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언제나 그리움에 도달해서 에린에게도 강진은 그리움의 시작이고 끝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에린은 강진이 가장 먼저 가고 싶었다. 그녀는 토토를 데리고 강진 갈 준비를 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묻고 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에린은 여름방학 내내 있을 곳을 찾고 찾았다. 다행히 엄마에게 꽃을 대주던 별농장 아저씨가 쓰고 있던 시골집을 두 달 동안 쓰라고 허락해 주셨기에 에린은 토토가 마당에서 실컷 뛰어놀 수도 있어서 그곳에 가기로 했다.
별농장에는 엄마가 수시로 꽃을 사러 다니던 농장이었고, 주인아저씨가 쓰고 있던 허름한 시골집은 농장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시골집이지만 마당이 널찍했는데, 채송화 꽃이 흙을 덮을 정도로 노랗고 빨간 채송화가 시골 마당에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토토를 흙마당에 내려놓자 토토는 채송화꽃들 때문인지 무척이나 신이 나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별농장 아저씨는 에린에게 집 키번호를 가르쳐 주고는 에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예전의 그 사람 좋은 웃음만 지어주고는 가셨다. 아저씨의 푸근한 마음이 에린의 슬픔을 스치듯 잠시 지워줬다. 20년 단골이던 엄마가 꽃가게를 정리했을 때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사진작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지지했던 아저씨가 에린에게 무척이나 마음을 쓴 것이 거실을 열고 보니 알 것 같았다.
냉장고에 가득 채워진 야채와 과일들 그리고 고기들이 아저씨의 마음을 알게 했고, 거실 한쪽 구석에 세워놓은 새 쌀 포대와 새 이불과 요가 포장지채로 거실에 놓여 있었다. 아저씨의 세심한 배려를 한눈에 읽은 에린은 순간 눈물이 고여 들어서 토토가 뛰어다니는 마당을 쳐다보았다.
강진에서 에린은 그리움을 삭이는 시간들을 보내려고 애를 썼다. 엄마를 마음에서 떠나보내기 위한 그리움의 애도기간을 가지려고 주로 엄마와 함께 갔던 시장과 골목과 근처에 여행지를 토토와 둘이서만 돌아다녔다.
에린은 다산초당 한옥 마루에 앉아서 엄마가 이 강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떻게 살았을까를 한참을 생각을 했다. 마음을 비워도 비워도 힘들었을 것 같았을 엄마는 결국 딸인 나를 위해서만 이 강진에서 살았다는 생각만 들었던 것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어린 시절부터 다니던 다산초당과 사의재였지만, 엄마가 좋아한 정약용 선생님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이제 에린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에린은 엄마의 마음이 있던 사의재의 주막과 한옥 거리를 자주 걸어 다녔다. 그런데 여름 방학이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토토에게 이상한 증상이 자주 보였다. 자주 토하고 어느 날은 물도 잘 먹지를 못하는 것이 아닌가. 에린은 토토를 안고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언제부터 이랬죠? 아무래도 강아지가 암에 걸린 것 같기도 한데요. 자세히 찍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에린은 토토가 살던 곳이 바뀌어서 끙끙거리거나 먹은 것을 도로 토하는 증세가 있는 줄만 알았는데, 강아지에게 암이라니 에린으로써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에린은 동물 병원을 나오면서 강진에 와 있는 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강아지도 암 걸린다는 얘기 처음 들었어. 우리 토토 진짜 암이면 어떡하지?"
진수는 에린이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알기에 강진에서는 더욱 에린을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친구들과의 사이에 이상한 소문도 에린이 조심스러워했고, 진수도 그런 에린에게 자주 얼굴을 보이지는 않으려고 애를 쓰며 전화 통화만 자주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에린이 점점 더 토토에게 마음을 애지중지하는데 만약에 토토가 암이라면 에린이 이중으로 슬퍼할 것이 눈에 선했다.
"아닐지도 몰라, 너무 걱정하지 마 에린아. 오진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마음을 너무 쓰지 말고 편히 있어야지. 나랑 오늘 밤에 바다에 바람이나 쏘이러 갈까, 토토 데리고, 토토 바닷가에서 뛰어놀게 말이야."
강진의 바다는 참으로 잔잔했다. 갯벌내음이 코끝에서 짠내를 풍겼지만, 그래도 밤에 온 여름 바다는 시원했다. 별무리가 아름다이 어둡고 캄캄한 에린의 마음에 내려와 밤별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냈다. 그때 진수가 살며시 잡고 있던 에린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 에린은 생각했다. 유기견 토토, 그리고 강진 유배지에 살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을 좋아한 엄마 그 엄마는 남자에게 버림받고 20년을 강진에서 자신도 유배자처럼 살지 않았던가. 그리고 남자친구 진수. 어쩌면 이제 자신에게는 진수만이 조금은 오래 자신의 곁에 있어 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에린은 진수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 처음으로 가슴이 저 밑바닥에서 고여온 첫사랑의 가냘픈 설렘으로 가슴이 떨려왔다. 그리고 에린은 누군가에게 스무 살이 빨리 지나가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에린은 그날 밤 이상의 소설 '날개'의 마지막 몇 줄을 녹음하는 것으로 이상의 소설의 끝을 맺었다.
에린의 낮고 차분한 저음에 의외로 구독자는 무척이나 빨리 늘어나서 한 학기 동안 가끔씩만 녹음을 틀어 놓고 이상의 소설 '날개'를 녹음한 것에 비해서 에린의 유튜브 구독자수가 어느새 300명이 넘어섰다.
소설 작품 하나를 천천히 녹음한 것에 비해서는 너무 많은 구독자가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