울에는 다시 못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강진에서 시인이 되고 사진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꼭 나와야 하는 이유도 이제는 모르겠고, 대학을 나와야 시인이 되는 것도 아니니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게 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에린은 엄마의 죽음 이후 서울에서 찾을 수 없었던 안정감을 강진에서 다시 찾고 싶었다.
에린은 토토를 데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김영랑 시인 문학관에 자주 들렸다.
그리고 에린은 김영랑시인의 문학관 언덕에 앉아서 예전처럼 시를 썼다.
엄마의 피아노는 울지 않는다.
나는 엄마의 유품인 피아노를 들여 놓기 위해 빌라를 샀다. 엄마가 떠난 후 피아노는 물품 보관소에 맡겨져 있었고, 밤마다 엄마의 피아노 소리는 내 심장을 두드리고, 내 강아지 토토는 암에 걸렸다. 그러나 내가 먼지 쌓인 엄마의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았을 때 엄마의 피아노는 울지 않았다. 내 엄마의 피아노는 주인이 바뀐 지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아도 슬퍼하지 않는 걸까. 엄마에서 딸로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니까.
내가 이상의 '날개'를 녹음할 때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사진전시회를 준비했다. 그리고 엄마는 거리에서 이상처럼 날자, 날자, 날자, 를 외쳤던 것 같다. 세상이 아닌 더 먼 영원한 세계로 날아가기 위해 그렇게 날고 싶어 했던 엄마의 영혼이 이 지상을 떠나 어딘가로 날아갔다는 것이 내게는 지상에서의 모든 것과의 작별 같기도 하다. 날개가 없는 엄마는 어디로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나는 엄마의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아서 비 오는 날 피아노를 친다. 엄마가 특별히 좋아하던 쇼팽의 녹턴과 야상곡을 치다가 피아노 협주곡 1번도 쳐본다. 그렇게 빗소리보다 더 영롱한 엄마의 피아노 소리는 내 가슴에서 별빛처럼 울려 퍼지고 나는 엄마의 피아노 앞에서 다시는 울지 않으려 한다. 강진의 바닷속으로 쇼팽의 곡들이 빠져들어도 모래톱처럼 가늘고 슬픈 짐승인 내가 울어서 무엇이 바뀌랴. 슬퍼하지 않는 것을 더 기뻐할 엄마의 피아노가 내 앞에 있을 뿐이다.
터치뿐인 세상에서 나는 피아노를 꾹꾹 누르며 손가락에 가끔은 힘을 주고 어제 산 카메라의 셧터를 누른다.
세상 밖 세상이 보고 싶어서.
아니, 세상 그 먼 곳에 있지 아니한 내 안의 내면을 보기 위해서.
거리에 서 있는 감나무도 찍고, 정원에 소나무도 찍고, 빌라 한 귀퉁이 핀 여름 꽃들, 가을꽃들,
꽃들아 피어라, 꽃들아 피어라. 밤에도 피고, 낮에도 피고, 아침에도 피어라.
어느 사막에서 편지가 오는 날에 나는 날고 싶었던 엄마의 그 긴 기다림과 서글픔과 외로움에 답장을 쓰련다.
엄마의 피아노는 울지 않고 아직도 이 지상에서 잘 있다고.
나의 손가락을 타고 가끔씩 소리를 내며 내 곁에서 강아지 토토가 그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고 있다고
엄마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련다. 감꽃이 떨어지고,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창가에서 또 희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 창가에서 나는 가끔씩 엄마의 피아노를 칠 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