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이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에린의 엄마 해영의 마음에는 그동안 삶을 견디어 왔던 기둥들이 하나 둘 부서지기 시작했다. 책임감이란 삶의 기둥을 붙들고 에린을 이십 년 동안 혼자 키웠다면 그 책임감이 에린에게 독립심을 키워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고, 꽃집을 통해 생계라는 기둥을 붙들었다면 이제는 다시 사진작가로 돌아가서 꽃집을 하면서 방황하던 마음을 다시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해영은 그래서 그동안 모았던 적금을 깨치고 꽃집을 정리하고 그동안 에린과 함께 살던 빌라를 팔기로 했다. 그리고 에린에게 자신의 마지막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1억 원이란 돈을 정리해서 주기로 했다. 그 돈으로 학교를 다니던 결혼을 하던 유학을 가던 그 모든 것은 에린이 스스로 알아서 책임을 지라는 의미로 스무 살 에린에게 1억이란 큰돈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알아서 살라고 하고 자신과의 삶을 경제적인 면에서 분류하기로 했던 것이다.
해영은 그런 자신의 생각을 긴 편지로 썼다. 그리고 에린에게 줄 봄 원피스도 한 벌 사서 예쁘게 포장을 해서 원피스 안에 엄마의 기나긴 편지를 써서 택배로 보냈다.
해영은 어쩌면 에린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서운하다고 아니면 욕을 하고 화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해영은 에린이 없는 강진에서 더 이상 꽃집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별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고, 이미 그런 일에 수순은 오래전 해영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기에 에린을 설득하기 위한 긴 편지를 쓴 것뿐이었다.
에린은 엄마에게 온 뜻밖의 편지에 당황을 했다. 엄마가 보낸 소매가 긴 쉐폰 원피스의 색깔은 참 고급스럽고 에린이 좋아하는 긴 원피스라서 무척 좋았지만, 엄마의 편지 내용은 그녀에게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꽃집을 정리하는 것은 에린도 찬성을 하고 싶었다. 나이 든 엄마가 꽃집을 하기에는 어울리도 않고 벅차 보였던 터라 그것은 아주 찬성을 하는 일이었지만, 자식과 같이 살던 집을 판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엄마가 어디로 이사를 가든 그곳에 분명히 자신도 방학이면 가 있거나 취직을 해도 가끔씩은 가 있을 것이고, 어느 때는 엄마랑 다시 살지도 모르는데.... 엄마는 그런 걸 다 배제하고 이제 자식과는 따로 살고 싶다는 의미로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린은 엄마가 다시 사진작가로 살아가고 싶다는데 모든 힘을 실어 주기로 하고 엄마와 분리를 결심했다. 경제적 분리와 정신적 분리 그리고 육체적인 분리까지 결심한 것이었다. 스무 살 ,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도 부모랑 헤어지는 얘들도 있는데 이 정도는 성인이면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었다.
엄마도 엄마의 삶을 살아가고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에서 이제 엄마 나이가 육십이니 여기서 한 번쯤은 자신을 되찾는 것이 마땅하다고 에린은 생각했다. 에린은 그리고 1억이란 큰돈을 주고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하는 엄마의 삶에 대한 태도가 사실 고맙기도 했던 것이다. 에린은 자신을 믿어주고 기대하는 엄마를 위해서 에린도 반드시 좋은 글을 쓰리라 마음을 먹고 에린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반드시 시인으로 데뷔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에린의 마음은 한편으로는 슬펐다. 나이가 많은 엄마로서는 이제 자신이 기댈 수 있는 한도가 정해진 것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의 엄마에 비해서 슬픈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육십이 된 엄마가 다시 사진작가의 길에 들어서서 무엇을 찍을지는 기대도 됐다.
에린은 엄마와 밤새도록 통화를 하고 날이 밝자, 한강까지 버스를 타고 나갔다. 서울에 와서 한강에 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강가에 서서 에린은 자신이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진수에게 모닝커피와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진수는 급하게 오느라고 차를 몰고 마포 한강 대교 근처로 나왔다. 진수와 에린은 계란 프라이가 든 햄버거를 먹고 모닝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둘은 한강을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시피 했다. 에린의 가슴에 들어 있던 엄마에 대한 무거운 중심축이 그날 이상하게 진수에게 조금은 옮겨가는 것을 에린은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진수가 어느 순간부터 에린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싫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아서 에린은 자신의 감정이 진수에게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던 날이었다.
에린은 진수가 사준 토토의 먹거리를 들고 원룸에 들어와 토토에게 먹을 거를 주고 가만히 토토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건 어쩌면 진수에게는 다 하지 못한 말을 토토에게 하는 것 같은 그런 내용들이었다. 깊은 밤이 되어서 에린은 다시 유튜브에 녹음장치를 켜고 이상의 '날개'를 이어서 읽어나갔다. 에린은 녹음을 하면서 천재작가 이상의 목소리를 상상해 봤다.
아마도 이상의 목소리야 말로 일제강점기에 박제가 된 천재의 목소리는 아니었을까 싶었다. 가냘프고 애처로워서 누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를 잘 모를 소리처럼 낮고 음울하기까지 한 목소리는 아니었을까? 하고 에린은 이상의 소설을 읽으며 나지막이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실어 보았다.
아직은 스무 살인 에린이 엄마와의 분리를 받아들이기는 조금 힘겨웠던 하루였는지 에린은 책을 녹음하다 말고 토토의 털을 쓰다듬으며 어느 사이 깊은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놓을 것 같소.
위트와 패러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19세기는 될 수 있는 한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싶소.
해영이 꽃집과 빌라를 처분하는 데는 한 달 정도밖에 걸리지를 않았다. 해영은 다시 광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사진관을 찾아서 발걸음을 옮기는 해영의 다리는 후들거렸고, 에린의 아빠가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광주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가슴이 떨리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애써 옛 감정을 지우고 에린의 아빠가 하고 있는 아버지의 커다란 사진관 앞에 서 있었다. 삼층짜리 빌딩 일층에 사진관이 있고 이층과 삼층은 웨딩홀로 아주 잘 꾸며져 있어서 이제는 아버지가 사진관을 운영하던 옛날과는 아주 달라진 모습이었다.
해영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잠재우기 위해 급하게 사진관 건물에서 자리를 피했다. 어쩌면 이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에린의 아빠가 그 사진관에 아직도 살아서 사장 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더 급하게 자리를 피했던 것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던가. 해영은 저급한 속담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치가 사람의 이치에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을 망하게 한 남편을 쉽게 용서할 수 없었고,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자신이 감정이 들끓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 자리를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더 낳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해영은 자신이 그 남자를 이기는 길, 복수는 오직 자신이 다시 카메라를 잡고 사진작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늦은 나이 육십에 해영이 이십 년 만에 카메라를 잡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목적은 그 어떤 복수심도 아니었고, 그 남자를 이길 마음은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살아가는 목적이 에린이 아닌 사진, 그저 단순히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던 사진 찍기이기만을 바랜 것이었다.
해영은 사진관과 건물은 남편에게 사기를 당했지만, 아버지의 유품인 카메라와 아버지의 사진 작품 만은 간직하고 있었기에 이제 다시 광주에서 아버지의 사진전을 열기로 했던 것이다. 이십 년 만에 아버지의 옛 명성을 되찾아 드리고 자신도 다시 사진에 몰두하고 싶어서 그녀는 서둘러 아버지가 하던 사진관 건물을 벗어났다.
에린은 남편의 사기성을 알아보지 못한 젊은 날을 후회했지만 그것은 이제 와서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돈 보다 더 가치 있는 선택은 해영에게는 딸 에린이었고, 지금은 이제 그 큰 책임감도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에린이 컸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자신의 새 길을 지지하고 싶어 하는 어린 딸과의 긴 통화 이후 오히려 해영은 큰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에린은 해영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성숙했고, 삶을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깊은 생각의 소유자였던 것이 그녀로서는 너무나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해영은 아버지의 유고 사진전을 통해서 작품이 팔리면 그 돈으로 전적으로 사진만 찍으러 다니기로 한 것이었다. 해외에 가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도 많이 필요할 것이고, 작가들과의 교류나 생활비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해영은 아버지의 유고 사진전을 통해서 작품을 팔기로 했다. 해영은 아버지의 유품이 결국은 자신에게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가는 댓가로 지불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작가 딸이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서 아버지의 사진을 판다면 그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거라고 해영은 생각하기로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