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토토야

by 권길주



에린에 방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꼭대기층에 사는 주인아저씨가 내려와서 두꺼집을 열어보더니 금세 고치고 나갔다. 에 린은 다시 방을 나섰다. 아무래도 누군가 강아지를 버리고 간 것이 분명했다. 이사하면서 누군가 강아지를 슬쩍 이 골목에 내놓고 간 것은 아닐까?


에린은 종종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강아지는 원룸 앞에서 조금 전처럼 턱을 땅에 대고 쪼그리고 앉아서 졸고 있었다. 에린은 강아지에게 손을 내밀어 봤다. 졸음에 가득 찬 눈을 하던 강아지가 쪼르르 하고 에린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이었다.


에린은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강아지가 자기 품에 달려들어와 안기는 경험을 처음 한 것이었다. 포근한 털에 감촉이 갑자기 에린의 마음을 붕하고 하늘로 띄우듯이 행복해지는 이상하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에린은 강아지를 안고 골목길 밖으로 나가기로 하고 강아지를 한번 더 품안으로 감싸안았다.


잠깐이라도 먹을 것을 챙겨주고, 주인이 나타나질 않는다면 에린은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었다.

에린이 강아지를 키워보겠다는 생각은 조금은 별난 일이였다. 그녀는 한 번도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도 없었고, 강아지를 사달라고 하면 엄마는 자기가 반려견을 안좋아 하니 그건 곤란하다고 했다. 엄마는 심지어 반려견을 무서워까지 했었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엄마에게는 반려견도 사람을 문다고 그게 몹시나 두려운가 보았다. 무는 동물은 다 싫다는 게 엄마의 논지였다. 어릴 때부터 뱀이나 고양이, 개를 유난히 무서워하고 싫어했다고 하니 그런 약간 유별난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엄마가 사랑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땅에 씨만 뿌려주면 소리도 없이 피는 조용한 꽃들이었고, 물과 거름을 줘서 바람 부는 곳에 잘 내놓면 햇빛에 자라나는 화분에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바다를 사랑했다. 친구도 거의 없고 누구랑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 엄마는 꽃집에서든 집에서든 늘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치는 거 말고는 달리 무엇을 하지는 않았다.


단순하게 살고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절대 돈을 헤프게 쓰지 않는 엄마는 낡은 피아노를 치고, 책꽂이 꽂힌 엄마가 대학 때부터 읽던 오래된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고전문학도 있었지만, 엄마는 역사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사학과를 졸업한 엄마에게 역사책은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엄마가 나온 사학과가 엄마에게는 어떤 직업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고 엄마는 가끔 투덜거렸다.


광주에서 태어나서 광주에서 자란 엄마가 대학도 광주에서 나왔지만, 졸업을 하고 엄마는 15년 동안이나 외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진관에서 외할아버지의 사진관에 심부름을 했다고 한다. 광주시내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외할아버지는 돈을 잘 벌었고, 그 덕분에 엄마는 취직을 하지 않고 외할아버지 사진관에서 사진을 배우며 사진작가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엄마에게 불행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에린의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였다고 한다.


엄마는 늘 그랬다. 자기에게 친정 아버지의 덕은 바다였다면 남편을 만난 불행은 지옥과 같았다고.


그래서인지 에린은 외갓집 식구들에게는 외면당하는 존재였다. 친가에는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지만 아버지란 존재의 얼굴도 사진 한 장도 엄마는 내게 보여주질 않았다. 에린은 아버지 얼굴보다는 멋진 외할아버지의 사진만 거의 매일 스무 살까지 보고 살았다. 그건 엄마가 늘 식탁 옆에 외할아버지의 사진을 걸어놨기 때문이었다. 구레나룻이 멋진 외할아버지는 참 멋쟁이 사진사였던 것 같았다. 수집장이 넘는 외할아버지의 사진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지으며 언제나 유명한 모델처럼 그렇게 사진에 찍혀있었다.


외할아버지도 사진작가였고, 엄마도 젊어서는 사진작가로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엄마는 사진작가로 유명했던 아버지를 만나면서 그리고 에린을 낳고 그와 인연을 끊으면서 엄마는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엄마에게는 꽃을 심고 꽃에게 말을 걸으면서 하나씩 풀려나갔는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꽃들은 사진보다 남자나 연애보다 훨씬 더 세심한 사랑일지도 몰랐다.




"꽃들에게는 세심한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해. 그리고 그 애들은 내 말을 한 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내가 아파도 그 애들은 언제나 날 보면 웃어주거든. 에린아 난 이제는 살아있는 생명이 좋아. 그전에는 내가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면 지금은 어딘가에 숨어서 살고 싶은 마음이란다.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사진작가였고, 외할아버지가 하는 사진관에는 손님들도 많았지만, 광주에서 유명한 화가나 작가들도 얼마나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래서 엄마는 사학과를 나왔지만 나도 외할아버지처럼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단다."


엄마는 초점을 읽은 눈빛으로 가끔씩 식탁 벽에 걸린 외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지나간 추억을 더듬었다. 엄마가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하는 날이면 엄마는 거실 앞켠에 있는 피아노 앞에서 오래도록 피아노를 쳤다.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대학입학 선물로 두 번째 피아노를 선물한 거라고 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좋아하던 쇼팽의 곡들을 주로 쳤다.




그러나 엄마의 피아노 소리는 어딘가에서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원망을 누르는 고통의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에린은 강아지를 안고 펫마켓부터 들렸다. 강아지의 간식과 사료를 샀다. 그리고 에린은 강아지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너에 이름은 토토야, 내가 좋아하는 책 "창가의 토토"에서 네 이름을 따봤어. 맘에 드니 토토, 네 주인이 또 너를 찾아다닐지도 모르잖아. 토토야. 미안해 네 주인이 널 찾을지도 모르는데...네 이름을 새로 지어서."


에린은 엄마와 외할아버지의 사진을 생각하다가 엄마가 치는 쇼팽의 '녹턴'이 들려오는 듯한 좁은 신촌의 원룸 골목길에 흰 강아지 토토를 안고 걸어 들어갔다. 그녀의 스무 살에 서울에서 처음 만난 친구는 어이없게도 몰티즈종인 강아지 토토였다. 그러나 에린은 토토가 주는 따스한 온기가 초봄이 시작된 대학가의 찬공기를 가르고 지나가는 것보다 좋았다.


에린은 토토에게 말을 걸었다.


"토토 너 내 꿈이 뭔지 알아?"


토토는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까만 눈동자를 깊이 깜빡였다.


"호호호, 네가 안다고, 그럼 그렇지 네가 알아줘야지, 어제도 널 보고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시를 지었는데, 네가 내가 세계 최고의 시인이라는 걸 몰라보면 안 되지... 하하"


에린은 토토에게 다시 눈을 맞춰줬다. 그리고 또 말을 이어갔다.


"토토야, 내가 살던 강진에 가면 김영랑 시인이라는 유명한 시인의 문학관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김영랑 시인이 시비가 있거든. 난 말이야 언젠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시인이 되면 그 옆에다 내 시비도 세우고 싶단다...... 이건 그런데 너만 아는 비밀 이어야 해. 다른 사람들이 알면 난 또라이 또라이라고 하겠지..... 하하하, 토토야 난 또라이고 해도 그런 꿈을 꾸는 게 나쁘진 않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시인이 우리나라에 아직 없거든. 난 그래서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세계 최고의 시를 쓸 거야. 호호호"


에린은 자기보다는 서울에서 조금 더 오래 살았을 토토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서울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서울 사람들은 어떤지, 그리고 신촌에 대학생들은 어떤지... 에린은 멀리 아직도 자신이 강진에 있는지 서울에 있는지를 잘 몰라서 허둥대는 스무 살이라고 생각을 했다. 조그만 용달차가 새 이불과 책과 옷가지를 강진에서 싣고 와서 어제 낮에 자기를 신촌의 원룸 방에 내려놓고 갔는데,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강진 엄마의 꽃집이 있는 사거리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있는 조그만 빌라집이 보이는 골목에 서 있는 착각이 들었다.


에린은 품에 안은 강아지 토토에게 간식으로 사 온 닭가슴살을 주고는 자기도 편의점에서 산 달달한 커피를 마셨다. 엄마가 좋아하는 편의점표 싸고 달고 맛있는 프림 설탕이 조합된 일명 다방 커피다.


"토토야 내가 여기서 저기 내 집 앞에 가는 동안 너에게 내가 또 제일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시인에 시를 읽어줄게, 바로 라이너마리아 릴케라고 하는 시인에 시야. 잘 들어봐."





에린은 토토에게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라는 시를 읽어주며 골목길에 들었다. 그때 저만치에서 진수가 에린을 에린이 이사한 원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직 추위에 떠는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이 한아름 손에 들려 있었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겪어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를 겪어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


진수는 에린을 생각만해도 언제나 입가에 초승달 미소가 지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에린이 옆에 있으면 진수는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에린은 어릴 때부터 쌀쌀맞게 굴어도 언제나 당돌한 아이였다. 그런 에린의 성격도 좋았지만, 진수는 에린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이 날리는 게 그렇게 보기 좋았다.


바람 부는 날에도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할 때도 그 아이의 옆에만 가면 그 아이가 가진 긴 머리칼이 그렇게 찰랑일 수가 없었다. 긴 생머리가 까맣고 반들거려서 진수는 항상 에린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보는 꿈을 꾸다가 잠을 든 적이 많았다. 에린은 한 번도 그 검고 긴 머리를 갈색이나 다른 색깔로 염색을 하지 않았다. 그게 어쩌면 진수가 에린을 끝까지 좋아하는 이유일지 모른다고 진수는 자기가 에린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를 정리했다.


진수는 에린의 엄마가 진수에게 보내준 에린의 집주소를 들고 꽃과 피자 한판을 들고 에린의 집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무조건적인 침입이긴 하지만 그래도 에린이 집안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을 것을 알고 왔기에 피자와 꽃다발만 주기로 한 것이다. 원룸입주 축하 기념으로.



진수는 아버지가 오래전에 사놓은 강남에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방배역 근처 서른네 평 아파트에서 자가용까지 가지고 혼자 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진수는 운동복 차림에 파커를 입고 에린의 원룸 앞에서 서 있는 것으로 그녀와의 차이를 줄여보고 싶었다.


물론 올 때도 자가용을 몰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왔다. 진수는 늘 자기가 누리는 것은 다 할아버지가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또 고조할아버지가 강진에서 최고로 잘 살던 땅과 재산 덕분이고 그걸 대대로 잘 간직한 조상덕이라고 생각했지 자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린이네의 작은 꽃집을 생각하면 예린이가 서울에서 고생을 할까 봐 벌써 걱정이 가득했다.


진수는 작은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의사로 있는 강남에서 사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오래전에 사두었던 강남에 아파트를 벗어나려면 본과는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수는 에린이 있는 신촌에서 살고 싶었던 간절한 바람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신촌에서 살지 말고 강남에서 살라고 했고 세입자들에게 집을 빼달라고 하고는 진수에게 가장 최적의 공부환경을 만들어서 방배동의 아파트에 들여보냈다. 아버지가 못 이룬 의사의 꿈을 진수는 대신 아버지에게 이루어줘야 했다.


진수는 가끔 자기가 사는 생애에서는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은 찾기가 힘들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진수가 그래도 의대를 들어온 이유는 큰아버지가 의사로는 훌륭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존경이 있어서였다. 진수의 큰아버지는 진수가 보기에는 진짜 의사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수의 큰아버지는 젊어서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큰엄마를 평생 버리지 않고 사는 분이었다. 그런 큰아버지를 작은 아버지는 가끔씩 불평을 했다. 아이도 하나 낳지를 못하고 사는 큰엄마만 바라보고 사는 큰형은 바보라는 식이였다. 저 멀리서 에린이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길게 날리는 것이 진수의 눈에 보였다.


그런데 그녀의 품에 하얗고 작은 강아지가 보였다. 진수는 잠깐 자기가 본 여자가 에린이 마는가 하고 눈에 초점을 모았다. 흰강아지를 품에 안고 걸어오는 여자는 에린이 맞았다. 그녀의 검고 긴 생머리가 봄바람에 찰랑였기 때문이였다 . 진수의 가슴이 봄꽃들로 가득 찼다 .




그 순간, 아름답고 신비한 노래가 골목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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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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