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산다는 것.

by 권길주



에린은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나름 좋아졌다. 좁은 강진을 벗어나 익명의 도시로 이사를 온 것도 좋았지만, 서울에는 어떤 큰 힘이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그녀에게도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살기 위해 그리고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또 마음 한쪽은 서글퍼졌다. 낙오되고 싶지 않으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은 곧 추락할 것만 같은 빌딩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와 책들을 읽기에는 서울은 최적의 지적 공간이었다.


에린은 토토와 산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갔다. 진수라는 지원병이 토토 때문에 생긴 건지, 아니면 자신을 좋아하는 것 때문에 진수가 토토를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진수는 토토에게 줄 사료와 간식을 사가지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에린이 일하고 있는 편의점에 찾아왔다.


원룸 골목에 있는 편의점에서 에린은 운 좋게 주말마다 일을 하게 되었다. 꼬박 이틀을 일하면서 번 돈으로 에린은 엄마에게 큰소리친 대로 원룸의 월세는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학비와 용돈은 엄마에 지원을 받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 또 서울이었다. 그런데 토토에게 먹여야 할 사료값과 간식비는 뜻하지 않게 준수가 토토를 보러 오기 위해 때로는 사다 주고, 시간이 없을 때는 에린이 일하는 편의점에 사놓고 갔기 때문에 에린은 토토에게 진수를 당분간은 '먹거리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토토도 진수가 오면 자기 먹을 거를 사가지고 오자, 에린을 평상시 볼 때와는 전혀 다르게 애정공세를 심각하게 할 정도였다. 진수는 토토에게 먹거리를 주고는 십분 정도 에린의 방에 있거나 토토를 한 번 안아 주는 정도로로 잠깐만의 시간을 보내고는 차를 몰고 강남의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곤 했다. 에린은 진수의 그런 절제 있는 행동과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섣부르게 하지 않는 진수에게 차차 자기의 빈 마음에 남자에 대한 믿음이란 나무가 자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나무에 물을 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햇빛과 바람을 쏘여주면 또 어떻게 되는 거지."


에린은 진수에게 연애감정이 생겨서 진수라는 인간의 나무에 물과 햇빛과 바람을 쏘여주게 될까 봐 자신을 은근히 추스르려 해도 가끔은 그 바람이나 햇빛이 흔들릴 때가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물주전자를 들고 그에게 다가가 어딘가 메마른 둘의 사이에 물을 붓고 있는 자기의 마음을 본 적도 있었다.





에린은 엄마가 이번 달에는 학기 초라서 그런지 꽃다발도 좀 팔리고, 봄에 집안 분위기를 바꾸려는 주부들이나 관공서에서 화분을 많이 사갔다고 아주 신이 나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엄마의 전화 말미에는 에린의 친구 세윤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에린아, 네 친구 세윤이가 어제 엄마 꽃집 앞을 지나가길래 내가 불러서 내하고 꽃집에서 커피 마시면서 얘길 좀 했거들랑, 그란데, 그 아가 좀 이상하드라. 그 아가 재수 한다고 했지. 그란데, 지금 재수도 때려치우고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하고 논다카드라."


엄마는 세윤이를 만나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는지 평소에 감정이 과할 때 튀어나오는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서 말이 나왔다.


"엄마, 세윤이 걱정 마라. 그 아 정신력 세다. 원래 공부도 잘해서 나하고 맨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잖아, 재수 한 달 논다고 성적 떨어질 애도 아니고, 지그 집에 돈 무진장 많잖아, 엄마도 유명하신 화가고 그런데 엄마가 뭐 그리 걱정을 해 쌋노."


에린도 평상시 절제하던 전라도 사투리가 세윤이를 걱정하는 엄마말에 화가 났는지,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오며 그녀의 말도 약간 투박한 뚝배기처럼 모양이 없었다. 에린의 세윤에 대한 질투심이 어딘가 생채기처럼 발동한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누르려고 엄마의 전화를 서둘러 끊어버렸다.


세윤은 전라도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에린의 친구였다. 에린은 세윤의 그림은 따라가려야 갈 수가 없는 길이였다. 타고난 천재 화가의 끼를 가진 학생이 세윤이었다면 에린은 타고난 시인의 감수성을 가진 학생이었기에 둘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늘 대회에 상을 타고 서로 보이지 않는 경쟁자였다.


그러나 에린에게 세윤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다. 에린은 화려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고 어딘지 육감적인 친구의 매력을 가끔씩 두려워했다.


에린은 친구지만 세윤의 마음을 가까이서 나눌 때마다 두려운 것도 있었던 것은 세윤은 대대로 남도에서는 유명한 화가 집안에 자손인데, 그 집안에 그 놀라운 천재성은 세윤이 평범한 화가의 길을 가지 않게 되리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이다.


에린은 자신이 쓰는 시가 결코 그 천재적인 집안의 화풍이나 끼를 넘어서지는 못하리라는 어떤 이상한 절망에 사로잡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가 잘 되길 바라지만, 자기보다는 훨씬 우수한 유전인자를 타고났다는 열등감에 그리고 세윤의 집안에 그 부와 명예를 자기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세윤의 할아버지와 에린의 할아버지는 같은 광주에서 아주 유명한 화가와 사진작가였다. 그러나 세윤의 엄마는 광주에 유명한 대학에 미대 교수와 결혼을 했고, 두 사람은 프랑스로 유학도 다녀온 중견급에 화가였지만, 세윤의 아빠는 많은 유작과 유산을 남기고 얼마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에린의 아버지는 에린과 에린의 엄마를 버린 비정한 사진작가였다. 그리고 에린의 할아버지는 에린의 아빠에게 사기를 당하고 아무것도 남겨준 것이 없지만, 세윤의 할아버지는 지금도 광주에서 유명한 화가로 그의 딸인 세윤의 엄마가 가는 길에 당당히 빛을 비춰주는 유명한 노화가였다.


에린은 세윤이 재수를 때려치우고 게임을 하고 논다고 해도 그것은 일종의 고통이 별로 없는 일탈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일탈을 한다 해도 세윤은 어느 날 자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세계로 날아가 프랑스나 영국, 아니면 그녀가 원하는 어느 나라에 어느 대학에든 미대에는 당당히 자기 이름을 걸고 합격하리라는 생각했다.


에린은 방 한구석에서 잠을 자는 토토를 안고 자기 침대에 누웠다. 친구에게 다른 분야에서 경쟁을 느끼지만, 그것이 그 친구에게 영원히 받아야 할 열등감이라면 에린은 세윤과 언젠가는 당당하게 맞서서 싸우고 싶어졌다. 에린은 그것이 자신이 한글로 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짓는 일이어야 한다고 또 다짐을 하면서 세윤의 가장 멋진 작품에 자신이 지은 시로 가장 아름다운 축전을 띄워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보는 게 그녀의 또 다른 꿈 중에 하나였다. 에린은 토토에 등을 어루만지며 자신이 가진 꿈과 소망이 세윤을 향한 진실한 우정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왜냐하면 에린은 진심으로 세윤을 사랑했기에 그 친구와의 이런 경쟁은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자신을 안위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한 예술가라면 질투라는 자신의 감정도 결국은 작품으로 최대한 승화시켜야 마땅한 것이 자신도 예술가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다.



에린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은 아름답고,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자신의 존재는 누구에게 그다지 아름다고 소중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사는 삶이 서글퍼졌기에 토토의 옆구리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며 잠이 들었다.


서울의 밤은 그래서 때로는 에린에게 너무 외롭고 낮설어서 스무살의 에린이 살아가기에 서울은 어쩌면 거대한 공룡의 발자국처럼 그녀에겐 두려웠던 것이다.


에린이 토토의 옆구리에 얼굴을 부비며 틀어논 유튜브에서는 에린이 얼마전부터 시작한 유튜브에서 에린의 차분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에린은 유튜브를 중학교때부터 했었지만, 이번에 서울에 와서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와 소설을 낭송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이번달에는 첫 작품으로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천재작가인 이상의 '날개'를 낭송했는데, 에린의 목소리는 의외로 반응이 처음부터 구독자들에게 반응이 아주 좋았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르적 하도록 할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만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로독스를 바둑포석처럼 늘어놓소, 가공할 상식의 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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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은 유튜브로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가 타인처럼 낮설다. 진수가 사다 준 꽃들이 시들어가가는 침대 모서리에 꽃병에서는 바스락 거리며 말라가는 장미꽃의 향이 은은히 토토와 자신을 감싸안았다. 에린은 잠깐 동안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배도 고팠고, 유튜브에서 더 이상 자신이 읽어가던 이상의 소설 '날개'가 들려오지를 않았다. 에린은 냉장고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먹고 다시 유튜브에서 녹음장치를 켜고 소설 '날개'를 더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에린은 자신이 유명한 시인이 되기보다는 어쩌면 책읽는 낭송가가 되는 건 아닐까 근심도 되었지만, 그녀는 이미 낭송에 깊이 빠져들어갔다. 토토가 깨어나질 않기만 간절히 바라고 에린은 계속 소설을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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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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